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조리.jpg » <한겨레> 자료사진

 

알고 지낸 지 2년 쯤 되어가는 한국인 지인 댁에 첫 아이가 탄생했다. 타국에서 혼자 육아하는 어려움을 알기에 뭐라도 도움이 되고자 자주 그 댁에 들락거리다 보니 우리의 지난 21개월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그리하여 오늘 이야기는 미국에서 친정/시댁/조리원/산후도우미/보육기관 등의 도움 없이 말 그대로 '독립' 육아를 해 온 가난한 학생 부부의 '99만 9천원' 육아에 관한 이야기다. 


요즘 유학생들 중에 우리만큼 가난한 유학생은 참 보기 드물다. 우리는 겨우 돈 700만원 가지고 미국에 온, 정말 겁 없는 경우였다. 남편은 박사과정을 밟으며 학교에서 강의를 하거나 조교 일을 하는 조건으로 월급을 받는데, 그 액수가 워낙 적어서 집 월세, 공과금, 생활비 하면 남는 게 없는 수준이다. 차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소아과를 시내버스를 이용해 가려면 길에서 2시간은 잡아 먹어야 하는데, 그 고역에도 불구하고 3년째 (2백~3백만원이면 살 수 있는) 중고차 한 대 못 뽑는 형편인 것도 다 그래서다. 이런 형편에 어떻게 아이를, 그것도 희소질환을 갖고 태어난 아이를 키우느냐고? 정답은 '너무 없으면 오히려 그게 가능하다'다. 첫 12개월간 우리가 실제로 쓴 액수를 정리해 보면 이렇다. 


1. 출산 관련 병원비: 0원 (저소득층 감면 혜택의 결과)

2. 생후 12개월까지의 분유값: 약 40만원 (WIC이라는 산모 및 5세 미만 아동 영양 보조 프로그램에서 분유값의 절반 이상을 지원해 준 결과)

3. 천기저귀/기저귀 커버 구입 비용: 약 20만원

4. 외출/취침용 종이기저귀 구입 비용: 약 12만원 (가장 저렴한 브랜드를 이용하면 144개들이 한 박스가 약 2만원 정도) 

5. 9개월간 유축기 대여비: 0원 (WIC 에서 무료 대여) 

6. 생후 12개월까지의 의류비: 10만원 미만 

7. 생후 12개월까지의 아이 병원비: 0원 (특수보험 혜택의 결과)

8. 생후 12개월까지의 아이 장난감, 책 구입비: 10만원 미만

9. 각종 출산 준비물 구입비(아기 침대, 욕조, 이불 포함): 10만원 미만


생후 12개월까지 육아 비용 합계: 100만원 미만 


그러니까 우리는 한 달 평균 10만원도 안 되는 금액으로 아이를 키웠다는 얘기다. 


우선 3번, 천기저귀. 

우리가 천기저귀 사용을 선택한 것은 '친환경 의식' 때문도 '아기 피부 보호' 때문도 아니고 순전히 '돈이 없어서'였다. 가장 저렴한 브랜드의 종이기저귀를 쓴다고 하더라도 그걸 매일 몇 개씩 쓸 형편은 못 된다. 요즘 한국에서 천기저귀 쓰는 사람들은 아기 전용 세탁기를 들여다 기저귀만 모아 빨기도 한다는데, 미국에서 아파트 생활하는 우리는 집에 세탁기도 없다. 아파트 1층에 있는 공용 세탁기/건조기 한 번 쓰는데 드는 비용이 약 1500원이니 그것도 매일 돌리기는 어려운 형편. 그래서 우리가 선택한 것은 손빨래? 아니, 발빨래! 이다. 똥 기저귀는 즉시 비벼 빨아서 식초물에 담가 놨다 저녁에 헹궈내고, 오줌 기저귀는 한데 모았다가 밤에 남편이 발로 밟아 빤다. 물티슈도 외출용으로만 쓰기 때문에 집에 있을 때는 가제수건에 그때그때 물 적셔서 닦아주고, 기저귀 모아둔 통에 같이 모아 한데 밟아 빤다. 건조는 자연건조, 삶기는 생략. 남들, 특히 한국 사람들이 들으면 기절초풍할 일이겠지만 우리가 괜찮으니 상관없다. 다행히 아이도 (다리 문제를 빼면) 건강 체질이라 피부에 별다른 일 없이 잘 자라고 있다. 


