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아들이 좋아하는 일본 떡, '당고'를 먹을 때마다
"꽃보다 당고(花より団子)"라는 일본 속담이 불러온
동아시아의 문화적인 파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꽃구경보다 배고픔을 해결하는 게 더 중요하단 뜻의 이 속담에서 따 온
"꽃보다 남자"라는 제목의 만화와 드라마가 90년대 이후 일본에서 인기를 끌게 되고
한류의 영향으로 한일간 대중문화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이 일본 드라마를
한국에서 다시 리메이크한 것이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이후로 꽃보다 할배, 누나, 청춘 등의 제목으로 다양하게 변주되며
한국인들에게는 이젠 너무 친근하고 익숙한 표현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
글로벌화된 요즘이라 해도 나라와 나라 사이의 벽은 여전히 높고 견고하지만,
세계는 언어적, 문화적으로도 점점 더 가까워지고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요즘 장안의 화제라는 예능 프로를 보면, 정말 그런 실감이 드는데
세계 각국의 다양한 젊은이들이 모여 하나의 주제를 두고 한국어로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신선했다. 한국어를 쓰는 외국인들의 이야기가 이미 새삼스럽지 않은 시대지만,
그들의 어눌한 발음과 부족한 어휘력에도 불구하고
말 속에 자신의 주장과 논리가 분명하고, 주제 해석력이나 상대방 의견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면서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들이 너무 빛나 보였다.
짧게는 몇 달, 길어도 2,3년에 불과한 한국어 실력으로도
소극적이거나 부끄러워하기 보다는 자신이 알고 있는 부족한 어휘를 최대한 활용해
상대방에게 외국어로 야무지게 공격하는 모습에, 한국어 네이티브인 나도
가끔 속이 시원해지거나 어떤 문제에 대해 새로운 시각의 해답을 들을 수 있어
나중엔 아예 종이와 연필을 옆에 두고 메모까지 해가며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문득 드는 생각.
아, 이렇게 외국어를 배울 수 있으면 얼마나 즐겁고 큰 공부가 될까!
아이들도 이런 식으로 외국어와 서로 다른 문화를 느끼고 배울 수 있다면
지식은 물론 생각과 내면까지 얼마나 풍부한 사람이 될까!
우리의 외국어교육을 포함한 언어교육의 현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게 될 즈음,
<한국인들이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못하는 이유>라는 주제를 두고
그들이 내놓은 분석에 귀가 솔깃해 졌다. 그건 바로,
- 영어공부의 목적이 대부분 입시/취직을 위한 것이어서
어학공부의 순수한 즐거움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 완벽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부담감, 실패나 실수를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이다.
였는데,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말을 배우고
타인과 언어를 주고받는 즐거움을 터득해가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부모라면
이 말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즐겁고 행복하게 익혀야 하는 언어를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열등감에 시달리며 고통스럽게 배워야 하다니.

이 예능프로 참가자 중에 가장 설득력있고 논리적인 언어를 구사해
요즘 '어학공부'의 비결에 대해 질문을 많이 받는다는 미국인 타일러는
어학을 진짜 잘하고 싶으면, 이제 그런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공부해 보기를 당부했다.
당장에 입시가 큰일이고 스펙 쌓기도 바쁜데
언어의 순수한 즐거움을 느끼고 어쩌고 할 여유 따위, 없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 역시 한국을 떠나 14년째 외국어를 일상 언어로 사용하며 늘 절감하는 것은
언어는 되도록 의무감이나 부담감없이, 즐거움과 행복함 속에서 배울 때 가장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운동도 놀이처럼 즐겁게 했을 때, 다이어트 효과가 가장 크다고 하는데 의무감으로 억지로
참으며 한 운동은 끝난 뒤에 보상심리 때문에 먹는 것에 더 집착하게 되기 때문이라 한다.
