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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31일, 밤에 우린 그 해의 마지막 가족 모임을 가졌다.

많은 사람들이 해넘이와 해돋이를 보러 전국의 유명한 장소들로 여행을 떠나고

더러는 보신각에 모여 새해 타종을 보기도 하고, 아니면 친구들끼리 모여

왁자하게  새해를 맞는 모임을 하는 그런 날,

우린 늘 그랬듯이 가족끼리 조촐하게 한 해를 돌아보는 자리를 가진 것이다.

 

이날을 위해 나는 가족들에게 특별한 제안을 했다.

자신을 뺀 나머지 네 명의 가족들에게 각각 어울리는 상장을 만들어

주자는 것이었다.  상장 제목도 내용도 만들어 주는 사람이 정하는거다.

1년을 곰곰이 돌이켜보고 그 사람에게 꼭 주고 싶은 상이 무엇인지,

어떤 상이 어울리는지 생각해보고 취향대로 상장을 만들고 그려서

가족모임때 서로에게 수여하자는 내 제안을 아이들은 유쾌하게 받아들였다.

남편은 관심없는 척 하더니 정작 12월 31일이 되자 회사에서 전화를 했다.

"가족상장이라는거... 어떻게 만들어야돼?"

"뭘 어떻게 만들어,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지..."

퉁명스럽게 대꾸했지만 이 사람, 은근 신경쓰고 있구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아이들은 책상에 앉아 상장을 그리고 제목을 정하느라 한바탕 즐거운

소동을 벌였다. 내가 다가가기라도 하면 보면 안된다고 펄쩍 손사래를 쳤다.

저희들끼리도 안 보여주며 그리느라 애를 쓰는 모양이었다.

나도 애들에게 들키지 않게 내 책상에서 상장 네 개를 만들었다.

그냥 색지에다 색연필과 싸인펜으로 글씨를 쓰고 장식을 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한 명 한 명 어떤 상을 주고 싶은지 고민하다보니 가족들의 1년이 선명하게

떠오르며 뭉클하고 고마운 마음에 혼자 울컥거리기도 했다.

 

마지막날까지 야근을 한 남편이 퇴근을 하고 늦은 식사를 마친후

우린 거실에 동그랗게 모여 앉았다.

각자 자신이 만든 상장을 들고 있었다. 상받는 사람에게 네 명의 가족이

자신들이 만든 상장을 소리내어 읽고 전해 주었다.

 

먼저 아빠에게 윤정이가 상을 주었다.

 

- 일 상

  이 상장은 1년 동안 우리를 위해 일을 해주신

우리 아빠, 힘들고 지쳐도 짜증을 안 부리고 꿋꿋이

많고 힘들고 지겨운 일을 해 주신 아빠께

이 상장을 수여합니다. -

 

한 옆에는 컴퓨터 앞에서 커피를 들고 '아 힘들다' 하고 서 있는

남편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쑥쓰러운 듯, 그러나 또박 또박 상장을 읽고 아빠에게 건네는 윤정이의 모습이

너무나 대견했다. 아빠가 힘들게 일하고 있는 것을 알아주고

위로하고 감사하는 내용에 남편도 감동한 눈치였다.

 

가족상장 8.jpg

 

필규는 아빠에게 '뚝딱 뚝딱 상'을 주었다.

아무거나 잘 고치고 만들기 때문에 주는 상이란다.

쓱쓱 순식간에 네 장의 상장을 만든 녀석이지만 귀엽고 고마왔다.

 

내가 남편에게 준 상은 '고맙고 미안해 상'이었다.

'1년동안 마누라의 잔소리를 참아주어 고맙고 애들 때문에 힘들고

고단하다는 핑계로 잘 못해준게 미안하다고, 새해엔 더 많이

사랑하자'는 내용이었다.

 

이룸이는 가족마다 호칭을 쓰고 '사랑해요'라는 글씨를 이쁘게 적었다.

