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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일곱.

따각따각 구두를 신고 머리를 볼륨있게 말아올리는 걸 좋아하던 도시처녀는 깊숙한 산중의 씨족 마을에 도착했을 때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을까.
거기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푸세식 화장실이 딸린 허름한 집과 술이 전부인 시아버지, 완고한 시어머니, 무뚝뚝한 남편, 장남인 남편 밑으로 시동생과 시누이가 다섯이나 딸린 가난한 살림이었다.

 

겨우 먹고 살 정도의 농사, 남편의 얇은 월급봉투가 전부였던 빠듯한 생활에 보탬이 되고 싶었던 그녀는 부지런히 일거리를 찾아다녔다. 봄이면 고사리와 취를 뜯었고, 여름에는 장딴지에 거머리가 달라붙어 피를 빨아 먹는 줄도 모르고 다슬기를 잡았다. 가을에는 도토리를 주워와 묵을 만들었다. 인삼농사가 한창일 때는 어린 딸을 업고 겨울밤 내내 미듭으로 새끼를 꼰 다음 억새를 엮어 삼장 발을 만들었다.

 

“그래도 처녀 적보단 나았어. 그 땐 더 한 일도 했는데 뭐.”
결혼 전에도 그녀는 일복이 넘쳤다. 여자라는 이유로 중학교까지만 보낸 그녀의 아버지는 붙임성 좋고 여장부스타일이었던 그에게 이런저런 일을 맡겼던 것이다.


시작은 만화방이었다.

아버지의 천주교 세례명을 딴 ‘시몬 만화방’은 번화가에서 한참 떨어진 골목에 문을 열었다. 목은 안 좋아도 열심히만 하면 입소문이 나겠지 했던 것은 사업에 소질이 없던 공무원 아버지의 착각이었다. 가게 안쪽 소파에 죽치고 앉아 낄낄대며 만화책을 뒤적이는 일당은 무기력한 백수들 아니면 젊은 그녀 엉덩이에 제 몸을 밀착시킬 기회만 엿보는 변태였으니까. 그마저도 몇 안 된 바람에 시몬 만화방은 금방 간판을 내렸다.
그러나 그녀에겐 가장 쉬웠던, 좋은 시절이었다. 신간을 정리하고 가게를 청소하는 틈틈이 소설 책장을 넘기며 언젠가 이 지긋지긋한 만화방을, 집을 벗어나는 꿈을 꾸었던 자유의 공간.

 

한창 유행하던 방문 판매계에도 뛰어들었다. 종목은 건어물과 마사지 기계.
여수에서 오징어, 미역, 청태, 멸치 같은 건어물을 떼 온 다음 역시 여수 출신 아줌마들로 판매조직을 꾸려 도시를 누비고 다녔다. 35년 전에, 더구나 시골에서 마사지 기계를 들일만한 집이 얼마나 됐을까 싶은데, 하여튼 마사지 기계의 주요 고객은 시골 아줌마들이었다.
고작 스물을 갓 넘긴 아가씨가 몇 다리 건너 아는 이들이 소개해준 마을 회관에서 엿장수처럼, 약장수처럼 청산유수로 말을 쏟아내다 보면 어쩌다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 하는 상념도 들었을 법하건만. 그는 언제나 환하게 웃으며 엄마와 동생들에게 신 나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냈다. 

 

만화방 실패를 교훈 삼아 다시 도전한 것은 ‘시몬 서점’이었다.

시내에서도 가장 붐비는 교차로 한 가운데에서 책도 빌려주고 한쪽에선 형광등, 전구, 콘센트 같은 물건을 파는 다목적 책 대여점이었다. 서점은 오가는 중고등학생들로 꽤 붐볐다. 그 가운데는 소위 의리파 일진들도 껴 있어서 깡패 집합소로도 이름을 날렸는데, 가게 한쪽 구석의 연탄불에 국수 끓여 먹는 걸 좋아했던 시몬 서점의 호방한 여사장은 그들의 큰 누님으로 불렸다.

