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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unsplash)

우선은 육아서에 접근했다. 책을 사서 읽기만 하면 되니 접근성이 높았고, 여유 있을 때 읽다가 상황이 급해지면 바로 내려놓을 수 있으니 시간 제약도 없을 터였다. 처음에 손에 잡았던 육아서는 서형숙의 엄마학교였다.

엄마학교를 읽던 초반에는 거의 눈물로 일상이 도배되다시피 했다. 책에 따르면 정말 위험한 유리그릇들을 치워놓은 뒤 부엌찬장을 아이한테 완전히 개방하라는데, 나는 전혀 그러지 않고 있었다. 아이의 호기심과 도전정신을 위해 부엌을 개방하라는 저자의 문장을 읽어내려가는데, 가슴이 뜨끔하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부엌 찬장을 열려 하면 위험해! 그쪽으로 가지 말라고 도대체 몇 번을 말해!”라고 쏘아붙였던 내 모습이 너무나 선명하게 오버랩되었던 것이다. 아아, 나는 아이의 호기심을 북돋워줄 기회를 발로 차 버렸었구나! 정말 나쁜 엄마였구나!

 

당시 유행하던 육아서를 섭렵해나가면서 나는 부끄러움에 휩싸였다. 육아서에 나오는 대부분의 말들이, 마치 나를 관찰하고 있다가 반면교사로 인용해 쓴 것처럼 느껴졌다. 저 엄마처럼 하면 절대 안 되고 이렇게 해야 해! 라고 말하는 듯한. 책에서 나오는 한 문장도 내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책에서는 아이가 원할 때면 하던 일을 멈추고 바로 반응해주라고 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뭔가를 하고 있을 때 아이가 나를 부르면 일을 멈추고 달려가기는커녕 넌 지금 엄마가 뭐하고 있는지 안 보이니?”라고 반문했고, 도마질을 하다가 전화가 걸려온 와중에 아이가 와서 자기를 봐달라고 하면 지금 엄마 바쁜 거 안 보여? 엄마 몸이 두 개니?”라고 매정하게 일갈했다. 정말이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내게는 좋은 엄마에 해당되는 자질이 하나도 없었다. 부끄러움을 넘어서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육아서도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갱에 갇혀 있다 살아나온 칠레 광부처럼 기뻐해야 돼요. 얼싸안고 아이고 오늘도 살았네.’ 이러면서 펄쩍펄쩍 뛰어야 돼요. 그러면 인생의 고민은 싹 다 해결이 됩니다.(법륜, 엄마 수업, 15)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 눈에 들어오는 건 어젯밤에 두 아이들이 노느라 난장판이 된 집안이었고, 뇌리를 점령하는 생각은 아침을 뭘 해 먹이지? 하는 생각이었다. 의무감과 부담감이 밀려올 뿐 내가 살아 있어서 기쁘다고는, 아무리 노력해도 느껴지지 않았다. 집안을 치우고 있는데 아이들이 방금 치운 블록을 다시 엎어버렸을 때는 왜 나는 이렇게 허덕허덕 집안일을 하는데 저 아이들은 저리 태평하게 블록을 갖고 놀고 있어야 하는가?’ 라는 억하심정에 휩싸이기도 했다. 내가 하녀처럼, 아이들이 상전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나는 노력해서 나를 다잡았다. 저렇게 예쁜 아이들을 놓고 하녀 상전 운운하다니... 너무 계산적인 것 아닌가? 엄마가 돼서 어떻게 아이들을 놓고 그런 생각을?

 

앞의 두 책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육아서도 있었다. 지랄발랄 하은맘의 불량육아라는 책이었다. 앞서 예로 들었던 두 권이 주로 따뜻하게 품어주라며 정서적 지지를 강조하는 부류의 육아서였다면 이 지랄발랄 하은맘의 불량육아학원을 보내지 않고도 해리포터를 원서로 줄줄 읽게 해주는 학습비법을 알려주는 부류의 육아서다.

특이하게도 이 책은 기존의 육아서들에 대한 성토로 시작한다. ‘아이는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안 받았어요. 절대.’ 이렇게 포문을 연 작가는 육아에서 오는 괴로움과 사교육 시장에 휩쓸려 아이를 여기저기 보내야 하는 엄마들의 고충을 적나라하게 토로한다. 대부분의 육아서에는 금기에 해당하는 거친 욕도 섞어가면서. 아이를 학원으로 내돌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아이는 오직 책으로만 키워야 한다는, 아이가 원할 때는 밤을 새서라도 책을 읽어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거침없이 펼쳐나간다. 솔직하고 재미있는 화법에 적나라한 자기 사례 노출, 어떻게 하면 학원에 보내지 않고도 아이가 영어에 통달하도록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깨알 같은 학습 비법들이 들어찬 이 책은 굉장히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나는 속을 후련하게 후벼 파주는 것 같은 이 책을 한달음에 다 읽고 저자가 권한 대로 아이들 책 전집 두 세트를 사들였다. 원래부터 아이들 책에 관심이 많았고 이미 집에 전집이 넘치도록 차 있었지만, 이 책을 읽으니 그 정도 책으론 어림없겠다 싶었다. 있는 책을 종류별로 정리하고 새로 들어온 책을 새로 사들인 책장에 일렬로 꽂아 넣으면서 나는 전의를 불태웠다. 그래! 책이다! 책이 나를 구원할 것이다!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다. 학원을 안 보내도 되는 것은 물론, 인성적으로도 훌륭한 아이로 자라나게 되리라. 몇 년만 더 참으면서 아이들을 책벌레로 만들자. 파이팅!

 

그러나 막상 실행에 들어갔을 때, 이내 좌절감에 휩싸였다. 일곱 살, 세 살이었던 아이들은 내가 거금을 들여 구비해놓은 전집에 눈길도 주지 않았고, 읽는다 해도 한두 권 정도 관심을 보이다가 이내 도망가서 블록을 하거나 칼싸움을 벌였다. 저자의 아이는 새벽 서너 시까지 책을 읽어달라고 졸라서 읽어주느라 목이 쉴 뻔 했다는데, 내 아이들은 안 그랬다. 새벽까지 책을 보기는커녕 5분도 채 넘기지 못했고, 며칠 동안 붙잡고 노력을 했지만 종내는 사들인 전집에 아이들이 눈길도 주지 않는 사태에 이르렀다. 남자아이들치고 책을 좋아하는 편인 아이들이라 환경만 잘 조성해주면 작가의 아이처럼 신들린 듯 책을 읽게 될 거라 내심 기대했는데 완전 실망이었다. 나는 내 원대한 기대에 미치지 못한 아이들에게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자기도 모르는 새 시험에 들었다가 합격선을 넘지 못한 아이들은 쏟아지는 엄마의 신경질에 영문을 모른 채 눈을 깜빡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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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은
헤드헌터, 번역가, 소설가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살아왔지만 저의 제1 정체성은 언제나 ‘엄마'였습니다. 엄마 경력 12년에 접어들던 어느날, 좋은 엄마가 되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너무 아등바등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요. 그때부터 이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엄마'란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내기 위한 고투의 시작이었지요. 2013년 < 모던 하트 >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고, 이후 장편소설 < 잠실동 사람들 >, < 맨얼굴의 사랑 >을 펴냈습니다.
이메일 : emma750322@hanmail.net      
블로그 : http://blog.naver.com/emma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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