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3946465833713dcbd9a34abfff5673d.                                       (보물찾기 쪽지에 써 있는 냉이꽃을 찾고 좋아하는 필규)



‘어린이 날’을 ‘선물 받는 날’이라고 여기는 아홉살 큰 녀석은 한때는 몇 년치 어린이날 선물을

미리 주문해 놓기도 했다.

제가 좋아하는 ‘레고’ 카탈로그를 보며 앞으로 다가올 5년 동안의 어린이 날 선물을 미리 점 찍어

내게 보여주기도 하던 녀석이다.

선물 받고 맛있는 음식 실컷 먹고 종일 노는 날로 알고 있는 어린이 날을 어떻게 하면 좀 더

가족 모두 신나고 즐겁게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올해는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하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우리집에 모여 독서모임을 하는 다섯 가족이 우리집 마당에서 함께 캠핑을 하기로

한 것이다.

넓은 마당에 아이들을 풀어 놓고 아빠들이 바베큐를 굽고 엄마들이 함께 음식을 차려서 같이

먹기로 했다. 그리고 처녀적 특기를 살려 내가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하기로 했다. (참고로 나는

처녀적에 제법 잘 나가던 레크리에이션 강사였다!!!) 오랜만에 보물찾기도 해보자고 했더니

아이들이 “정말 재미있겠다”며 좋아했다.

그냥 쪽지들을 사방에 흩어 놓고 찾으라고 할까 하다가 조금 더 머리를 써서 아이들이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는 ‘보물 찾기’를 생각해냈다.

다섯 가족의 아이들이 모두 모이면 열 둘인데 어린 아기 둘을 빼면 열 명의 아이들이 보물찾기에

참여할 수 있다. 그 아이들을 둘씩 팀을 만들어 한 팀당 서로 다른 곳에 숨겨져 있는 다섯 개의 쪽지를

찾게 하고 마지막 쪽지에 적혀 있는 미션을 수행하면 선물을 주기로 한 것이다.

한 쪽지를 찾으면 다음 장소를 알려주는 글이 있다. 쪽지가 알려주는 대로 다섯 장소를 찾아 다닐

아이들을 생각하니 내가 다 설레고 흥분되었지만 총 스물 다섯 개의 쪽지 내용을 고안해 내는 것은

정말 머리에서 쥐가 나는 일이었다.

한 팀이 비슷한 장소만 오가게 해도 재미가 없으니 쪽지마다 다양한 장소와 다양한 지형·지물을

등장시켜야 하는데 이런 쪽지를 스물다섯 개나 만들어 내다보니 정말 집과 마당, 밭과 산 언저리를

몇 차례나 돌고 사방을 들추고 다니며 아이디어를 짜내야 했다.

나 혼자만 있었으면 이것도 그닥 어려운 일이 아니었겠지만 나를 졸졸 쫒아 다니는 다섯살, 두살

두 아이 몰래 작업을 하는 일은 007 작전 같은 기민한 눈속임과 몸을 날리는 노력이 있어야 했다.

첫 쪽지들은 모두 현관 앞 우체통에 숨겨 놓았다.

팀 당 쪽지 하나씩을 꺼내 다음 장소를 찾아 가는 것이다.

쪽지에 적힌 내용들은 대강 이러하다.

‘뒷 뜰 장독대 23번 항아리의 뚜껑을 들어 보세요’(우리집 장독대엔 모두 번호가 새겨져 있다.)

‘집으로 올라오는 길가의 큰 돌 밑을 살펴 보세요’

‘꽃사과 나무에 달려 있는 새집 안을 보세요’

‘윗 밭 모과나무 아래 원추리 덤불 사이를 살펴 보세요’

‘뒷 마당에 있는 닭장 지붕의 붉은 색 별돌을 들어 보세요’

‘산으로 올라가는 길가에 있는 두레박 안을 보세요’
등등...



첫 쪽지가 뒷 마당이었으면 다음 쪽지는 윗 밭으로 가게 하고, 다시 앞 마당을 살피게 하다가

나무 위도 기어 오르게 하고, 감자밭도 파게 하는 다양한 동선을 고안해내는 것도 힘들었지만

아이들의 눈에서 재미나게, 그러나 너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곳들을 찾아내는 일도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막내가 낮잠을 자고, 윤정이가 제 방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이 나는 스물다섯 개의 쪽지를 순서대로

스물다섯 군데에 숨기느라 눈썹이 휘날리게 집 안팎을 뛰어 다녔다. 큰 돌을 들추고, 밭을 파내고

나무 틈 사이를 벌리고, 덤불 숲을 헤쳐가며 종횡무진 활약을 했다.

