싸워도 괜찮아.jpg

 

주말 저녁, 더위를 참아가며 저녁상을 차리고 있는데 딸들 방에서 큰 소리가 난다.
이내 이룸이가 펑펑 울며 거실로 나왔다.
울어가며 언니가 때리고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둘이 또 싸운 것이다. 흔하고 흔한 어느날처럼..
남편이 큰 소리로 윤정이를 불렀다.
더운 집에서 툭하면 싸우는 두 딸들 때문에 지긋지긋해 하는 남편이었다.
"도대체 왜 그래?" 윤정이를 보자마자 빽 소리를 치는 아빠 앞에서 윤정이가 억울한 얼굴로

눈물을 글썽인다. 파란색 보조가방을 가지고 나왔다.
"이 가방이요, 이룸이랑 둘이서 같이 쓰는 건데요. 같이 쓰는 가방은요, 자기가 쓰고 나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 집에 오자마자 속에 있는 물건을 다 꺼내서 비워줘야 되잖아요.그래야 다른 사람도 쓸 꺼 아니예요. 그런데 이룸이는 그냥 던져둔다구요. 내가 쓸라고 하니까 이룸이 물건이 꽉 차 있는 거예요. 그래서 비우라고 했어요. 그런데 사람 말을 무시하잖아요. 내가 한 번 더 내가 쓸거니까 비워달라 했어요. 그런데도 안 비우는거예요. 그래서 화가 나서 내가 바닥에 쏟아 버렸어요"
"언니가 내 물건 막 쏟고 나를 때렸다구요"
"어제부터 비우라고 말 했는데 안 하잖아요"
"어제 말 안 했잖아"
"했어!!"
"이 가방 없애 버려!" 남편이 소리를 쳤다.
"이 가방 때문에 싸운거니까 이 가방 쓰지말고 없애버리라고!"

에고... 또 저러네.
남편이 아이들 혼낼때는 되도록 끼어들지 않아야하는걸 알면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을 지켜볼수많은 없어서  살그머니 나가 아이들 앞에 앉았다.
"있는 가방을 어떻게 없애. 윤정, 이룸아. 같이 쓰는 가방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니? 같이 잘 사용할 수 있는 규칙을 정해봐"
내가 끼어들자 남편이 나를 노려본다.
자기가 훈육하고 있을때 내가 개입해서 내 식으로 아이들을 다루는걸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다.
마치 당신보다 내가 더 나은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어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남편과 아빠로서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 처럼 느끼는 것이다. 남편이 입장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싸우는 것을 중재하고 해결할 때 이렇게 극단적인 표현으로 아이들을 겁주는 것은 정말 싫다. 
갈등을 중재하고 해결하는 방법들을 가르치는게 부모의 몫이 아닌가. 우리 스스로도 잘 못하고 사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한테까지 그런식으로 해서는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애써가며 스스로 더 나은 방법들을 찾게 하려고 이런 저런 대화를 시도하는데 남편 입장에서는
마누라가 자신의 방식은 나쁘다고 하고 내 방식만 옳다고 하는 것 처럼 느껴지는게 문제다.

아빠로서의 권위와 자존심도 지켜가며 기분 상하지 않게 잘 신경써가며 아이들 갈등을 슬기롭게 중재해야 하는 역할은 쉽지 않다. 자칫하면 아이들 싸움때문에 남편과 또다른 갈등이 되기 때문이다.

"규칙을 정하면 뭐 하냐. 지키지도 않으면서... 그냥 없애고 쓰지 말라고!"

휴우... 한 번 정한 규칙이 정확하게 지켜지면 그게 비정상이지 않나.

아직 어린 아이들인데 약속이고 규칙이고 수없이 정하지만 또 쉽게 잊고 어기는게 그게 아이들인것을.. 그때 윤정이가 입을 열었다.

"버리면 다 되는게 아니잖아요"
"뭐가 아니야, 버리면 되지!" 남편이 눈을 부릅 떴다.
"이 가방을 버린다 해도 다른 가방을 또 같이 쓰면 또 이런 일이 일어날거잖아요. 그러니까 규칙을 정해야지요"
"그러니까 같이 쓰는 거 다 없애라고. 너희들은 같이 못 쓰니까 다 없애고 각자 자기 물건만 쓰면 되잖아!!"

아아..이럴때는 아이가 어른보다 현명하다. 남편보다 윤정이 말이 옳다.
아이들도 생각을 한다. 잘못하면서도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어떤 상황이든 스스로 생각을 하게 해야 한다. 어른이 나서서 칼로 자르듯 해결을 던져주고 끝내버리면 안되는 이유다.

그 해결조차 제대로 된 해결도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그냥 아이들앞에서 화내고 야단치는 것으로 끝난다. 싸우면서 큰다는 말은 수없이 싸우면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상대방의 생각과 부딛히고

그 과정을 통해 조금씩 더 나은 방법을 찾아 나가며 자란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그럴 수 있도록 어른이 도와야 한다.

윤정이는 아빠가 큰 소리만 쳐도 겁을 먹던 마음 여린 아이였다. 제가 억울한것을 제대로 표현도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리던 어린 딸은 이제 울먹거리면서도 아빠 말에 제 생각을 주장할 만큼 자라났다. 이 와중에도 분명 이전에 비해 성큼 성장한 윤정이의 태도가 기특했다.