6번, 의류비와 8번, 장난감과 책 구입비  

의류비가 거의 들지 않은 것은 순전히 지인들의 도움이 컸다. 알고 지내던 미국인 부부가 이사가면서 헌 옷 2박스를 물려주고 갔고, 동네 할머니들, 외국인 친구들이 수시로 새 옷과 헌 옷을 물어다 떨궈주고 갔다. 그리고 가끔 계절의 변화로 인해 부득이 옷을 사야 할 때는 동네에 있는 대형 중고 매장에서 샀다. 중고 매장에서는 아기 옷이 한 벌에 2, 3천원씩 밖에 안 하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에 제법 괜찮은 옷을 구할 수 있다. 어디나 그렇듯, 아기들은 금방 자라기 때문에 얼마 입지 못해 새 것 같은 옷을 내 놓는 경우가 많기 때문. 장난감과 책의 경우도 비슷했다. 지인들이 물려주거나 선물해 준 장난감과 책에 더해 위의 그 중고 매장서 구한 장난감은 천원, 2천원짜리가 대부분이고 책은 500원, 천원짜리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9번, 출산준비물. 

임신 중 어딘가에서 받은 '출산준비물 리스트'에서 내가 실제로 구입한 물건은 절반도 안되었던 것 같다. 내 선에서 '이건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해서 잘라내고 새로 리스트를 만들었다.좁쌀베개, 짱구베개나 기저귀 가방은 아예 살 생각을 안했고, 속/겉싸개는 병원에서 준다고들 해서 사지 않았다. 이불도 따로 사지 않고 그냥 내가 집에서 쓰던 무릎 담요를 쓰기로 했다. 아기 침대, 욕조, 놀이 매트, 쏘서는 중고로 사서 전체 5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해결했고, 유모차는 이웃집에서 쓰던 걸 얻었다. 젖병, 젖꼭지 같은 소소한 물건들은 병원에서 무료로 받아 나왔다. 


사실 6번과 9번의 경우는 미국이 한국에 비해 자원이 풍부한 나라라서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 이 곳에서는 아기 용품을 개인자격으로 팔러 나올 수 있는 '장터'나 중/대형 규모의 중고 매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병원에서 출산을 하면 정말 많은 물건들을 무료로 준다. 우리가 받은 것 중 가장 값 나가는 물건은 원가 8만원이 넘는 카시트였는데, 기저귀, 아기 옷, 아기 빗, 체온계 같은 소소한 아기 용품부터 좌욕기, 수유 쿠션 등 산모에게 필요한 물건들까지 챙겨주는 병원이 많다고 한다. 병원 뿐 아니라 동네 교회에서도 수시로 출산/육아용품을 기증받아 저렴하게 팔거나 나눠준다.   


우리도 출산율 걱정만 하지 말고, 아이 키우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한탄만 하지 말고 국가와 병원, 이웃 공동체와 종교단체 등 사회 전체가 육아에 드는 초기 비용을 좀 줄여보면 어떨까? 한국에선 중고 물품도 그리 저렴하지 않은 가격에 거래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애가 안 쓴 '새 것'에 가까운 물건, 내가 들인 돈이 아까운 마음에 가격을 별로 내리지 않고 내놓는 것 같다. 거꾸로 우리 애가 안 쓴 거 다른 애가 열심히  써 주기를 바라는 마음, 좋은 것 해 주고 싶어도 형편 상 해 줄 수 없는 어느 엄마 아빠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새 것도 헐값에 좀 나눠주면 어떨까? 병원에서도 산모를 환자 취급하며 이것 저것 간섭하고 개입하려고만 하지 말고, 산모 개개인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봐주고 함께 출산을 준비해주면 어떨까? 교회에서도 자기 교회 교인들만 챙기고 자기 안위를 위한 기도에만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교회 바깥의 아이들, 그들의 탄생을 함께 축복해주면 어떨까? 


내 자식만 귀한 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자식이 우리 모두에게 귀하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모든 아이들을 우리 모두가 '잘' 키워내는 걸 사회 공동의 목표로 삼는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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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alyson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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