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 정우야. 7월말에 이어 두번째 인사를 드려. 무슨 월간지도 아니고, 우리 아빠 너무 게으르다. 그치? 저번에도 말했지만, 반말은 그냥 편하라고 쓰는 거니까 예의없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편안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나 같은 꼬맹이가 예의가 있으면 얼마나 있을라고.ㅋㅋ
오늘은 지난 여름 우리 가족이 다녀온 동해안 캠핑 이야기를 해볼까 해. 때는 무더위가 절정으로 치닫던 8월 중순, 엄마는 깜짝 놀랄 여름 방학 이벤트를 준비하고 계셨어. 사실 우리 형제는 집에서 뒹구는 것도 나름 좋거든. 근데 우리 엄마는 그런 꼴을 볼 수가 없으신가봐. 늘 "왜 집에만 있냐? 밖에 가서 좀 뛰어 놀아라!!"고 하시지. 주말이면 축구와 야구, 주말농장까지 엄청난 운동 에너지를 자랑하는 우리 아빠도 "어떻게 나한테 너희 같은 아들이 나왔는지…." 하시며 말을 잊지 못하셔. 암튼 지난 여름 캠핑은 우리 형제들의 '방구석 탈피'를 위해 기획된 엄마의 이벤트라고 봐야지. 그리고 이번 여행은 우리 형의 유치원 '절친'이 함께 가서 남자 셋, 여자 하나가 함께 떠난 특별한 여행이 되었지.
여름 캠핑장의 3대 조건, 물놀이·샤워장·그늘
지난번 첫 캠핑일기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아버지는 사상 처음 캠핑을 기획한 뒤 캠핑 기획에서 손을 털었어. 바쁘다는 것이 핑계였지만, 신경쓸 게 너무 많아서 자기가 할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셨을 거야. 캠핑가면 스스로 머슴을 자처하는 아빠는 "머슴은 몸만 쓰면 되지 머리까지 쓰면 안 된다"는, 평소 소신대로 행하신 거지. 다시 엄마가 기획자로 나섰어. 여름 캠핑장이라 장소 섭외나 일정, 여행 경비 추산까지 보다 치밀한 기획이 필요했거든. 엄마가 헐렁한 우리 아빠를 믿지 못한 탓에 직접 지휘봉을 잡으신 거지.
엄마는 여름 캠핑장의 3대 필수 조건으로 1.물놀이를 할 수 있고, 2.샤워시설이 좋아야 하며, 3.그늘이 충분하게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셨어. 너무 당연한 것 같지만, 3대 조건을 충족하는 캠핑장을 찾기란 쉽지 않아. 엄마는 캠핑 카페를 수도없이 들락거리면서, 캠핑장의 위치 정보와 편의시설, 사용후기와 댓글 등을 일일이 체크하셨어. 마지막에는 캠핑장에 직접 전화해서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으셨겠지. 아빠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우리 엄마의 철저한 사전 준비, 정말 꼼꼼하시다. 그렇게 까다롭게 엄마의 선택을 받은 곳은 강원도 양양군의 푸른바다 캠핑장. 잔교리 해변을 끼고 있어서 해수욕을 즐길 수 있고, 캠핑비용(일박 4만원) 이외에 샤워비를 따로 받지 않아서 씻기에 부담이 없고, 소나무 그늘도 충분한 곳, 엄마의 선택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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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들의 로망 '카X발'을 타고 동해로
이번 캠핑에서 제일 좋았던 점은 형 친구네가 캠퍼들의 로망이라는 차, '카X발'을 빌려줬다는 점이었어. 정말 넓고 좋더라고. 우리 차와는 사이즈가 달라. 엄마, 아빠는 행여 사고라도 날까봐 일시보험을 들어놓으셨지. 3시간 정도를 달렸을까? 드디어 캠핑장에 도착했어. 휴가가 절정이던 때라 주차장은 거의 꽉 찼더라고. 이 캠핑장과 잔교리 해변을 국내 한 대기업이 직원들을 위한 여름 휴양지로 쓰고 있다고 해. 나보다 어린 아이들이 있는 가족 단위 캠핑객들이 많았어. 아이들이 놀 수 있는 '팡팡이'도 있더라고. 우리는 주차장 바로 옆 소나무 아래 자리를 잡았지. 캠핑장이 해변과 바로 붙어 있어서 바닥은 잔 모래밭이었어. 아빠는 익숙한 솜씨로 1시간만에 텐트를 치셨고, 엄마는 돗자리를 까는 등 내부 마감 공사를 척척 진행하셨지.
푸른바다 캠핌장에 우리 가족이 텐트를 친 모습과 아이들 놀이터 '팡팡이'
텐트를 치고, 간단하게 라면으로 배를 채웠어. 라면 광인 우리 형은 "역시 캠핌의 시작은 라면이지"라며 맛있게 먹더라고. 형 친구와 아빠도 젖가락질이 바빠지니, 라면은 금방 바닥을 드러냈어. 나는 끓인 라면보다는 생라면을 좋아하니까 캠핑을 라면으로 시작하는 게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아. 배를 채우고 나니 해변이 궁금해졌어. 우리는 바로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해변으로 뛰어갔지. 해변은 우리 텐트에서 50미터도 안 되는 곳에 있었는데, 경치가 끝내 주더라고. 모래도 진짜 고왔어. 이제 이 모래와 바다에서 뒹구는 일만 남은 거지. 영상을 봐. 지금 봐도 시~원한 걸.
