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다엘

아이의 동선, 어른의 시선

동네 마당발 다엘선생과 경비원 아저씨의 우정

제1190호
 
151273783710_20171209.JPG
정은주

 

다엘이 학교 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가끔 다엘이 빌려 쓰는 할머니 휴대전화로 아파트 경비 아저씨의 문자가 왔다. ‘여행이 재미있고 공부에 보탬이 되나, 어떠신가. 기쁘고 행복한 여행되셔, 다엘선생.’

 

들여다보니 그간 주고받은 문자들이 있었다. ‘아저씨, 파이팅 하세요.’ ‘좋은 아침이야. 오늘도 기쁘게 열심히 지내자.’ 다엘이 아저씨의 생신 선물로 편지와 과자를 정문 초소에 가져다놓은 날의 문자는 이랬다. ‘아저씨, 생신 축하해요!’ ‘서프라이즈 고마워. 정말 감격이야.’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의 중앙에는 광장이 있어 아이들이 자주 어울려 논다. 이곳에서 다엘은 아이들뿐 아니라 분식집 아줌마, 붕어빵 할아버지, 경비 아저씨들과도 정을 쌓으며 ‘동네 마당발’이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얻었다. 또래와 관계 맺기를 어려워했던 아이는 동네 어른들의 사랑과 인정을 받으며 친구 사귀는 법을 익혀가고 있다.

 

최근 마을 미디어를 통해 우리 동네 아파트 경비원들의 인원 감축 문제를 알게 됐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을 앞두고 아파트 경비원 수를 대폭 줄이겠다는 안건이 입주자 대표회의에 상정되고 있다 했다. 한편으로는 경비원들의 휴식 공간도 없는데 휴게 시간을 늘려 실질적 임금 인상을 막겠다는 제안까지 나왔다.

 

우리 동네 주민들은 관련자들과 함께 토론회를 열어, 아파트 상생 문화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소통이 중요함을 확인했다. 관리비 조금 아끼려고 아파트 경비원들의 삶을 음지로 내몰려는 자본의 논리는 어떤 결과를 낳을까? 이는 단순히 지역 주민의 선의에 기댈 사안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삶의 질과 관련해 풀어야 할 사회문제다. 경비 업무가 아닌 청소와 택배 관리까지 도맡아 하는 경비원의 현실을 돌아본다. 그들의 최저임금과 안정적 일자리 보장 여부가, 나와 내 아이의 삶에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음을 마음에 새긴다.

 

아파트 단지 안에선 늘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난다. 긴급 상황에 주민들이 일차적으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이는 경비원이다. 다엘이 ‘경비원 인원 감축 반대’ 서명지를 전달하러 옆 동에 들렀을 때다. 갑자기 한 집에 불이 나서 엘리베이터에 연기가 차고 소방대가 출동하는 일이 있었다. 다엘은 경비 아저씨와 문자를 주고받으며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었다. 내 아이의 동선에 동네 어른의 따뜻한 시선이 함께한다는 건 얼마나 큰 힘이 되는가.

 

“다엘은 제 친구예요.” 경비 아저씨가 다엘을 가리키며 내게 하신 말씀이다. 아마도 다엘은 이 우정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아저씨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프로필엔 어린 손녀의 사진과 함께 글귀 한 줄이 있다. ‘빙긋이 웃다’. 세상이 아이를 향해 ‘빙긋이 웃어주는’ 일,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내 아이가 자신의 고향 마을을 삭막한 아파트숲이 아닌 따뜻한 공간으로 기억하길 바란다면, 부모로서 어떤 노력을 기울일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

 


정은주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웰다잉 강사

 

(* 이 글은 한겨레21 제 1190호(2017. 12. 11)에 실린 글입니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정은주
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공교육 교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시민단체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의 상담원이자 웰다잉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산지역의 입양가족 모임에서 우리 사회의 입양편견을 없애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으며 초등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대안교육 현장의 진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이메일 : juin999@hanmail.net      
블로그 : http://plug.hani.co.kr/heart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31762166/250/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2011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제주살이 10년의 씨앗 imagefile [3] 홍창욱 2018-01-05 3346
2010 [소설가 정아은의 엄마의 독서] 펼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어린이책들 - 마쓰이 다다시 《어린이와 그림책》 imagefile [4] 정아은 2018-01-04 3742
» [정은주의 가슴으로 키우는 아이] 아이의 동선, 어른의 시선 image [2] 정은주 2018-01-03 3784
2008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우리 가족이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는 방법 imagefile [9] 신순화 2018-01-01 2937
2007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2017 아날로그 육아의 종착역 imagefile [7] 윤영희 2017-12-31 3571
2006 [즐거운아줌마의 육아카툰] [육아카툰73편] 오~ 내가 케잌을 만들다니 imagefile [3] 지호엄마 2017-12-30 2101
2005 [소설가 정아은의 엄마의 독서] 시시포스가 되어 날마다 산을 오르다: 엄마의 탄생 imagefile [1] 정아은 2017-12-28 3411
2004 [정은주의 가슴으로 키우는 아이] 사춘기 초입, 따뜻한 동행 imagefile [4] 정은주 2017-12-27 5207
2003 [강남구의 아이 마음속으로] 그립고도 미안한 사랑…제천 희생자를 추모하며 imagefile [1] 강남구 2017-12-27 4214
2002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삼천번 절은 못 했지만... imagefile [2] 신순화 2017-12-26 5242
2001 [소설가 정아은의 엄마의 독서] 정신 차리고 너부터 고쳐! - 엘리자베트 바댕테르 《남과 여》 imagefile [1] 정아은 2017-12-21 4515
2000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아이돌을 좋아하는 딸들에게 image [1] 신순화 2017-12-20 3441
1999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 [어른책] 아들 딸 구별 말고 서이슬 2017-12-20 3467
1998 [강남구의 아이 마음속으로] 한밤 전화, 슬픔의 무게 imagefile 강남구 2017-12-19 3844
1997 [즐거운아줌마의 육아카툰] [육아카툰72편] 엄마의 혼밥 imagefile [2] 지호엄마 2017-12-19 3281
1996 [정은주의 가슴으로 키우는 아이] 좋은 죽음, 풀뿌리 운동 imagefile 정은주 2017-12-15 1700
1995 [소설가 정아은의 엄마의 독서] 너는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결혼이라는 통과의례 imagefile [4] 정아은 2017-12-14 3869
1994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생리컵에 대한 아이들과의 토크 image [9] 신순화 2017-12-12 6674
1993 [즐거운아줌마의 육아카툰] [육아카툰71편] 상처 imagefile [1] 지호엄마 2017-12-12 4035
1992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내의 첫 운전교습 imagefile [2] 홍창욱 2017-12-12 1817

Q.7살 딸 목욕을 자기가 시켜 주겠다고 하는 9살 ...

저희 아들은 9살, 초등학교 2학년입니다. 아이아빠가 혼자 샤워기 들고 샤워하는 법을 가르쳐 줘서, 2학년이 ...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