 

가족상장 9.jpg

 

아직 글씨를 잘 모르는 이룸이는 '아빠 사랑해요' 라는 말밖에는 쓸 수 없었지만

모든 글씨와 그림을 저 혼자 쓰고 그리는 정성을 보였고, 글씨대신

그 사람의 특징이 담긴 이쁜 그림으로 식구들에게 웃음과 기쁨을 주었다.

 

이룸이가 내게준 상장에는 '엄마 사랑해요'라는 글씨 아래

두 손을모아 사랑의 하트를 하고 있는 제 모습을 그려 넣었다.

늘 이쁘게 그려주는 내 모습도 함께 있었다. 마음에 꽉 차는 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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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상장을 줄 차례가 되자 서류가방에서 클리어화일에 넣어 온

상장을 꺼냈다. 가족여행에서 나와 세 아이가 함께 찍은 사진을

배경에 넣어 컴퓨터로 출력해서 만든 상이었다.

 

나는 사실 지난해 남편에게 그닥 잘 한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잔소리상'이나 '바가지상'같은 것을 받지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내게 준 상은 '고마움상'이었다.

 

'2014년 한 해 동안 세 아이들을 이토록 험난한 세상에서도 눈부시게

자라게 한 당신, 그 이쁘고 고운 빛으로 주변을 환하게 물들일 수 있도록

사랑하는 신순화님께 상을 드립니다'라는 글씨 아래

'당신을 사랑하는 남편'이라고 쓰여 있었다.

남편이 이 글을 읽고 내게 상장을 주자 아이들은 "와, 멋지다" 하며 박수를 쳐 주었다.

 

눈물이 찔끔 나올뻔 했다.

평소에 전혀 문학적이지 않은 사람인데다 내가 쓴 글에 나왔던 표현을 다수 인용하긴

했지만 그래도 남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상장이었다.

미안하고, 고맙고, 많이 기뻤다.

 

가족상장 4.jpg

 

윤정이는 내게 '요리상'을 주었다.

 

'이 상장은 1년동안 우리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맛있는 간식이랑 각종 요리를 만들었으며 항상 맛있게

해줘서 이 상장을 주고자 합니다'라고 써 있었다.

옆에는 가스렌지와 싱크대가 놓여져 있는 주방에 서서

음식을 맛보며 '음, 맛있다'라고 말하고 있는 내 모습이 이쁘게 그려져 있었다.

윤정이의 사랑스러움이 가득 담긴 상장이었다.

반찬만들기 귀찮다고, 밥 하는거 하기 싫다고 짜증도 많이 부리고

게으름도 많이 피웠는데 그래도 엄마를 늘 맛있는 음식 만들어 내는

사람으로 기억해준다는게 정말 정말 고마왔다.

 

필규가 내게 준 상은 '햇빛상'이었다.

'위 사람은 항상 우리를 햇빛처럼 따듯하게 보듬어 줬음으로 이 상을

수여합니다'라고 썼다.

하하하.. 웃었다. 나에게 '햇빛상'이라니... 이런상을 아들에게 받을 줄 몰랐다.

마음을 햇빛처럼 따스하게 해 준 상이었다. 필규의 표현력에 또 한번

감동을 받기도 했다.

 

윤정이는 오빠에게 '배려상'을 받았다.

'위 어린이는 항상 우리를 위해 배려함으로써 이 상을 드립니다'라는

내용을 보면서, 겉으로는 늘 동생에게 틱틱거리고 자주 못살게 구는 것 같아도

속으로는 제게 잘 양보하고 저를 잘 도와주는 윤정이에게 고마와하는 마음이

있었구나...싶어 대견했다. 윤정이는 오빠의 상을 받고 활짝 웃었다.

남편은 윤정이에게 '눈부심상'을 나는'대견 기특상'을 주었다.

모두 1년동안 학교생활과 일상에서 많은 성장을 이룬 윤정이를 축하하는 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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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룸이는 '언니 사랑해'라는 글씨 아래 언니와 둘이서 재미나게 노는 그림을 그려

언니에게 주었다. 귀엽고 이쁜 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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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이는 오빠에게 '레고상'을 주었다.