 

허름한 창고를 빌려 기계 서너 대를 들여놓고 낚시 방울을 만들 때였다.
일요일, 하필 그녀는 창고에서 혼자 방울을 찍어내고 있었다.

 

그때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바람에 살랑 꽃잎이라도 떨어졌던 걸까?
어느 낭만적인 시인의 시라도 읊었던 것일까?
찰나의 순간.
날카로운 절단기에 그녀의 엄지손가락 한마디가 잘려나갔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피가 철철 흐르는 손을 감싸 쥔다.
그런데 크게 소리 내 울지도 못한다.
뼈가 끊어지는 고통보다 엄한 아버지에게 혼날 것이 더 무섭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잘려나간 엄지손가락을 재빨리 흙 속에 파묻어 버렸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안 어머니가 병석에 누운 채로 슬피 울었다.
“어린 것이, 시집도 안 간 것이 어쩌면 좋으냐! 어쩌면 좋아!”

 

사라진 엄지손가락과 함께 그녀의 젊은 날은 스러져갔다.
오래 앓았던 어머니가 끝내 돌아가셨고, 가세는 가파르게 기울었다. 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일을 하느라, 병든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을 돌보다 혼기를 놓친 그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1년 뒤 결혼을 했다.

 

떠밀리다 시피 한 결혼생활에, 먹고 사는 것 이외의 모든 것을 사치로 여기는 시골에서 무슨 낙이 있었을까 싶은데 그는 꿋꿋하게 생활을 이어갔다.
종이 박스에 꽃무늬 벽지를 발라 근사한 책꽂이를 만들었고, 문에 창호지를 바를 땐 미리 따둔 꽃잎을 넣어 햇살이 비칠 때마다 은은한 꽃 그림자가 졌다.
알코올 중독자인 시아버지가 년 자를 붙이며 욕지거리를 퍼부을 때면 속으로 ‘엄마’를 부르며 견뎠다.

시어머니가 눈치를 주든 말든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아이들 소풍에 쫓아갔고, 매일 아침 두 딸의 머리를 예쁘게 빗겨 학교에 보냈다.

동네 노인들처럼 엄지손가락으로 한쪽 콧구멍을 막고 아무렇지도 않게 팽하고 코를 풀던 어느 날. 그녀는 내가 진짜 여기 사람이 다 됐구나 싶었으리라.

 

그런 시골여자가 도시여자로 변신하는 날이 있다.
친정에 가는 날. 어머니의 제삿날이다.
서울 사는 조카들이 물려준 것 중 가장 고급스러운 원피스를 골라 두 딸에게 입힌다. 이제 그녀의 차례. 행여나 식구들이 마음 아파할까 최대한 멋을 부려보지만 검게 그을린 얼굴과 부르튼 손은 감춰지지가 않는다.

하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어머니는 가고 없는데.

그녀에게 어머니 없는 친정은 들추고 싶지 않은 아픈 추억이다. 친정도, 시가도, 그녀는 어디 한 군데 붙일 곳 없는 제 마음이 폐허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 에미의 외로운 속은 모르고 볼이 빨갛게 튼 아이들은 어서 가자며 그의 손을 잡아끈다.

 

오랜만에 육 남매가 다 모였다.
지지직! 기름 끓는 소리를 내며 전을 부칠 때만 해도 잔칫집같이 화기애애하다. 그러나 제사상이 차려지고 영정사진이 놓이면 분위기는 갑자기 침울해진다. 마치 슬픈 연극이 시작된다는 연출가의 사인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그 누구도 말을 해서도, 눈을 마주쳐서도 안 된다는 규칙이 정해진 무언극.
어린 딸은 아까부터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엄마는 어김없이 오늘도 울어버릴까? 엄마가 운다면 나는 또 어떡하지?

