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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육아 멘토는 누구입니까?’



몇달 전 한 육아 잡지에 나온 기획기사 제목이다.  아니 찾아보니 정확한 제목은 ‘나의 육아 멘토를 소개합니다’ 다. (<베스트베이비>, 5월호) 였다.  글쎄 그럼 나의 멘토는 누굴까?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네 생각하며 책을 휘휘 넘겼다. <베이비 위스퍼> 같은 서적에서 어머니,  소아과 의사, 미셸 오바마까지 여러 사람이 등장했다. 그 중 한 사람이 여성학자 박혜란씨를 꼽았다.  임신 중 박씨의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을 읽었지만 삐딱한 눈으로 봐서인지 어쩐지 극성 떨어 서울대 보낸 성공스토리보다 더 어렵게만 느껴져 별 감흥은 없었다. 그런데 기사 뒷부분에 멘토가 멘티에게 해주는 한마디가 내 뒷통수를 쳤다.



“아이를 20년 동안 우리 집에 머물다 가는 ‘손님’으로 여기세요. 집에 온 손님이 주인인 내게 조금만 잘해줘도 한없이 고맙고, 뭘 해라 하지 마라 요구하기 어렵잖아요. 그러면서 아이와 심리적 거리가 생기고, 가만히 지켜볼 수 있는 내공이 생긴답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내 아이가 손님이라니,  손님처럼, 남남처럼 지내다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이라니, 마치 지금 당장 아이가 가방을 싸고 있는 모습을 본 것처럼 가슴 한 구석이 쿵 내려앉았다.  정말 아이가 나를 떠난단 말인가? 정말? 머릿속으로는 언젠가 내 품을 떠날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음에도 나는 내 아이가 영원히 ‘나의’ 아이라고 은연 중에 믿고 있었던 거다.



육아에 관한 수많은 금과옥조 같은 이야기가 있지만 박혜란씨의 이 한 마디처럼 뼛속 깊이 사무치면서 또 고통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조언은 없었던 것 같다.  아이는 비롯 내 뱃속에서 나오고 내 젖을 먹여 키웠지만 나와 주민번호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고 앞으로 살아야 할 세상과 만나야 할 사람들이 모두 다른 또 하나의 인간이다. 그런데 이런 아이를 나와는 독립된 하나의 개별자로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늘 고민했던 것은 어떻게 아이를 하나의 완성된 인간으로 키워낼 것인가, 즉 어떤 모습으로 나의 품에서 이 사회 안으로 내보낼 것인가 였던 것 같다. 물론 이런 고민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고민을 하면서 이 사회와 아이와의 포지셔닝이나 관계만을 고민했을 뿐 나와 이 아이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를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내 아이니까 라는 생각이 아이와 나를 동일시하고 아이가 어떻게 자라주었으면 하는 생각은 곧 내가 이루고 싶어하는 욕망이 아니었나 싶다.



육아나 교육에 있어서 실패의 원인 가운데 하나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내 아이가 잘되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열성적으로 육아와 교육에 매달리지만 아이와 나를 분리하는 데 실패해서 정작 나와 다른 아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간과해버리고 나의 기준이나 나의 목표나 심지어 나의 취향까지도 아이의 것과 같으리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전제.



결국 아이를 키운다는 건 아이를 독립된 인간으로 성장시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아이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인 것 같다.  그리고 후자가 전자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것 같다.  아이를 위해서 무언가 하는 순간 마음이 아이에게로 바짝 다가가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아이는 자라고 언젠가는 둥지를 떠날 거다. 아이를 키우는 모든 시간은 언젠가 다가올 그날을 준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쩐지 벌써부터 슬프고 마음 한구석이 뻥 뚫리는 것 같지만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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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 기자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얇은 팔랑귀를 가지고 있는 주말섹션 팀장. 아이 키우는 데도 이말 저말에 혹해 ‘줏대 없는 극성엄마가 되지 않을까’, 우리 나이로 서른아홉이라는 ‘꽉 찬’ 나이에 아이를 낳아 나중에 학부모 회의라도 가서 할머니가 오셨냐는 소리라도 듣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엄마이다. 그래서 아이의 자존심 유지를 위해(!) 아이에게 들어갈 교육비를 땡겨(?) 미리미리 피부 관리를 받는 게 낫지 않을까 목하 고민 중.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여주고 입혀주기 위해 정작 우는 아이는 내버려 두고 인터넷질 하는 늙다리 초보엄마다.
이메일 :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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