'이 상장은 1년동안 우리들을 위해 멋진 레고집을 만들어 주고

멋진 부품도 빌려주고 가끔 화도 내고 좋은 집을 만들어서

이 상장을 수여합니다'

 

셋이서 레고 놀이를 하면서 무던히도 싸우기도 했지만 그래도

제일 많이  어울려 함께 한 놀이에서 오빠에게 받은 고마움을 전하는 상이었다.

필규는 키득거리며 이 상장을 받았다.

남편은 '성큼성큼'상을, 나는 '쑥쑥 듬직상'을 필규에게 주었다.

1년동안 무엇보다 키와 몸이 쑥쑥 자란 아들에 대한 대견함을 가득 담은 상이었다.

이룸이는 '오빠 사랑해'라고 쓰고 오빠에게 손 하트를 그려 보이는 제 모습을 그린

상장을 주었다.

가족상장 1.jpg

 

마지막으로 이룸이 차례가 되었다.

이룸이는 뿌듯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윤정이는 이룸이에게 '역할상'을 주었다.

'이 상장은 나랑 놀이할 때 내가 하라는 역할

상황을 잘 따라 했고 자기가 싫어도 내가 준 임무를 아주 잘 해서

이 상장을 수여합니다'라고 써 있었다.

윤정이가 이 상장을 읽을때 가족 모두가 크게 웃었다.

매일 둘이서 온갖 역할 놀이를 하며 노는데 매번 저만 동생이나 아기,

학생을 하는게 속상하다고 울고불고 하던 이룸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룸이는 언니랑 역할놀이 하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이룸이는 이 상을 아주 마음에 들어했다.

 

필규가 이룸이게게 준 상은 '항상 밝은 상'이었다.

'위 어린이는 항상 우리를 밝게 만듬으로 이 상을 수여합니다'

어린아이답게 엉뚱한 대답과 말들로 우리를 자주 웃게 하는 막내를

위한 상이었다.

남편은 '큰 기쁨상'을 나는 '최고 귀염상'을 주었다.

귀여운 애교와 깜찍한 재능으로 우리 부부를 늘 많이 웃게 하는

사랑스런 막내딸에게 주는 상이었다.

 

모든 상을 다 주고 과자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을 주고 받은 소감도 이야기했다.

그 사람에게 꼭 맞는 상을 모두가 주었다며 신기해하고 좋아했다.

자기가 받은 상도 정말 마음에 든다는 이야기도 했다.

제 마음을 알아줘서 고맙고 그걸 상으로 만들어 줘서 고맙다는 말도 나왔다.

나는 내 제안을 이렇게 멋지고 감동적으로 만들어준 남편과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상장을 만들며 서로에 대한 생각을 새삼스럽게 진지하게 할 수 있어 좋았고

가족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나와 뿌듯했다.

나 역시 남편과 아이들에게 생각하지도 못한 멋진 상을 받으면서

1년의 마무리가 더없이 행복했다고 고백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준 상은 모두 모아 잘 간식하기로 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매년 마지막 날에 서로를 위해 상장을 만들어 주기로 약속했다.

상장의 내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1년을 지낸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하면서 새로운 해를 열심히 돕고 사랑하며 살자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날밤.. 나는 뿌듯하고 고마와서 오래 오래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즉흥적인 제안이 이렇게 멋진 감동으로 탄생한것도 고맙고, 가족 모두의

수고와 노력과 마음을 알아준 서로 서로가 다 고맙고 또 고마왔던 것이다.

 

요란하고 화려한 파티보다 이렇게 서로의 1년을 돌아보고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상장을 만들어 주는 자리... 연말에 가족끼리 친구끼리 친지끼리 함께 한다면

정말 좋겠다.

 

이따금 기운이 빠지고 속상해질때 남편과 아이들에게 받은  상장들을 다시

꺼내보면 번쩍 기운이 날 것 같다.

 

웃음과 감동이 있는 가족 상장 수여식..

꼭 연말이 아니라도 아무때라도 가족끼리 이런 모임을 가져보길 권한다.

기대한 것 보다, 그 이상으로 행복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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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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