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02329_20170423.jpg » 22일 오전 11시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엄마 정치’ 집담회에서 참석자들이 돌아가며 발언하고 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엄마 정치 집담회’ 후기(1) 
 
“조리원은 천국이었습니다. 아이와 집으로 돌아온 후엔 두 시간마다 모유수유 해야 하고, 두 시간마다 깨야 하고. 배앓이를 한다고 밤새 울고…. 그런데 남편은 자고 있고. (엄마가 된 뒤) 당연하지 않은데 당연한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경력단절이라는 상실감이 너무 커서 제 인생이 없어지는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제 후배들한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조건 일을 하라고 말을 합니다.”

 

“각자도생 사회에서 육아의 부담을 오롯이 부모에 넘기는 게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정치적으로 풀어야 하는 것이죠. 부모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촛불광장에서 했던 것처럼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2일 오전 11시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의 한 회의실에 엄마 30여 명이 모였다. 이 자리는 <한겨레> 토요판에 ‘장하나의 엄마정치’(http://goo.gl/B5R5yu)를 연재하고 있는 장하나 환경운동연합 권력감시팀장(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에스엔에스(SNS)에서 ‘자신이 엄마라서 겪은 부조리’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고 정치적인 해결책을 찾아보자며 엄마 집담회를 제안해 만들어졌다. (엄마 정치 페이스북 주소는 http://goo.gl/jA7O50)

 

장 팀장과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은 이날 집담회의 주제로 ‘엄마의 삶 그리고 정치: 독박육아 대 평등육아’로 내세웠다.
 
10살, 8살 두 아이를 키우는 나 역시 이날 기자이자 엄마로서 이 자리를 찾았다. 집담회에 가기 전 살짝 고민했다. 토요일은 내가 두 아이와 가장 평화롭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날이다. 주중 내내 늦게 퇴근하고 정신없이 바쁜 엄마가 늦잠도 자고 두 아이를 부둥켜안고 거실에서 여유롭게 뒹굴거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그런데 엄마가 토요일마저 어딘가에 가겠다고 하면 두 아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뻔했다. 며칠 전 10살 딸은 늦은 밤잠도 자지 못하고 써야 할 기사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엄마를 보며 “엄마는 왜 밤에 푹 쉴 수 없는 직업을 선택한 거야? 밤에는 잠을 자야지. 난 엄마랑 함께 자고 싶은데…”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두 아이의 불만이 예상됐지만 이번 자리는 꼭 가야만 할 것 같았다. 취재를 해서 기사를 쓰던 안 쓰던 일단 가서 엄마들의 함께하고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도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한겨레>에 ‘엄마 정치’라는 주제로 글을 쓸 용기를 낸 장 팀장에게 뭔가 힘이 되고 싶었다. 남편에게 두 아이와 나 대신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을 당부하며 택시를 타고 집담회 장소를 찾았다.

 

집담회에 가니 서울 각 지역, 경기도 시흥시, 세종시에서 온 이도 있었고, 멀리 울산에서 이 행사 참석 시간을 남편에게 생일 선물로 받아 온 이도 있었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 아직 생후 몇 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안고 온 엄마,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온 엄마 등 다양했다.
 
이날 집담회는 장 팀장이 자신이 국회의원을 할 때 임신출산육아를 하며 겪은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2년 전 딸을 출산한 장 팀장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임기 중에 출산한 첫 국회의원이다. 그는 “청년비례대표였던 제가 국회의원이 된 뒤 임신을 했다고 하면 ‘여자를 뽑아놓으니 애 낳고 쉰다.’라는 말을 들을까 봐 (임신에) 스스로 당당하지 못했다”며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작은데 연연했다”고 후회했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한 여성 국회의원이 국회 본회의에서 당당하게 모유수유를 한 모습을 보며, 당시 자신이 엄마 정치인으로서 당당하게 행동했다면 ‘엄마 정치’라는 화두를 우리 사회에 던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전했다. 그는 “20대 국회의원 평균 재산이 41억원이고 평균 연령은 55살이며 83%가 남성”이라며 “엄마들을 대변하기 위한 구조는 애초에 없으며, 엄마들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조직·세력화가 된다면 정치인들도 엄마들을 무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장 팀장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머릿속에서 많은 질문이 툭툭 튀어나왔다.
 
‘세상의 절반은 여성인데, 왜 국회의원의 대다수는 남성인 걸까? 아이를 낳고 키우며 많은 엄마가 ‘독박 육아’라는 고통을 겪고 있다고 아우성치는데, 그런 엄마들의 고충을 전면에 내세우며 함께 문제를 해결해주는 정치인은 왜 없는 걸까? 여성 국회의원들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일 텐데, 왜 그들이 임신출산육아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에 대한 얘기들을 안 하는걸까?’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독박 육아 끝장낼 엄마 정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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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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