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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룸이를 태우고 있는 해치)



‘프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파트라슈, 명견 레쉬, 잊을 수 없는 벤지, 101마리의 달마시안, 스누피,

그리고 우리 나라의 백구, 해피나 메리나 검둥이나 누렁이, 흰둥이, 쫑...

아아... 내 인생에서 만났던 수많은 강아지와 개들을 떠올릴 때마다 정말 정말 내 집에서 개를

키우고 싶었다.

사랑스럽고,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고, 믿음직하고, 영리한 개와 더불어 살아가는 일상이란

얼마나 근사하고 충만할 것인가. 개와 나누는 그 풍부한 교감들은 또 얼마나 뿌듯할까.

아니 그냥 나를 보며 열정적으로 반기는 그 몸짓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정말 개가 좋았다.



더구나 부모가 되어 나보다 더 강아지를 좋아하고 반기는 아이들을 여럿 두다 보니 더더욱

개를 키우고 싶었다. 그렇지만 아파트에서 아이 셋을 키우면서 개를 키운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마당에서 개와 같이 노는 일상이지, 개도 아기처럼 집안에서 돌보고

거두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는 늘 커다란 개를 원했다. 폼도 나고 덩치만큼

듬직할 것 같았다. 어쩌다 산책길에 커다란 짓돗개나 시베리안 허스키, 세인트 버나드 같은

개들을 끌고 지나는 사람을 만나면 정말 부러웠다.

마당있는 집에서 살면 무엇보다 개부터 기르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늘 집에서 개를 기르자고 조르는 아이에게도 ‘마당있는 집으로 이사가면...’이라는 말로

달래곤 했었다. 지금 사는 집을 선택한 이유 중의 하나도 개를 키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꿈처럼, 기적처럼 지난 12월에 마당 넓은 이 집을 만났을 때 남편과 나는 가장 먼저 개를 키우자고

입을 모았다. 건설회사에 다니는 남편은 이사 날짜에 맞춰 현장 사무실에서 마침 새끼를 낳은

개들 중에 우리가 원하는 강아지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오래 바라던 꿈이 드디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나.....



이사 날짜는 12월 31일이었는데 남편은 보름이나 일찍 강아지를 데려왔다.

그것도 각기 다른 종, 두 마리였다.

한 마리는 시베리안 허스키의 피를 이어받은 검은 털에 흰 털이 섞인 녀석이었고, 또 한 마리는

차우차우 종의 누런 강아지였다. 두 마리다 갓 젖을 뗀 새끼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몸집이 컸다.

아직 돌도 되지 않은 막내까지 세 명의 아이들이 있는 아파트에 개들을 부려 놓았더니 아이들이

펄쩍 뛰며 좋아했던 것은 물론이다. 부랴 부랴 개 샴푸를 사네, 용변을 위한 패드를 구입하네,

목줄이며, 개 사료며, 개 전용 샴푸를 사들이느라 적잖은 돈을 써야 했다.

그래도 처음으로 목욕탕에서 강아지들을 목욕시키고, 그것들이 집안을 발발거리며 돌아다니는

모습은 감개무량, 그 자체였다.  용변 패트를 깔아 놓고 개 밥통과 물통을 가져다 놓았으니

이사갈 동안 이렇게 지내면 되겠지... 생각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순진한 인간의 예상일 뿐이었다.

강아지 두 마리는 곧 집안 아무데나 똥과 오줌을 싸기 시작했던 것이다.

몇 번은 야단치고 치웠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집안에선 금방 개 오줌과 똥 냄새가 풍겨났다.

막내가 기어다니는 모든 공간이 똥과 오줌으로 얼룩지기 시작하자 화들짝 놀란 우리는

개를 베란다로 옮겼다. 개들은 화분과 기타 살림들이 놓여있던 베란다를 순식간에 밀림으로

만들어 놓았다. 화초들을 짓밟고, 이빨로 갉아놓고, 씹어 놓고, 찢어 놓는 것은 기본이고

구석에 놓아둔 용변 패드며 신문지는 아무 소용 없이 베란다 곳곳에 아무데나 용변을 보는 것도 모자라서

창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짖기 시작했다.