 

딸 넷이 일렬로 서서 술잔을 올리고 절을 한다.
매년 똑같이 반복되는 동작이지만 매번 너무 진지해서 숨이 막힐 것만 같다.
두 번째로 엎드려 다시 절하는 순간, 그녀가 흑, 울음을 터뜨린다.
그녀는 온몸을 벌벌 떨면서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운다. 그게 대성통곡이었다면 그의 딸도 맘 편히 같이 울어버렸을 텐데. 그러나 그녀는 간신히 슬픔을 참는다는 듯 흐느낄 뿐이다.
그녀의 딸은 날카로운 것으로 가슴을 긁어대는 것 같은 애절한 울음소리를 들으며, 저러다 엄마도 외할머니처럼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힌다.
외할머니는 왜 그리 일찍 돌아가셨는지, 아빠와 외할아버지는 왜 엄마를 일으켜 세우지 않고 바라보고만 있는지 원망스럽다. 그러다 아빠도, 자식인 그도 그녀에게 위로가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왠지 서럽다.

 
어린 딸에게 엄마가 무너진다는 건 세상이 끝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씩씩하게 웃는 엄마였기에, 아니 그런 엄마여야 했기에 그가 약해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딸은 얼굴도 본 적 없는 할머니에게 빌었다.
제발 내 엄마는 당신처럼 일찍 돌아가시지 않게, 그래서 엄마를 잃은 내가 저토록 비통하게 우는 일이 없게 도와달라고.

 

 

 엄마2.jpg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흘렀다.
딸은 스스로 엄마로 불리고 난 다음에야 엄마가 엄마 없이 아이를 낳고 살아온 세월이, 스스로 강해져야 했던 한 여자의 삶이 애달프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엄마'란 이름은 늘 가슴이 시리다는 것도 알았다.

이젠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우는 엄마를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녀는 더 이상 제삿 날에 울지 않는다.

 

내일은 그녀가 태어난 지 60해가 되는 날이다.
딸은 제 자식 첫 생일상을 차리는 심정으로 엄마의 환갑을 준비했다.


육십 살. 모든 일에 심드렁할 만한 나이건만, 자식들에게 대충들 하라고 했지만, 실은 그녀도 무척 설렌다.

손님들에게 선물할 수묵화를 정성껏 그려 포장을 하고, 상기된 얼굴로 여기저기 의견을 물어가며 한복을 골랐다. 비록 부모님은 안 계시지만 대신 팔순의 고모들을 대접할 생각에 기쁘기만 하다. 축하 공연으로 기타연주를 연습하는 남편을 보며 갑작스런 울컥함에 와락 눈물을 쏟기도 한다.

그런 엄마를 보며 딸은 꼭 생일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 같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사진으로 엮은 축하 동영상에 자식들의 인사를 한 마디씩 넣기로 했다.
어린 시절, 엄마가 죽는 것이 세상에서 젤로 무서워 숨죽여 울던 딸은 젖먹이를 안고 말한다.
“엄마와 딸로 맺어진 인연에 감사해요.”
동영상에 실린 멘트는 거기까지지만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있다.

 

“엄마, 내 엄마로 살아줘서 정말 고마워.
다음 생에서도 엄마와 딸로 다시 만나자.
그 땐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될게.”

 

그나저나 좋은 날 눈물바다나 만들지 말아야 할 텐데.
오늘 밤 두 여인은 같은 바람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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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숙
2012년 첫째 아이 임신, 출산과 함께 경력단절녀-프리랜서-계약직 워킹맘-전업주부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경험 중이다. 남편과 1인 출판사를 꾸리고 서울을 떠나 화순에 거주했던 2년 간 한겨레 베이비트리에 ‘화순댁의 산골마을 육아 일기’를 연재했다.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를 통해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17년 겨울, 세 아이 엄마가 된다. 저서로는 <호주와 나 때때로 남편>이 있다.
이메일 : elisabethahn@naver.com      
블로그 : http://blog.naver.com/elisabeth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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