잔교리 캠핑장 전경. 어른들은 캠핑의자에 앉아 우리가 노는 것을 지켜 보셨어.
엎어지고 뒤집어지고 도망가고… 배꼽 잡은 파도타기
어른들은 해변을 보자마자 가슴이 뻥 뚫리는 듯 "와"하고 탄성을 질렀어. 형과 형 친구는 구명 조끼를 입고, 고무 튜브를 몸에 끼고 바로 파도가 치는 바다로 뛰어 들었지. 파도가 정말 높고 사나왔어. 우리 같은 꼬마들은 파도에 떠밀리면 3~4미터는 그냥 날아가 버리더라고. 정말 무섭더라.
신나는 파도타기, 엎어지고, 뒤집어지고, 도망가고
형들도 처음엔 파도타기를 무서워하더라고. 무릎도 차지 않는 곳이지만, 파도가 밀려오면 어른 키도 훌쩍 넘어버리거든. 실내 물놀이 시설의 인공 파도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어머어마 하더라고. 먼저 파도타기를 익힌 아빠는 "파도가 치면 발을 들고 몸에 힘을 뺀 상태에서 등을 지고 그대로 파도에 몸을 맡기라"고 설명을 해주셨지. 형들은 30분 이상 파도와 씨름을 하더니, 나중에는 파도타기 선수가 된 것처럼 익숙하게 파도를 탔어. 형들의 입에선 "재밌다"는 말과 함께 웃음이 끊이지 않았거든. 너무 즐겁게 파도를 타느라 입술이 파래지도록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안하더라고. 아빠도 형들과 함께 신나게 파도를 탔어. 아빠가 캠핑 와서 이렇게 즐겁게 노는 모습은 처음 봤다니까. 집채만한 파도가 아빠를 삼키면 한참을 물속으로 잠수를 타 우리를 놀라게 하곤 했지. 형들은 큰 파도가 오면 몸이 물 속으로 쳐박히거나 아예 고무 튜브가 뒤집어지기도 했어. 파도가 밀려왔다가 쓸려 내려가면 몸집이 작은 꼬마들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파도에 함께 쓸려 내려갈 정도였지. 자칫 파도에 쓸려갈 수 있으니 항상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어. 정말 아찔하면서도 스릴이 넘쳤어. 아래 영상을 봐. 형의 튜브가 홀라당 뒤집어지잖아. 정말, 초딩 수준에서 빵 터지는 몸 개그야. 지금 봐도 너무 웃겨.ㅎㅎ.
형들은 파도 타고, 나는 모래찜질
형들은 신나게 파도를 탔지만, 나는 도저히 겁이 나서 바다에 뛰어들 수가 없었어. 파도도 무서웠지만, 비도 오고, 물이 너무 차가웠거든. 대신 나는 모래사장으로 밀려오는 파도에 꼬리 잡히지 않기를 하면서 파도와 숨바꼭질을 하거나 모래성을 쌓으며 놀았지. 그러다가 추워지면 아빠와 형이 나를 모래에 파묻어 줬어. 어른들이 좋아하는 모래찜질. 따뜻하기도 했지만, 누워 있으면 이불처럼 편안하기도 해서 스르르 잠이 오더라고.
정우의 모래놀이. 파도와 술래잡기, 모래성쌓기, 모래찜질.
형들과 아빠는 파도타기 놀이에 해가 질 때까지 시간 가는 줄을 몰랐어. 내 입술이 파랗게 질리고, 빗발이 더 굵어져서야 우리는 텐트로 돌아왔지. 샤워를 하고, 아빠는 불을 피웠고, 늘 그랬던 것처럼 고기를 구웠어. 그리고, 모닥불을 피우고 '공공칠빵' 놀이를 했지. 우리 가족 네명이 할 때보다 다섯명이 하는 공공칠빵은 더 스릴이 있었어. 우리가 한참 신나게 노는 동안에 해변에선 폭죽이 터졌지. 지난해 몽산포 해수욕장 캠핑장과 비슷한 저녁 풍경이었어. 바닷가의 저녁은 다 비슷비슷한가봐. 모기가 물어 밖에서 오래 놀 수 없었던 것이 정말 아쉬웠어.
바닷가 캠핑장의 밤. 공공칠빵과 불꽃놀이
공공칠빵에 터진 폭죽, 내년에는 나도 파도를 탈 거야
다음날 형들은 또 오전내 파도를 타고 나는 추우면 모래 속에 파묻혔어. 형들은 모래사장에 이름을 써놓고 인증샷도 찍었어. 아쉽게도 2박3일로 예정했던 우리 가족의 캠핑은 하루 일찍 끝나 버렸어. 아빠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아빠가 급히 서울로 올라와야 했거든. 점심을 먹은 뒤 엄마, 아빠는 철수 준비를 서둘렀어. 굵은 장대비가 내려서 철수는 그야말로 악전고투였지. 젖은 텐트를 거의 차에 구겨넣더라고. 장비 담당인 아빠는 캠핑 장비가 상하기라도 할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차 유리창에 발도장을 찍으며 스마트폰에 저장된 파도타기 장면을 돌려보면서 낄낄거렸지. 아직도 거친 파도소리가 '찰싹찰싹'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아. 내년 여름에도 바다로 캠핑을 가야겠어. 그때는 나도 형들처럼 용감하게 파도로 뛰어들 거야. "와. 파도가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