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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건 몰라도 주말 아침에 아홉시 넘도록 늦잠 자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던

내가 2주에 한 번씩 토요일마다 아침 아홉시 반부터 공부를 하고 있다.

마을 조합에서 책을 통해 공부를 하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거기에 참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와 직업이 모두 다른, 그러나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들 여덟이 모여

정해진 책을 읽고 발제를 해서 발표를 하고 질문을 하고 토론을  하는 이 모임은

지난해 12월에 첫 모임을 가진 이후 해를 넘겨 이어지고 있다.

 

책 한권을 선정해서 2회에 걸쳐 읽고 토론하다보면 한달이 훌쩍 가곤 하는데

평소에 잘 읽지 않는 책들이라 읽고 발제를 하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다.

 

세 아이 키우며 살림 하며 이곳 저곳에 글도 써 가며 조합일까지 하다보니

아이들이 방학이라도 느긋하고 여유있게 보내는 날이 별로 없는데

독서모임까지 하느라 사실 벅찰때도 있다.

주말엔 남편까지 온가족이 함께 지내기 때문에 다섯 식구 세끼 밥 차리는

일 만 해도 하루가 다 가는데 2주에 한 번씩 이지만 서둘러 아침을 챙겨 놓고

일찍 집을 나서려면 평소보다 훨씬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그래도 애써가며 참가하는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내 안에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있기 때문이다.

늘 새 글을 읽고 새로운 것을 익히고 배우는 자세는 친정 아버지가

물려주신 가장 고마운 자산이다.

어린시절을 돌이켜보면 아빠는 늘 무언가를 읽고 계셨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반드시 메모를 하시곤 했다. 그래서 어디서건 기회가 있으면

딸들에게 당신의 지식을 나누어 주셨다.

칠십대 중반을 넘으신 지금도 아빠의 그런 태도는 변함이 없다.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터울이 큰 세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도

나 역시 늘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젖을 먹이면서도 음식을 하면서도

신문을 읽고 책을 읽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크면서 세상에 대해 묻기 시작하자 나 혼자 하는 공부만으로는

충분한 대답을 해주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세상을 읽는 내 시각이 여전히 좁고 특정한 분야에 편중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보다 폭 넓고 다양한 시각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진작부터 뜻이 맞는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공부하는 모임을 꿈 꾸었으나

내겐 늘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어린 아이들이 있었다.

 

막내가 어느정도 커서 언니, 오빠와 어울려 노는 것에 편해 지기 시작하자

다시 함께 하는 공부에 대한 열망이 커져 갔다. 그 즈음 마침 마을에

협동 조합이 생겼고, 교육 문화부 활동을 시작하면서 뜻이 같은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모이기 시작했다.

 

다들 마을에서 배우고, 마을에서 놀고 마을에서 함께 아이를 키우며

마을에서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를 누리는 삶을 꿈 꾸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같이 모여 공부하기로 했다.

공동체를 이해하고 인간을 이해하고, 자본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그런 공부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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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넷, 여자 넷이 모여 책 읽는 모임을 열었다.

2주에 한 번 토요일 오전에 조합 터전에 모여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 하고

서로의 삶을 나누기 시작했다.

첫 책은 '피터 크로포트긴'의  '만물은 서로 돕는다' 였다.

자연계와 인간 사회의 역사를 통해 서로 돕고 함께 연대할때 더 양질의 생존이

가능했다는 다양한 사례를 배워가며 지금 우리의 일상속에서 더 많이 연대하고

도울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두번째 책은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이다.

단순하고 한정된 환경과 재화속에서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주어야 할 의무와

받아야 할 의무를 삶에서 가장 중요한 도덕으로 받아들였던 원주민들의 삶을

읽다보면 공동체가 같은 도덕적 의무를 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 깨닫게 된다.

솔직히 이런 책들은 대학때 세미나를 위해서나 읽었던 것 같다.

결혼하고 살림을 하면서 독서를 꾸준히 하긴 했지만 잘 읽히지 않는 인문학책은

멀리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정말 정말 오랜만에 맘 먹고 집중해서 공부하듯

책을 읽고 있다.

책 읽는 것도 힘들지만 발제는 더 부담스럽다. 내용을 이해하기도 벅찬데 발제까지

하려면 몇 번이고 거듭 읽어가며 애를 써야 한다. 그런데도 좋다. 정말 그렇다.

 

내가 혼자 읽으려면 힘들었을 책을 나와는 다른 분야에서 다양한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읽다보면 어렵던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면서 순간 머리속이 환해진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던 구절들이 한꺼번에 풀리면서 글 전체의 맥락과 뜻이

잡히는 순간의 희열은 중독성마저 있다. 함께 공부하는 즐거움이다.

모두 모여 책을 읽으며 토론을 하고 있으면 학생때로 다시 돌아간 것 같다.

그 순간만큼은 밀린 빨래나 쌓인 설거지나 찬거리가 마땅찮은 냉장고를 잊게 된다.

세 아이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 한 집안의 주부가 아닌 나  자신으로 있는 것이다.

 

개인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공부, 배워서  내가 잘 되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배워서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한 공부, 그래서 모두가 더 성장할 수 있는 그런 공부를

하는 즐거움은 특별하고 귀하다. 힘들어도 애쓰게 된다.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정신이 흐려지는 그 순간까지 세상의 일들에 반짝이는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고 내가 아는 것들을 다른 이와 나누는 삶 말이다.

터득하고 깨닫는 만큼 내 일상을 조금씩 바꾸어 가고 내가 사는 동네를 바꾸어 가고

지구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조금 더 환하게 하는 그런 삶..

그런 꿈이 있어 마흔 여섯의 공부에 마음을 기울인다.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들도 이런 것이다.

물려줄 땅도, 재산도, 집도 자신없지만 늘 공부하는 엄마의 모습을

물려주고 싶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서라도 배움은 일어나고 그 배움으로

더 나갈 수 있다. 어떤 삶을 살아도 공부는 할 수 있고, 내가 배운 것으로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이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자, 다시 '증여론'을 편다.

힘든 절반을 넘겼으니 남은 절반은 조금 더 수월하겠다.

 

마흔 여섯의 공부...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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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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