베란다 문만 열면 집안으로 들어오려고 난리여서 밥과 물을 챙겨주는 일도 쉽지 않았다.

밤만 되면 들여보내달라고 끙끙거리고, 시도 때도 없이 밖을 보며 짖기 시작하자 이웃집에서

항의 전화라도 할까봐 전전긍긍했다. 외출도 맘대로 할 수 없었다.

베란다 문을 열면 똥으로 범벅된 앞발을 들고 달려드는 모습에 정나미가 떨어진 건 물론이고

하루하루 초토화되는 베란다를 보며 어떻게 다 치워주고 이사를 가나... 아득해졌다.

개를 키우는 행복한 날들에 대한 꿈은 이렇게 닥친 현실 속에서 여지 없이 무너져 나갔다.

결국 이사갈 빈 집에 개들을 우선 옮겨 놓았는데 그 다음엔 개들의 밥을 챙겨주는 일이 큰 일이었다.

사정이 생겨 이사가 일주일 연기되고, 우린 그동안 용인에 있는 둘째 언니네 집에서 지내게 되자

개들을 건사하는 일이 더 어려워졌다.

과천 큰 언니네 집에서 지내게 된 남편이 잠실에 있는 회사에서 퇴근을 하고 이곳 안산 대야미까지 달려와서

개들을 살피고 다시 돌아가곤 했지만 개집 한 채에 목줄 두 개로 묶어 놓은 두 마리 개들은 수시로

개줄이 서로 엉켜 옴쭉달쭉도 못하는 모습으로 있다가 발견되곤 해서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오래 비어있던 단독주택이라 손볼 곳도 많았고, 혹독한 추위 속에 새 집을 오가며 수리하는

일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는데 개들까지 챙기려니 정말 이사가기 전에 진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1월 9일에 이사를 해서 목줄에서 풀려난 개들이 눈 쌓인 넓은 마당을 뛰어 노는

모습을 보며 이젠 한숨 돌리려니... 했지만





나...

두 마리 개들은 넓은 집에서 맹렬하게 먹기 시작했다. 사료가 푹푹 줄었다. 똥도 보통 많이

싸는 게 아니었다. 추운 겨울에는 그런 것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봄이 되어 땅이 녹기 시작하자

사방에서 개똥 냄새가 진동했다. 매일 매일 치우지 않으면 파리도 꼬이고 녀석들도 짓이겨서

감당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녀석들은 집 안팎에 쌓여 있는 갖가지 물건들을 끌어내 씹고

갉아대곤 했다. 그래도 아이들의 성화에 개들을 묶어둘 순 없었다.

어느날 새벽엔 남편의 출근차를 따라 삼거리까지 달려간 녀석들을 잡아 오느라

“해치야, 해태야!” 두 마리 개 이름을 동네가 떠나가라 부르며 겨울 거리를 헤매기도 했었다.

이웃집 담 밑으로 들어가 널어 놓은 명태를 물고 와서 기겁을 했던 일도 있고, 어디서

죽은 족제비며 말라 붙은 쥐 사체를 끌고 와 질겅거리는 모습을 보며 또 식겁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남편과 아이들은 개가 이쁘다고 야단이었다.

어린 아이 셋과 큰 집에 들어와 살림 정리만으로 몇 달을 고생해야 했던 나는 개를 키우는 일에

대한 환상이 낱낱이 깨져 버렸지만 아이들은 그 추운 날에도 개를 보러 수없이 집 밖으로 나가곤

했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녀석들은 곧 동네 명물이 되었다.

택배 아저씨와 집배원 아저씨의 귀여움도 독차지 했다. 언덕 위에 있는 집 마당에서 한 길을

내려다보는 늠름한 모습도 이목을 끌었지만 사람들을 워낙 좋아하는 종들이라 아무에게나 꼬리를

흔들어 대는 녀석들이었다. 큰 아이는 학교에 가고 올 때마다 개들한테 먼저 달려갔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개에게 먼저 주고 싶어 야단이었다. 개를 데리고 동네를 돌아다니는 일을

좋아했고,  심지어는 개랑 같이  개 집에 들어가 있는 것을 끌어내기도 했다.

