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eeping.jpg » 잠자는 아이. 양선아

 

 

최근 어느날 밤, 밤 10시가 되었는데도 아이들이 잠을 안 자고 엄마랑 놀려고 했다. 직장맘을 둔 아이들은 하루종일 엄마랑 떨어져 있다가 저녁에 엄마를 만나면 엄마랑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고 함께 놀고 싶어서 잠을 안 자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하루종일 바깥에서 일을 하고 온 엄마나 아빠는 몸도 피곤하고 가끔은 혼자 있고 싶어 아이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날 나 역시 몸도 마음도 지친 날이었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알기에 애써 아이들과 대화를 이어갔다.
 
나: 얘들아~ 그만 자자. 제발. 밤 늦게 자고 내일 아침 또 일어나기 힘들다고 할거지? 우리 이제 그만 장난하고 자자.
딸: 엄마~ 우리 낮잠 자서 잠이 안와~
아들: 맞아. 우린 낮잠 자서 잠이 안와~

나: 좋겠다~ 너희들은 낮잠 자서 잠도 안오지? 엄마는 낮잠도 못하고 회사에서 일하고 와서 지금 너무 피곤하고 잠이 와. 엄마들은 너희들이 부럽다. 엄마도 일 안하고 너희처럼 어린이집에서 친구들하고 놀고 공부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집에 와서 낮잠도 자고 싶으면 실컷 자고 말이야. 엄마는 너희들이 참말로 부러워~
아들: (정말 의외라는 듯이) 엄마는 회사에서 힘들어?
나: 힘들 때도 있지~ 재밌을 때도 있지만. 
딸: 엄마, 엄마만 힘든 게 아니라 우리도 힘들어. 유치원 다니는 것도 힘들다고~ 나는 엄마가 부러워. 나는 회사 다니고 싶어. 엄마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서 뉴스도 쓰고 내가 만들고 싶은 동화책같은 것 만들면 재밌을 것 같아. (딸은 요즘 한참 자기만의 책 만들기에 빠져 있다)
아들: 엄마, 나도 아빠처럼 컴퓨터 앞에서 일하고 싶어. 왜냐면 컴퓨터 앞에서 일하면 공룡 노래도 들을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 다 들을 수 있잖아. 그게 재밌을 것 같아.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아이들이 보기에는 엄마 아빠는 정말로 재밌는 일을 하고 있고,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보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들이 엄마, 아빠들의 생활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엄마 아빠가 하는 일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니 재밌기도 했다. ‘아~ 이래서 대화를 많이 해야하는 것이구나~’하는 깨달음과 함께.

 
막상 아이들의 얘기를 듣고 보니 내가 하는 일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에 대해 취재한 뒤 기사를 쓰는 일인데, 몸이 좀 힘들다고, 머리가 좀 지끈거린다고 해서, 뭐가 그렇게 힘들 것 또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가 궁금해하고 재밌어 하는 것에 대해 취재하는 일이 많으니 말이다. 괜한 스트레스에 짓눌려 있던 나는 아이들이 해주는 몇 마디에 긴장이 풀어지면서 내 일에 대한 자긍심마저 되살아나면서 스트레스가 조금 해소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어른의 관점에서볼 때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배우고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편안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들도 나름대로 사회 생활을 하느라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렇게 나는 그날 밤 잠자리에서 아이들에게 배우고, 아이들에 대한 정보도 얻었다.
 
직장맘들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아무래도 부족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또 친구들과 무슨 놀이를 하는지, 요즘 어린이집 아이들에게는 무엇이 유행인지 잘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생각, 느낌, 어린이집 생활에 대한 정보 등을 잘 모르면 아이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다. 대화 소재도 빈약해질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아이에게 잔소리만 하게 될 수 있다. 

 

직장맘의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엄마들이 시간을 내서 대화를 해보려 해도 막상 아이들과 ‘우리 대화할까’하고 작정하고 대화하려고 들면 대화가 더 안되는 경우도 많다. 내 경험상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이런 저런 대화를 이어나가고, 아이들의 마음 속 이야기를 듣기에는 잠자리 대화가 딱이다. 불을 다 끄고 어두컴컴한 방에 작고 귀여운 취침등을 켜놓고 도란도란 얘기하다보면 대화가 자연스럽게 물흐르듯 잘 되기 마련이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어두운 방에서 자신만의 비밀 이야기를 털어놓듯이 말이다.
 
일주일에 한 두번 정도 아이들과 작정하고 잠자리 대화를 하기로 마음 먹고 한 번 시도해보자. 아이들의 마음 속 비밀도 알 수 있고, 가끔은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삶의 지혜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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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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