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의 춤을.jpg

 

24년만에 '늑대와의 춤을'이란 영화를 다시 봤다.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스무살이었고 대학 새내기였다.

좋아하고 있던 선배 오빠와 단 둘이 이 영화를 종로의 한 극장에서 보았는데

영화보다도 옆에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이 마음이 가 있던 젊음이었다.

 

첫사랑도, 젊음도 다 흘러가버리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중년의 내가

추억에 젖어 다시 이 영화를 보고 있자니 비로소 영화속의 이야기가

내게 다가온다. 이 영화... 이렇게 잔인하고 가슴 아픈 이야기였구나.

 

남북전쟁이 한창인 미국.

살인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아무런 의미를 찾지못하던

병사 '존 던바'는 인디언과 대치하고 있는 서부로 보내지길 희망하다가

미 육군 서부 최 전방의 낡은  막사에 홀로 남겨진다.

전우도 없고 적도 나타나지 않는 막사에서 홀로 낡은 건물을 보수하고

일기를 쓰며 지내던 그의 친구는 오랜 시간 전장에서 생사를 함께 넘었던

말과 이따금 나타나 그의 곁을 맴도는 늑대 한 마리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에게 홀연히 나타난 수우족 인디언..

인디언에 대한 적개심이 없던 그는 호의를 가지고 인디언을 대하고

인간애가 넘치는 수우족 역시 백인인 그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는데...

 

수우족 마을에서 마주친, 인디언들 사이에서 자라온 백인 여자

'주먹쥐고 일어서'는 힘들게 떠올린 영어로 존과 인디언 사이에서

통역을 맡게 되고 서로 조금씩 가까와지며 마침내 사랑이 싹트게 된다.

 

'주먹쥐고 일어서'를 통해 수우족 말을 배우게 된 존은 수우족의 따뜻한

호의와 환대를 통해 진정한 우정과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수우족을

위협하는 호전적인 '포니족'과의 전쟁에서 큰 도움을 주게 된다.

 

마침내 수우족은 그에게 '늑대와의 춤을'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진정한 수우족의 용사로서 그를 받아들이게 된다.

'주먹쥐고 일어서'와 결혼해서 수우족의 일원으로서 생활하게 되지만

자신을 찾아 쳐들어올 백인들로 인해 수우족이 겪어야 할 고통을

생각하며 마음은 자꾸 무거워지고 마침내 겨울 캠프로 떠나는 날

잊고 온 일기장을 찾으러 홀로 막사로 돌아갔다가 주둔해 있던

병사들에게 잡혀 혹독한 고통을 치르게 된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무엇이 '야만'이고 무엇이 '문명'일까를 생각했다.

백인들은 인디언들을 미개하고 호전적이며 살인을 일삼는 짐승쯤으로

여기면서 보이는 대로 죽이는 일에 골몰하지만 정작 존이 경험한 것은

무의미한 전쟁으로  동족을 죽이는 국가와, '문명'이란 이름아래

다른 종족에게 한없이 잔인하고 무자비한 백인들의 모습이었다.

수우족에게 '버팔로'는 가장 중요한 식량이며 자신들의 생명을

이어주는 숭고한 존재인데 반해 재미로 '버팔로'를 죽여 가죽만 벗겨가는

백인 사냥꾼들의 만행으로 처참하게 쓰러져 있는 '버팔로'들을

보는 존의 마음은 어느새 수우족의 그 마음과 닮아 있었다.

 

필요한 만큼만 죽이고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수우족과

생명을 재미로 죽이고 자연은 그저 개발할 대상으로 여기는 백인.

과연 누가 진정한 '문명'일까.

 

주인공 존은 백인이었지만 동족에게선 무시와 모멸과 폭력과

학대만을 당했고 백인들이 미개하다고 무시하는 수우족에게

진정한 이해와 존중, 그리고 우정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병사들에게 잡혀 수우족이 있는 곳을 말하라고 때리는

백인들을 향해 존은 수우족의 말로 '나는 존 던바가 아니다.

나는 늑대와의 춤을 이다'라며 부르짖는다.

자신이 속한 세계는 야만의 백인이 아니라 인간애가 넘치는

수우족임을 외친 것이다.

 

영화는 길고 주제는 묵직했다. 어린 두 딸들은 관심없어 했지만

열두살 아들은 끝까지 함께 보았다.

 

"필규야.. 인디언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원래 주인이었어.

수천년간 다양한 인디언 부족들이 저마다의 훌륭한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며 평화롭게 그 땅에서 살고 있었지.

어느날 나타난 백인들이 그 땅에서 살던 인디언들을 몰아내고

잔인하게 토벌했지. 얼마나 끔찍한 학살들이 이어졌는지..."

 

"지금도 인디언들이 남아 있어요?"

"그럼~ 대부분 국가가 정해준 인디언 거주지역에서 살고 있지.

열악한 시설과 형편없는 보조 정책으로 알콜중독과 마약등

온갖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더라.

한없이 아름답고 깊이있던 전통들도 다 사라져가고..."

 

"진짜, 진짜 인디언 한 번 만나고 싶다.."

"그러게... 그런 인디언들이 아직도 남아 있을까.."

 

겉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발전을 이루어내고

디지털 기술력이 세게 최고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지만

과연 우리가 이룬 것들을 진정한 문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수많은 아이들이 부모가 지켜보는 가운데 죽어갔는데

국가는 그 진실을 밝히는 일에 아직도 제대로 나서지 않고 있고

우리의 자식들이 바다에서, 군대에서, 학교에서, 거리에서

빠져죽고, 맞아 죽고, 깔려 죽는 이 사회가 과연 문명사회일까.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고통은 아직도 생생한데 벌써 잊어 버리라고 주문하는 사회,

가혹행위로 죽어가는 아들들이 있는데 군대는 변하지 않는 사회,

세상일에 관심 갖지 말고 학교와 학원, 집만 오가며 오로지 공부만 하라고

아이들을 밀어대는 이 사회야말로 야만이 판을 치는 무서운 곳이 아닐까.

 

타인의 고통을 내것으로 여기고 한 존재의 아픔을 공동체 전체가 아파해주며

각자 태어난 몫 대로 공동체 안에서 역할이 주어지고 누구도 무시당하지 않고

약한 사람들이 보호받으며 같은 운명속에 살아가던 수우족이야말로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 진정한 '문명'을 보여주었구나.

수우족이 이백여년전에 이룬 그 아름다운 문명을 우린 어느 시절에나

가져볼 수 있을까.. 가능하기나 한 걸까.

 

요즘 돌아가는 세상을 보면 왠지 그토록 품위있고 아름다운 문명은

영원히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아서 두려워진다.

 

세 아이 4.jpg

 

시절이 험난해도 아이들은 태어나고 자란다.

야만이 판을 치는 세상이지만 있는 힘껏 우리를 옥죄는 야만에

저항하는 일, 언제나 진실을 보려는 노력을 쉬지 않는 일,

내가 사는 지구의 한 귀퉁이라도 야만보다는 문명을 뿌리내리게

하는 일..

그것이 내가 할 일일것이다.

 

수우족의 제사장 '발로 차는 새'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에는 여러갈래의 길이 있지만 우리가 제일 관심있는 것은

진정한 인간의 존재를 추구하는 것이다'

 

수우족의 지혜에 우리의 오늘을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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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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