큰아이의 친구들도 우리집 개들이 보고 싶어 몰려오곤 했다.

살림하는 내 입장에서야 애들 사교육비보다 더 많이 나가는 사료값이 아깝긴 했지만

(지금까지도 아홉살 큰 아이는 전혀 아무런 학원도 안 다니고, 방과후 프로그램도 무료로 운영되는

체육만 하고 있다. 다섯살 둘째는 유치원에 안 다니고 일주일에 두번 하는 발레에 월 2만원씩

수업료를 내고 있다. ) 아이들이 워낙 좋아하니 봐줘야지... 했다.





나...

추운 겨울엔 개를 풀어놓고 기르는 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2월부터 일찍감치 농사 준비를 시작한

동네에서 이곳 저곳 뛰어 다니는 개들은 곧 문제를 일으켰다.

우리 마당과 이어져 있는 자기 밭을 망쳐 놓았다며 그 밭 주인이 보상을 요구한 것이다.

동네에 돌아다니는 개들이 여럿 있긴 하지만 우리 개들의 소행이 가장 크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12만원을 물어주는 것으로 녀석들의 자유도 끝이 났다.

새끼 때부터 맘대로 돌아다니며 크던 녀석들을 덩치가 커진 후에 목줄에 묶고 나니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다. 우리 애들 돌보는 것도 정신이 없는데 이따금씩 두 녀석을 번갈아

마당 한바퀴라도 산책시켜야 하는 일까지 얹혀졌다.

이젠 막내를 태워도 끄떡없을 만큼 덩치가 커진 녀석들은 힘도 여간 센 게 아니어서

산책을 시키려고 줄을 바꾸는 일도 쩔쩔매야 하지만 산책을 시키려는 눈치만 보이면

온 힘을 다해서 달리려고 해서 있는 있는 힘을 다해 버텨야 한다. 파트라슈가 그 무거운 수레를

너끈히 끌었던 게 이해가 된다. 요즘엔 개가 나를 끌고 다니며 운동을 시키는 형국이 되었다.

이젠 산책도 주말이 되어 남편이 해야 할만큼 개들의 힘이 세어져 버렸다.

누런 개 해치는 두 번 쇠로 된 개줄을 끊어 버리고 달아나버리는 통에, 남편은 인근 철물점을

모두 뒤져 초강력 개줄을 구해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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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규, 윤정이와 함께 노는  해태)



이젠 두 녀석들 때문에 장거리 여행은 꿈도 못 꾸고, 식당에 가면 남은 음식을 싸오는 건 기본이고

다른 상의 음식 찌꺼끼들까지 눈독을 들이게 되었다. 마트에 가서 생선이라도 사는 날엔 염치 불구

하고 생선 대가리들을 얻어와 녀석들에게 삶아주곤 한다.

애들 셋 건사하는 것도 힘들지만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두 녀석들 챙기는 일도 만만치 않다.

더 커지면 감당할 수 없다고, 다시 현장으로 보내자고 은근히 남편에게 말도 하지만

녀석들이 없는 집을 상상할 수도 없긴 하다.



꿈은 이루어졌지만, 치뤄야 할 대가들도 함께 커 간다.

강아지들을 들여놓는 것은 쉬웠지만, 한 식구로 어울려 지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학교에 가는 큰 아이를

나보다 더 오래 바라보며 꼬리를 흔들어 대는 두 녀석들을 볼 때마다 아이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다시 없는 친구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녀석들의 존재 이유는 그걸로 충분하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도대체 언제까지 크는 걸까. 밥 주러 가면 좋다고 반갑다고

앞발을 들고 달려드는 모습이 이젠 나도 겁나는데 말이다.



마당 있는 집에서 개와 함께 사는 삶...

분명 내 꿈이었으니 누구 탓을 하랴.

집 안의 생명도, 집 밖의 생명도 모두 내 새끼인 것을... 어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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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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