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 지하엔 넓은 실내 운동 시설이 있었다. 놀라웠다. 아파트 지하 공간은 주차장만 있는 걸로 알았으니까. 그 사실을 1년하고도 6개월만에 알았다. 또 놀라웠다. 난 내가 관찰력이 뛰어난 줄 알았으니까. 하긴. 익숙한 걸 좋아하고, 혼자 있는 걸 편안해 하는 걸 보면 이해가 간다. 익숙한 길을 혼자서만 왔다 갔다 하면서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안정 지향적 성격. 그래서 가던 길만 가고, 오던 길만 온다. 별다른 불편 없이 혼자서. 단, 낯선 사람이든 낯선 장소 앞에선 설렘보다 긴장이 앞섰다. 우연히 운동 시설 안내 데스크를 발견한 날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말을 건네기까지 주변을 서성거려야만 했다. 그리고 물었다. 둘러봐도 될까요? 라고. 입 밖으로 말했지만, 속으로는 둘러보게 해주세요, 라고 속삭였다. 귓가에 들려오는 상대방의 친절한 목소리에 거절의 두려움은 안도감으로 바뀌었다.
그 때부터 평생 하지 않았던 실내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운동 시설 옆에 사우나 시설이 마음에 꼭 들었다. 대중 목욕탕을 가도 7,8천 원이 들고 겨울철 집에서 샤워를 조금만 해도 ‘급탕비’가 오르건만, 주부 아빠 7년차 이제 지난 달 관리비 내역도 기억한다, 시설 사용료는 고작해야 1/4 가격이었다. 등록을 한 뒤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운동시설을 찾았다. 스님이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있는 게 뭐가 나쁘다는 건가. 잿밥 때문에 더 많이 절을 찾고 염불을 더 자주 한다면 그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에겐 운동시설보다 목욕탕이 매력적이었다.
(사진: 픽사베이)
주부의 세계로 입성하기 전 기자 생활을 할 때에도 염불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적잖았다. 경찰청을 출입을 할 당시에도 그랬다. 기사를 쓰는 일보다 건물 지하 사우나 시설을 이용하는 재미. 지금은 어떻게 변한 지 모르겠지만 경찰청 지하엔 사우나 시설이 두 곳이 있었다. 구석진 통로 끄트머리엔 통로를 사이에 두고 양 편에 사우나 시설이 나뉘어져 있었다. 왼쪽 사우나 시설은 간부용, 오른쪽 사우나 시설은 간부가 아닌 경찰관용.(성별로만 따지자면 남성들만의 전유물이다. 권력의 지도는 기관 내 목욕탕 시설에까지 성별을 갈라놓았다) 아침 식사시간, 야근으로 스며든 피곤함을 발로 옮기며 목욕탕으로 이동할 때에도 권력은 작동했다. 누구는 오른쪽 목욕탕, 누구는 왼쪽 목욕탕. 폭이 넓지 않은 통로였지만 그 통로는 정확하게 신분을 구분하는 커다란 벽과 같았다. 두 개의 계층, 두 개의 목욕탕.
전날 먹은 술이 깨지 않던 어느 날, 기자실을 빠져 나와 목욕탕으로 향했다. 대다수 경찰들이 오른쪽 사우나로 들어갈 때, 양복을 입은 비교적 젊은 기자였던 난 으쓱거림을 어깨에 걸치고 왼쪽 사우나 문을 열었다. 출입기자는 한 언론사를 대표해서 나왔으니까. 그런 대접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시절이었다.
간부용 목욕탕 탈의실 안으로 들어섰을 때 양복을 입은 한 사내가 보였다. 제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라면 출입기자여야 했지만, 그는 출입기자가 아니었다. 누구지? 그는 나를 위 아래로 쳐다보았다. 오히려 그가 나를 누구인지 자세히 알고 싶어하는 듯. 서로가 누구인지를 알고 싶었다. 아무렴. 급한 건 일단 빨리 술이 깨는 일이었다. 옷을 수납공간에 넣어두고 욕탕으로 향했다.
목욕탕은 조용했다. 샤워를 하는 물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단 한 사람만이 목욕탕에 몸을 담근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넓지 않은 공간, 탕 속에 있는 경찰을 봤을 때 순간 탈의실에서 나를 훑어보던 양복 입은 사내가 누군지 생각이 났다. 경기 경찰청장 시절부터 대한민국의 경찰청장이 되기까지 그림자처럼 따랐던 경호원. 탈의실에 들어섰던 간부 경찰이라도 그 경호원을 봤다면 발길을 돌렸을 테다. 술이 덜 깬 젊은 기자 한 사람만 빼고.
한 때는 청장과 함께 목욕을 한 경험은 자랑거리였다. 탈의실에서 경호원은 나의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훑어봤고, 목욕탕에서 나는 경찰청장의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정밀 ‘스캔’했다. 항상 단정함을 지키던 용모였지만, 목욕탕 속에 보인 그의 머리는 까치가 집을 짓고 간 듯 했다. 대한민국 경찰의 최고 권력자. 그의 성격이나 그가 살아왔던 세월이나 그가 맺고 있는 관계보다는, 그를 보면 그의 어깨에 달린 계급장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럴 때면 나도 그와 대등한 위치에 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그게 싫지 않았다.
가끔 그가 생각이 난다. 그는 요즈음 어떻게 지낼까. 그에겐 이제 더 이상 어깨에 걸친 계급장이 없다. 나에겐 경찰청 출입증이 없다. 이제 간부용 목욕탕은커녕 경찰청 정문을 들어서기에도 여러 절차를 거쳐야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석한 날, 나와 함께 목욕을 하던 전 경찰청장은 시민단체에 의해 고발을 당했다. 그 장면을 보며 절친이었던 한 경찰 동료가 해 주었던 말이 생각이 났다.
“옷걸이는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해서 매일 바라보는 줄 알았다더군. 외출을 하기 전에 자신을 찾고 외출을 다녀 와서 다시 자신을 찾았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이 그 옷걸이를 찾지 않더라는 거야. 왜 그러나 봤더니 자신에게 걸쳐진 옷이 다른 옷걸이에 가 있더라는 거지. 사람들은 자신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자신에게 걸쳐진 옷을 좋아했더라는 거야. 그게 경찰을 그만 두었을 때 우리의 미래라더군.”
(사진 : 픽사베이)
가끔 오전 시간 카페에 앉아 주부들을 바라본다. 어떤 목소리엔 분노가 가득 차 있고, 어떤 목소리엔 즐거움이 가득 차 있지만, 그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주부들의 만남엔 어떤 제복도 계급장도 없이 평범했다. 그들의 옷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의 옷은 계급을 닮지 않고 계절을 닮았다는 점이었다.
권력자에겐 한 겨울인 3월, 주부들이 느끼는 포근한 봄볕을 느끼기 위해 지인에게 문자 하나를 보냈다.
“형, 점심 먹자.”
(사진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