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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교실에서 토론 모임이 있는 둘째와 함께 학교를 찾았다가

운동장 한쪽을 바라보고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놀이터 앞에 있는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의 가지들이 무참하게 잘려있었던 것이다.

푸른 잎들이 한창 자라오르던 가지들이 남김없이 잘려나간 나무는 마치 팔, 다리가 잘린 아이처럼
끔찍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도대체 왜 이 나무를 이렇게...
근처에서 향나무 가지를 다듬고 있는 일꾼들에게 물어보니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 한 것 뿐 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두 시간동안 토론을 무슨 정신으로 지켜보았는지 모르겠다.
집에 돌아와서도 마음을 추스릴 수가 없었다.

그 나무는 우리 학교에서 가장 크고, 오래되고, 넓은 그늘을 만들어주던 멋진 나무였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고 가지마다 푸른 잎들이 나기 시작하는 것을 지켜보며 매일

그 아래를 걸어 막내의 교실까지 걸어가면서 이룸이와 매번 감탄을 하곤 했다.
4월이 되면서는 그 나무의 제일 높은 가지 위에 까치가 집을 짓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응원하기도 했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짓는 까지집일꺼야. 까치 아빠, 엄마는 정말 멋진 나무를 골랐네"
"저기에 집을 지으면 아무도 새끼 까치를 괴롭힐 수 없을거예요"
까치는 멋지게 나뭇가지로 집을 지었고, 이따금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어도 튼튼하 고 굳건했다.

봄이 지나고 초여름이 되자 나무 가지는 한층 자라고 잎들은 무성해져서 시원한 그늘은

놀이터를 전부 덮고도 유치원 교실이 있는 곳까지 드리워졌다.
"나무 둥치는 어른 팔로 두 아름 쯤 되는데 이만큼의 나무 한 그루가 만들어내는 이 엄청난

그늘을 좀 봐바.  차지하고 있는 땅은 얼마 되지 않지만 이렇게 큰 그늘을 만들어서 많은 사람을

시원하게 해 주잖아. 이런 나무 같은 사람...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자기 자리에서도 선한 영향력을 많은 생명들에게 기울이며 두루 두루 이롭게 하는 사람 말야.
엄마는 나무에게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워"
"음... 저도 나무 같은 사람이 될래요. 이렇게 멋진 나무처럼요"
우린 그런 얘기를 나누며 한없이 넓고 큰 나무를 오래 오래 올려다보곤 했다.

"인디언들은 나무를 '키 큰 형제'라고 불렀어. 사랑하는 사람이 멀리 여행을 가게 되면
"네가 어디에 있든 키 큰 형제들이 너를 보살펴 줄 것이다' 이렇게 말해준대. 그러면 그 사람은
어딜 가나 나무들을 보며 위로도 받고, 기운도 얻고 그러는거야.
엄마도 이 키 큰 형제들이 이룸이랑 윤정이를 잘 보살펴 주고 있다고 믿어. 엄마가 매일 그렇게
부탁을 하고 있거든. 너희들이 교실로 들어가고 엄마 혼자 돌아올때도 키 큰 나무 형제들이

 너희들을 잘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좋아지지"
"키 큰 나무 형제야, 우리들을 잘 살펴줘. 우리 엄마도, 우리 친구들도, 우리 학교도.."
이룸이는 플라타너스를 올려다보며 이렇게 소리치곤 했다.
그리고 같이 손을 흔들어 나무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교실로 뛰어들어 갔다.

아름답고, 크고, 특별한 나무를 우리는 마음 깊이 사랑하고 아꼈다.
그 나무가 주는 그늘 아래로 아이들이 모여들고, 그 그늘 아래서 더운 여름날에도 체육을 하고
엄마들이 모여앉아 아이들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했다.
모두가 좋아하는, 우리 학교의 상징과도 같은 나무였다.
그런데 그 나무가 너무나 처참하게 가지와 잎들이 모두 잘려져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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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런 저런 일들로 저녁을 바쁘게 보내고 늦은 밤 침대에 누웠는데

마음이 울렁거려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왜 이러지, 내 마음이 왜 이러지... 되짚다가 나무 생각이 났다. 숨이 턱 막혀왔다.
내일 아침 아이 손을 잡고 그 나무 아래를 어떻게 지나가지. 잘린 가지들을 어떻게 바라보지.