"윤정아, 이룸아.. 아빠가 날도 더운데 너희들이 계속 싸우니까 화가 나셔서 저렇게 말씀하시는 거고..같이 쓰는 물건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다 버리겠니. 그리고 가족은 같이 살면서 같은 공간에서

많은 물건을 같이 사용할 수 밖에 없어. 그러니까 가족이지. 같이 쓰는게 불편하고 다툼이 된다고

각자 자기 물건만 가지고 쓰면 그건 남이나 같아. 불편하고 속상하고 짜증나도 참고 또 양보하고 타협하면서 같이 사는 사람들이 가족이잖아. 그러니까 이 가방도 너희들이 같이 쓰려면 어떻게 하는게 더 좋은지 규칙을 정해보자"
" 한 사람이 가방을 쓰면요. 집에 오자마자 물건을 다 비워야지요. 다른 사람 쓰게요"
"그런데요, 이럴수 있잖아요. 오늘도 쓰고 내일도 똑같이 쓸거라서 가방을 안 비울 수 있잖아요. 그럴땐 안 비워도 되잖아요"
"이룸아, 만약 한 사람이 이틀씩 삼일씩 계속 쓸거면 상대방에게 동의를 구해야지. `내일도 내가 쓸건데 괞찮아?'하고... 그래서 상대방이 괜찮다고 하면 그대로 둬도 되지만 만약 상대방이

내가 내일 쓰겠다고 하면 비워줘야지. 가방을 사용할 권리는 두 사람한테 똑같이 있는 거니까.."
"그러면 알겠는데요, 언니가 가방 쏟는 바람에 내 필통에 들어있던 물건들이 다 쏟아졌으니까

언니가 필통을 다시 정리해줬으면 좋겠어요"
"니 필통에 물건이 어떻게 들어있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러면 이렇게 하자. 이룸이가 언니한테 필통에 물건들이 어떻게 들어있었는지 설명해줘.

그러면 윤정이는 그 설명에 맞게 물건을 다시 잘 넣어주고..."
"알았어요"


남편은 화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고 딸들은 언제 싸우고 울었냐는 듯 필통을 정리하며 큭큭 거린다. 나도 다시 주방으로 들어왔다.

방학을 하면 아이들과 24시간을 지내야 하는 내게 아이들의 다툼은 하루에도 수없이 일어나는 일상이다.더러는 모른 체도 하고, 심하게 큰 소리가 나고 누군가 울고 불고 하면 달려가서 중재도 하고 야단도 치고 이야기도 한다. 징그럽게 싸우고도 또 금방 헤헤 웃으며 같이 어울리는게 자매다.

윤정이와 이룸이는 딱 그런 사이다. 다른 아이들보다 더할 것도 없도 덜할 것도 없는 그저 평범한 보통 아이들이다. 싸우고, 화해하고, 풀어지고, 또 싸우고, 큰소리나고 때리고 울고, 또 하소연하고 억울해하고, 그리고 다시 어울려 놀며 하루가 간다. 내겐 익숙한 일이지만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적은 남편은 아무래도 이런 풍경들이 나만큼 익숙하지 않다. 더구나 요즘같은 폭염에 다섯 식구가 함께 지내게 되면 사소한 일로도 예민해지고 화가 치민다. 그럴 수 있다.
아이들을 훈육하는 스타일이 부부가 같으면 참 좋겠지만 우리 부부는 다르다.

다른 면이 때로는 좋기도 하고 때로는 아쉽기도 하지만 남편은 짜증이 별로 없고 나처럼 신경질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내가 화가 나고 균형을 잃을때 무던하고 관대하게 아이들을 품어준다.

남편이 화가 났을땐 내가 잘 다독이면 된다. 다만 둘 중 한 명이 아이들을 야단칠때 그 방식에 대한 비난이나 훈계가 되어서는 안된다.
내가 자주 저질렀던 실수다.

나처럼 매일 책을 읽고  새로 배우는 것에 관심과 노력을 쏟는 사람은 그런 노력이 보이지 않는 상대나와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을 훈육할때 쉽게 지적을 하고 비난을 하게 된다. 더 많이 노력하고 애쓴다는 것과, 그러니까 내가 더 잘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내가 노력해가며 찾아가고 알아가는 것을 남편과 잘 나누고 슬기롭게 남편을 내 편으로 만들어서

같은 목소리를 내게 하려면 나는 더 세심해져야 하고 부드러워야 하는데 그걸 잘 못한다.

살아가면서 계속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겠지.

나는 짜증이 많다.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이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들과 징글징글하게 같이 싸운다.
화를 안 내려고 해봤지만 나는 그게 안 되는 사람이다. 화를 참다가는 내가 병이 날 것 같았다.
화는 잘 못 참지만 대신 박박 화를 내고 나면 내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재빨리 인정하고 사과한다. 그리고 서로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감정의 응어리를 푼다. 아이들을 키워 오면서 지긋지긋하게 함께 싸웠지만 여전히 관계가 좋은 이유다.

 

남편은 화를 잘 안낸다. 그러나 한 번 화를 내면 폭력적이고 위협적이다. 그리고 오래 그 화를 거두지 않아 나와 아이들을 힘들게 한다. 이건 남편이 풀어야 하는 숙제다.

그나저나 윤정이 정말 대견하다.마음 약하고 순둥이였던 딸이 어느새 화를 내고 있는 아빠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게 제 생각을 또박또박 말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하게 자라났다. 그러면 된거지.. 아이들이 크는 모습에 이렇게 생생한데 그러면 된거지..

아이들이 싸울때는 부모도 함께 커야 하는 시간이다.
잘 싸우고 잘 풀고 잘 크는 일..
아이들과 함께 남편과 같이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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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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