일본어 초급, 중급같은 교재보다 <빨강머리 앤> 일본어판을 교과서처럼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며
공부를 한 적이 있는데, 위의 사진에서도 보듯 자신이 좋아하는 표현을 우선적으로
공부하다 보면 즐거워지고 그런 즐거움이 낯선 외국어에 대한 자신감을 조금씩 높여주는 것 같다.
초등5학년인 큰아이 학교에서 미술 수업으로
<가을과 연관된 문자 디자인하기>라는 게 있었는데,
딸아이는 '밤'을 뜻하는 한자를 선택해 이렇게 밑그림을 그려갔다.
한중일 언어문화권에선 어려운 한자가 여전히 큰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지만
한자만이 가지는 매력과 언어적인 상상력으로 다가간다면, 새로운 발견과 즐거움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그림이었다.
아이는 이 밑그림에 색을 입히고 밤의 까칠한 부분이나 밤송이 그림에 털실을 붙여
표현할까 어쩔까 궁리중이란다.
문득, 내가 어릴 때 수수께끼 책에서 재밌게 읽었던 질문이 떠올랐다.
"엉덩이에 항상 털모자를 쓰고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떠오르지않아 찾아본 정답은 바로 "밤"이었는데
질문도 답도 어찌나 귀여운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언어로 하는 놀이, 언어로 즐기는 상상력의 한계는 끝이 없는데
아이들이 천천히 즐기고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언어의 세계를,
어른들의 성급함으로 너무 미리 가로막아 버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세상에는 평생 공부해도 시간이 부족할 만큼 많은 언어들이 존재하고
각각의 말과 문자로 표현된 문화는 또 얼마나 넓고 깊은가.
<꽃보다 당고>가 그랬던 것처럼, 언어는 이제 국경을 넘어 서로의 다름을 즐기고 소통한다.
모국어에서 경험하지 못한 신선한 자극과 아이디어를 외국어를 통해 얻을 수 있고
외국어를 하나씩 배우고 알아갈수록
그만큼 자신의 삶을 더 넓게 풍성하게 키워갈 수 있는 도구가 된다.
그리고 어휘력이나 발음만큼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의미있는 생각과 주관'인데
이런 기본 바탕은 역시 모국어를 통해 길러지는 것 아닐까.
가끔 한국 친구가 한글로 보내오는 편지를 읽을 때마다
한글이 이렇게 이쁜 문자였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하고 소박하고 이렇게 쉬울 수가.
모질고 험난한 시련 속에서도 고맙게 버텨준 한글과 한국어인데
이토록 쉽게 배울 수 있는 언어를 모국어로 가진 우리, 좀 더 자신감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한국어가 가진 매력을 만끽하며 유아기와 아동기를 보내고
그것으로 다져진 풍부한 감성과 상상력으로, 아이들이 새로운 언어들을 즐겁게 만나도록
우리가 도와줄 순 없을까.
즐겁고 행복하게 말과 글을 다룰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게 할 순 없을까.
타일러의 충고처럼, 기존의 외국어 학습법에서 과감히 벗어나 보는 것이
어쩌면 외국어 습득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지도 모른다.
외국인들에게 결코 배우기 쉬운 언어가 아닌 한국어가 너무 재밌다고
말하는 그들을 보면, 정말 언어교육의 기본은 즐거움, 행복감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싶다.
외국인들이 구사하는 수준높은 한국어를 들으며
문득 고 박완서 님의 산문집 <두부>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모국어야, 너는 얼마나 작으냐?
작지만 얼마나 예쁘고 오묘한지 알기 때문에
더 이상 작아지는 건 차마 못 보겠다."
외국어에 익숙해질수록, 모국어에 대해 좀 더 제대로 알고 공부하지 못한 후회가 늘 남아
나이든 지금이라도 좀 더 잘 말하고 잘 쓸 수 있도록 노력하려 한다.
세계 각국의 엄마들이 모여
육아에 대한 비정상회담을 여는 상상을 하는데..
이런 나는 비정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