내가 가장 사랑하던 풍경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내가 정말 소중하게 여기던 존재가 한없이 상해버렸다는

것이 마음으로 감당이 되지 않았다. 딛고 서 있는 땅 한쪽이 속절없이 허물어 내린것 처럼 마음이 휘청거렸다.

늦은 밤, 교장 선생님의 긴급 전달이라며 긴 문자가 단톡방에 떴다.
'우리 학교 상징인 플라타너스 나무 전지를 했는데 가지가 한꺼번에 다 잘려서 아이들이 놀랄 수 있으니

전문가와 상의해서 진행된 일이고, 지금 이렇게 잘라 놓으면 내년에 더 멋진 나무가 될 거라고

아이들에게 전해주십사'하는 내용이었다. 내용을 다 읽고도 위안이 되지 않았다.

연달아 심어져 있는 거리의 가로수도 아니고 학교에 늘 서 있던 오래된 나무를

이렇게 잘라내야 할 이유를 도무지 납득할 수 가 없었다.

월요일 아침, 등교 준비를 하는 딸들 옆에서 교장 선생님에게 긴 문자를 보냈다.
- 어제 학교를 찾았다가 잘려나간 플라타너스를 보고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나무는 우리 학교에서 가장 큰 그늘을 만들어주던 특별한 나무였습니다.
매일 그 그늘 밑으로 아이들과 엄마들이 모여들어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기다리는

고마운 나무였습니다. 어린 딸이 놀이터에서 한참을 놀며 저를 기다릴 수 있었던 것도

그 넓은 그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까지 잘라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자르지 않아도 이미 멋진 나무였습니다.
다시 그렇게 자라기까지 몇년이 걸릴까요. 그 긴 시간동안 그늘 없이 지내야 할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놀 수 있는 시간은 훨씬 줄어들겠지요.

그늘 없는 운동장은 메마른 사막과도 같습니다.
오래된 학교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이 우리의 가장 큰 자랑입니다.
매일 만나던 자랑과 자부심, 고마움이 사라진 운동장이 아쉽고 쓸쓸합니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에, 가장 멋지게 지어졌던 까치집도 사라졌습니다.

 매일 그속에서 자라고 있을 새끼 까치들의 건강을 빌던 아이 마음도 상처를 입었습니다.
학교는 건물과 교사들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나무를 볼 때마다 한 존재가 미치는 커다란 영향을 느끼며 신비함과 감사함을 생각하며

 많은 것들을 배우곤 했습니다.
특별한 존재가 무참하게 잘려나간 운동장이 슬프고 아픕니다.

나날이 뜨거워질 볕속에서 놀아야 할 아이들을 보는 마음도요.
속상하고 슬픈 마음..이렇게라도 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문자가 가고 바로 교장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나도 그 나무를 보고 정말 놀랐어요. 그냥 가지만 조금 자른다고 하길래 그러라고 한건데

그정도까지 다 잘라낼 줄 몰랐어요. 나중에 나무 보고 너무 크게 충격을 받아서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나도 그 나무를 정말 좋아했는데, 매일 보면서 마음이 참 좋았는데.."
"선생님.. 저도 제가 얼마나 그 나무를 사랑하고 그 나무에 마음을 의지하고 있었는지 잘 몰랐어요.
그런데 나무가 다 베이고 난 걸 보니까 마음이 정말 무너지더라구요.

이렇게 마음이 아프고 큰 상실감이 들지 몰랐는데... 그냥 너무 슬퍼요. "
"아.. 저도 상실감이 정말 큽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미안합니다."
교장 선생님과 나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울었다.

