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좋아하면 머리 벗겨진다는 건 거짓이요, 하늘 아래 공짜 없다는 말은 참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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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1년 쯤 분유를 완전히 끊은 아들은 우유에 맛을 들였다. 이때만 해도 뭐든 잘 받아먹고 잘 마시기에 퍽도 먹성 좋은 아들을 낳았구나 마음 든든하여 밥 안 먹어 고민이라는 엄마들 육아상담도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아기는 이유식도 냉큼냉큼 잘 받아먹고 아침 저녁으로 우유도 꿀꺽꿀꺽 잘 마셔주어 에미 바라보기에 키며 몸무게며 퍽도 흡족하였다.

 

우유는 완전 식품이 아니라 완전하게 불완전한 식품이라는 다큐멘터리 <우유의 불편한 진실>도 머리에서 지운다.

13년 1월 말부터 13년 3월 초까지 약 2개월 간 우유 떨어질새라 부지런히 사다 날랐다. 냉장고를 채운 우유를 보면 우리 아기 양식이 그득하구나, 제 논에 물대는 농부 마냥 마음이 흐뭇했다. 마트에서 손쉽게 구하는 서울, 매일, 남양우유를 메인으로 때로 뚜레쥬르나 파리바게트의 포장도 예쁜 제과점 우유, 이름도 부티나는 프리미엄 다이아앤드골드 우유도 시험삼아 사보곤 했다. 우유 맛에 차이가 없는 건지, 뭐든 잘 먹는 성향 덕인지 거부하는 우유는 하나도 없었다. 누락된 기록이 상당할 듯 하지만 대략 이 시기 먹은 우유는 11,000ml, 일일 평균 180ml 정도를 마신 모양이다. 마트 우유의 가격은 32,990원. 저렴하다!

 

햇빛도 좋은 4월의 화요일이었다. 문화센터에서 돌아오는 길, 여느 때처럼 유모차를 밀고 느릿느릿 아파트로 향하는데 때마침 장날인지라 길이 꽤 북적였다. 채소며 과일, 간식거리들을 화요장에서 곧잘 사던 터라 살 게 없나 두리번대던 차에 눈길을 끄는 게 있었으니.

 뽀로로며 타요 같은 캐릭터 장난감부터 프라이팬, 냄비 등 주방용품까지 길목에 높이높이 쌓였다. 그렇다! 이것은 사은품.

나는 그의 호객 행위에 홀린 듯 이끌린다. 그가 내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난 다만 행인에 불과했으나 그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난 그에게로 가 우유의 노예가 되었으니.

 

 내 손은 어느새 그가 쥐어준 종이에 쓱쓱 사인을 하고 있다. 12개월 계약 완료.  485ml 아인슈타인 우유가 일주일에 6개, 월 45,000원 전후이니 개당 2000원 정도인 셈이다. 허나 이때의 나는 우윳값이 궁금치 않았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선택과 집중.

 

괜찮은 물건을 놓칠새라 찬찬히 둘러본 후 뽀로로 드럼을 골랐다. 제법 부피가 돼 들고 가기 불편할 성 싶지만 드럼 스틱을 두드리며 신이 난 아기의 환영에 사로잡혀 기쁘기가 한량 없었다.

그때다. 치고 빠질 때를 아는 그가 공격의 끈을 놓치지 않고 6개월 연장 계약을 하면 하나를 더 선택할 특권을 주겠단다. 그렇다. 12개월에 하나였는데 18개월에는 사은품이 둘이라니!

 

머릿속으로 지극히 초등학생적인 셈을 한다. 12 : 1은 24 : 2, 따라서 18 : 2는 나에게 지극히 이익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사은품을 둘러본다. 장고 끝에 마침내 뽀로로 버스를 들어 올렸다. 이것을 사람들은 득템이라 이르는가!


1단계, 유모차 위에 뽀로로 버스를 올리고 2단계, 한 손으로 유모차를 밀며 한 손으로는 덩치도 큰 뽀로로 드럼 세트를 들고 3단계, 수시로 노선을 이탈하는 유모차를 바로잡고 4단계, 수시로 유모차 아래로 낙하하는 뽀로로 버스 되올리기를 거듭하고 5단계, 수시로 손에 든 뽀로로 드럼 세트를 내린 채 한숨을 돌려가며 집까지 이르렀다. 참으로 지난한 귀갓길이었다.

 

집에 도착해서야 계약서를 찬찬히 본다. 485ml 짜리 우유 단가가 2000원. 냉장고 속 아인슈타인 우유와 비교해 본다. 500ml에 1500원.

 
그에게 전화를 건다. 용량이 적다, 가격이 비싸다, 할 말을 하자 '잘 보시게, 마트 판매용과 달리 프리미엄이란 글이 붙었단 말일세. 가정에 공급하는 배달 우유는 질적으로 마트 우유와 큰 차이를 보인다네.'란 대답이 돌아왔다.