그날 오후엔 필규와 윤정이가 행여 쪽지를 숨긴 장소 근처를 돌아다닐까봐 집에서 놀 수 있게

하려고 갖은 신경을 써야 했다.



드디어 어린이 날이 되었고 정오무렵 다섯 가족 아홉명의 아이들이 도착했다.

어른들이 점심 준비를 하는 동안 보물 찾기를 하겠다고 아이들을 불렀더니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 왔다. 우체통에서 첫 쪽지를 펼치는 순간부터 아이들은 달리기 시작했다.

여자아이들도 거침없이 나무 위를 오르고, 뒷 마당으로, 윗 밭으로, 감자밭과 우물가로 뛰어 다니며

웃고, 의논하고, 소리치며 또 달렸다.

‘모과 나무가 어디예요?’, ‘대추나무가 어떤 거예요?’, ‘원추리 덤불이 어디예요?’

물어오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내 예상보다 훨씬 잘 찾아냈다.

마지막 쪽지에는 미션 다섯 가지가 적혀 있었는데

‘냉이꽃 열 개를 찾아 오세요’라는 미션을 제일 먼저 수행한 필규팀이 일등을 했다.

어떤 팀은 꽃다지꽃 열 개를 찾아 오라고 했는데 애기똥풀꽃 열 개를 꺾어와서 웃기도 하고

‘도꼬마리’ 열매가 어디에서 나는지 모르는 친구를 위해 필규가 같이  길 아래쪽에 있는 식당

주차장 덤불 숲까지 달려 주기도 했다.

즐겁게 경쟁도 하고, 서로 도와주기도 하면서 열명의 아이들은 모두 미션을 다 완수하고

엄마들이 미리 준비한 저렴한 선물들을 받았다.

보물 찾기가 너무 재미있었는지 아이들은 오후에도 자기들끼리 쪽지를 또 만들어 우체통에 넣고

보물찾기를 다시 하기도 했다.

윤정이는 보물 찾기가 ‘쪼끔 어렵고 많이 재미있어요’라고 했고

필규는 일기장에 ‘보물 찾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내년 어린이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썼다.

이만하면 대성공이다.



비싼 선물을 안기고, 밀리는 도로를 달려 놀이 동산에 데려가고, 외식을 하며 부모들은

어린이날에 아이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러나 어린이날은 아이들만 즐거운 날이

되는 것보다 가족 모두 즐거운 날이 되어야 한다. 때로 많은 돈을 들여야 그런 즐거움이

오기도 하지만 조금 아이디어를 짜 내면 큰 돈 들이지 않고도 아이들과 특별한 추억을 만드는

어린이 날이 될 수 있다.

마당과 밭, 산이 가까운 우리집에서 하는 보물 찾기는 물론 재미있고 즐겁겠지만

아파트에 산다 하더라도 집 안에서 아이들과 얼마든지 재미난 보물 찾기를 즐길 수 있다.

비싼 선물보다 그 선물을 찾는 방법과 과정을 재미나게 이끌어 주는 게 아이들을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다.

‘엄마 옷장 서랍 다섯째 칸을 보세요’라던가

‘아빠 책장에서 제일 작은 책 안에  있어요’라던가

‘목욕탕 선반 위에 있는 크림통 뚜껑을 열어보세요’ 같은 글이 쓰여있는 쪽지를 아이들과 같이

찾아가며 집안을 돌아다니는 보물 찾기도 삼락재에서 하는 보물 찾기만큼 재미날 수 있다.

아이들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는 것은 결코 물질이나 물건이 아니다. 부모가 자기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애쓰고 궁리하고 함께 하는 그 시간 속에 있는 것이다.



올 어린이날은 특별한 ‘보물 찾기’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었다.

어린이날에만 보물 찾기를 하라는 법이 있나. 아이들이 이렇게 재미있어 하는데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에 해도 좋을 것 같다. 여름 방학이 되면 필규 친구들을 불러

마당에 텐트를 치고 야영도 하고, 한 밤중에 렌턴을 들고 어둠 속에서 쪽지를 찾는

특별한 보물 찾기도 해 봐야지.

마당 넓은 이 집에 사는 동안 모든 장소들이 특별한 즐거움과 추억들로 채워질 수 있게

아이들과 더 많이 궁리하고, 상상하고, 뛰고 달리며 행복해지자.

그 설레고 즐거운 모험에 나도 같이 뛰어드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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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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