우리의 통화를 곁에서 듣고 있던 딸들도 함께 울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교장 선생님도 이렇게 될 줄 모르셨다.

일하는 사람들은 그저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한 것 뿐이다. 이 나무와 아무런 특별한 감정이 없는

사람들은 직업적으로 오랫동안 다시 손 볼 필요없을 만큼 한번에 다 잘라내고 돌아갔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가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이 아픈 것이다.

이룸이 손을 잡고 운동장에 들어설때부터 나는 눈물이 솟았다.
너무나 사랑하던 풍경이 갑자기 사라진 운동장은 낮설고 쓸쓸했다.
아이와 바라보던 그 아름답던 나무의 까슬까슬한 둥치를 쓰다듬다가 나뭇가지와 함께

무너져 내렸을 까치집을 생각하다가 나무에 기대어 목 놓아 울고 말았다.

 

"엄마.. 기운내세요. 나무는 다시 자랄거예요"
이룸이는 울먹거리며 나를 위로하고는 꼬옥 안아주고 교실로 들어갔다.
아이를 보내고 다시 나무 앞에 섰다. 그리고 또 울었다.
나무를 오래 쓰다듬었다. 가만히 안고 한참을 울었다. 미안하고, 아쉽고,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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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람에게만 의지해서 살 수가 없다.
사람에게 마음을 주는 일이 얼마나 쉽게 상처가 되고 고통이 되는지 우리는 잘 안다.
그래서 변함 없는 것들에,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은 것들에 마음을 준다.
그런 마음으로 높은 산을 오르고, 강가를 찾아가고, 화초를 아끼고, 나무를 보듬는 것이다.

산도 좋아하고, 음악도 책도 너무나 사랑하지만 나는 늘 나무에게 마음을 기대며 살아왔다.
깊은 산이 아니라도 나무는 눈 닿는 어디에나 있었다. 어느 곳을 가든지 마음을 줄 나무를  찾아
말을 걸곤 했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 정문 앞에 있던 커다란 느티나무를, 젊은 날 다니던 직장에 가기 위한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 길가에 서 있던 은행나무를, 좁은 사무실 창 밖에서 흔들거리던 소나무를 사랑했다.
이 동네와, 이 집이 마음에 들었던 것도 오래된 나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난 해에 문을 연,
나와 나이가 같은 아이들 학교 역시 오래된 나무들이 있어 마음이 든든했다.
필규가 타고 오르기를 좋아했던 왕벗나무도 사랑했지만 한없이 넓게 벋어가는 이 플라타너스를
정말 정말 마음으로 사랑했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할만큼 깊게 마음을 기대 왔다.

사람은 사람만으로 살 수 없다.
사람에게만 기대는 것 처럼 쓸쓸한 일이 또 있을까.
사람살이에 지치고 힘들때 그때 우리 곁에서 피어나는 풀 한포기, 꽃 한송이, 기댈 수 있는
나무 같은 것들이 마음에 들어온다. 계절이 다시 돌아오는 일이, 꽃들이 다시 세상을 덮는 일이,
나무들이 새롭게 울창해지는 풍경이 가슴에 사무쳐 오는 것이다.
문득 변함없던  풍경이 사라져버리면 비로소 그것에 의지하던 내 마음이 보인다.

그 풍경이 채우던 세상의 한쪽이 또렷해진다. 그 풍경으로 인해 온전했던 내 일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다시 슬퍼지고 만다.

 

마음이 베이다4.jpg

플라타너스 가지들이 모두 사라지고 난 학교는 속절없이 허전하다.
한쪽이 허물어져버린 풍경속에서 아이들은 변함없이 달리고 웃는다.

베인 마음이 오래 쓰리다.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에 기대어 살고 있는가.
새삼 내가 의지하고 있는 많은 것들을 하나 하나 애틋하게 불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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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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