과연 프리미엄이란 글자가 떡하니 붙었다. 여태껏 내 아들을 프리미엄으로 키운 적이 없거늘, 그래, 이미 사은품을 이고 지고 왔으니 되돌아가기도 막막하오, 무를 수도 없는 일. 체념하고 받아들였다. 잘만 먹어준다면 괜찮소.

 

아들은 아침, 저녁으로 200ml, 도합 하루 400ml를 꾸준히도 먹었다. 이러니 일요일의 우유가 부족해 수시로 마트에서 사다 나르는 일까지 생기고 나는 또 사은품에 눈이 멀어 200ml 짜리 우유를 추가할까라는 참으로 가당찮은 생각까지 하기에 이르렀으나.

 

 끊었다! 딱 끊었어.
 아들이 우유를 끊었다. 집안에 우유 들인지 4개월만의 일이오, 앞으로 가야할 나날이 1년 2개월이 남은 시점이거늘. 냉장고에는 우유가 쌓이기 시작했다. 우유를 싫어하는 에미는 대신 마실 엄두도 나지 않고.

슬며시 객을 부르던 그에게 전화를 넣어본다. 위약금 이야기를 듣는다. 전화를 끊는다.
얼마 후 우윳값이 올랐다. 우윳값은 5,000원 여가 올라 50,000원으로 인상됐다. 이 기회에 끊을까 싶어 염치없이 항의 전화를 넣어본다. 국가 차원의 인상이라 기업에서 별 도리 없다는 대답이 돌아와 그렇구나, 또다시 순순히 전화를 끊는다. 
 
그러던 차, 집을 옮겼다. 우유는 응당 가야할 곳을 함께 간다는 듯 따라 붙었다. 냉장고에 쌓이는 우유를 감당할 길이 막막해 다시 전화를 넣었다. 이제는 진정 위약금을 물더라도 끊어야겠소.
위약금이 약 6만원.

뽀로로 드럼세트가 인터넷 최저가 50,000원, 뽀로로 버스가 30,000원 전후. 그래, 내가 득을 봤구나. 약삭빠르게 위안을 구하며 위약금을 물겠다는 의사를 밝혔더니 영업점에서는 작은 우유로 바꾸는 것이 어떻겠느냐며 베이비 아인슈타인을 권한다.

먹든 안 먹든 어린이집에 우유 하나씩 넣어 보내던 터라 오케이했다. 나는 위약금 안 물어 좋고 그쪽은 고객 유지해 좋고. 꿩 먹고 알 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치고 가재  잡고 좋은 게 좋고.
 허나 480ml 짜리를 185ml 짜리로 바꾸기에 계약기간도 두 배로 늘어난단다.

 아니, 아니, 아니되오. 결국 작은 우유를 하루 두 개 받기로 결정했다. 용량 큰 우유 하나보다 작은 우유 둘이 낫지 하며. 
 그리하여 단가 1000원 짜리 베이비 아인슈타인 우유가 하루 두 개씩. 월 44,000원.

 

평화협정의 결과로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면 좋았을 것을.
우유를 먹다 말다 먹다 말다 되풀이하는 세 살 아기는 굳이! 직사각형 팩의 멸균우유를 찾기 시작하니 이것은 또 뭐하는 액션이신가. 배달 우유를 쌓아 두고서 스물 네 개들이 멸균우유를 틈틈이 위메프에서 사들이고 있으니. 결국 베이비 아인슈타인 프리미엄 우유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에 앙증맞게 쥐어지곤 한다.

 

중간중간 휴가 때며 집을 비울 때 배달을 중지한 탓에 길고 긴 우유 노예 생활은 내년 1월에나 끝이 날 모양이다. 평균 5만원 정도의 우윳값이 18개월이니 90만원이오.

문앞 배달이 편리하면 얼마나 편리하고 프리미엄 성분이 좋으면 얼마나 좋으랴, 마트에서 먹고 싶은 만큼 사 먹을 걸 그랬다며 두고두고 후회다. 
 
아, 18개월, 우유의 노예는 다짐을 해 본다. 내 결코, 두번 다시 사은품에 혹하지 않으리. 내 나의 굳건한 자유의지로 마트에서 우유를 고르고 계산대에서 셈을 치르겠소.

해방의 빛이여, 속히 드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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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주
나이 마흔에 엄마가 되었습니다. 남들 한 마디 할 동안 열 마디 한다며 타박 받을만큼 급하고 남 이야기 들을 줄 모르는 성격이었거늘, 걷고 말하는 것 등 모든 것이 늦된 아이를 만나고 변해갑니다. 이제야 겨우 기다리고, 세상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사람에게 처음 다가온 특별함, 아이와 함께 하는 날들의 이야기가 따뜻함으로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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