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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낳고 키워본 부모들은 안다.

어느 순간 내 아이가 하는 모든 행동이 특별해 보이고 남보다 뛰어나게 느껴지는 때가 온다는 걸 말이다.

특히 첫 아이 낳은 부모들이 그렇다.

눈만 깜짝여도 엄마 말 알아듣고 대답하는 것 같고, 웅웅 입소리만 내도 벌써 말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고개짓 하고 손가락도 꿈적거리면 그야말로 감탄이 절로 흘러나온다.

처음으로 부모가 된 사람들은 아이가 보여주는 모든 모습에서 세상에 둘도 없는 비범함을

찾아내는 도사들이다. 도사들의 신묘함은 아이의 배내짓조차 의사소통의 기술로 보이고

엄마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이미 남다른 영특함을 읽어내는 경지에 이르기도 한다.

그리하여 생후 두 달도 안 된 아이가 분명히 ‘엄마!’라고 불렀다는 등, 70일 된 아이에게 “배고프냐?”고

물어봤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는 등 백일 된 아이가 벌써 글자를 알아보는 것 같다는 등

갖가지 전설들이 탄생하는 것이다. 내 아이 영재증후군의 시작이다.



남편 서른 일곱, 나 서른 넷에 결혼해서 이듬해에 첫 아들을 낳은 우리 부부는 더했다.

체중 4kg이 넘는 우량아로 낳고 보니 그야말로 태어난 그 순간부터 무리에서 으뜸인 덩치인지라

감격과 기대가 남달랐다. 어쩌면 이렇게 품위있게 생겼을까, 어쩌면 이렇게 손가락도 우아할까,

짙은 눈썹도 예사롭지 않고 무엇보다 남보다 훨씬 큰 두상은 분명 보통아이가 아닌 증거라고

믿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번호판을 유난히 집중해서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서  ‘숫자에 타고난 감각이

있는게 아닐까?’ 가슴이 설레었고, 내가 부르는 영어 동요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외국어에

소질이 있는가봐’ 기대감에 부풀곤 했다. 첫 애는 서너살 무렵에 물건들을 길게 늘어 놓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런 모습조차 남과 다른 천재성의 발현이라고 믿었다.

물론 이런 증상은 시간이 갈수록 사라진다. 그리고 대개는 기대했던 만큼의 실망감으로 허탈해 한다.

우량아로 태어나 온 가족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첫 아이는 유치원도 가기 싫어해서 일곱살 때도

나와 같이 지냈고, 초등학교 입학할 때는 간신히 제 이름 석자만 쓸 수 있는 수준이었다.

2학년이 된 지금도 영어 따위엔 관심도 없고, 줄넘기도 또래 중에 제일 못하고, 태권도니 수영이니

배우는 것에도 관심이 없고 그저 마당에서 뛰어 놀고 레고 조립하고 책이나 들여다 보는 일만

좋아한다.

어려서부터 신문도 자주 읽어주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도 열심히 들려주었건만

‘일본 지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데 우린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물어보았더니

‘...음... 제 이불을 보내주자요’ 한다. 한마디로 현실감 제로에 아무 생각이 없다.



둘째는 딸이어서 또 달랐다.

위로 오빠가 있어서인지 뭐든지 빨랐다. 그러니까 또 모든 게 다 특별해 보였다.

오빠가 공부하는 거 보고 저도 연필잡는 시늉을 하면 감탄스러웠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 맞추어

몸을 흔들어대는 것도 기특해 보였다. 두 돌 무렵에 제 이름을 쓴다면서 종이 위에 동그라미를

그렸을 때는 “제 이름 ‘윤정’에 동그라미 두 개가 들어가는 것을 아는 거야” 하며 아이의 영특함에

고개를 끄떡였다. 크레파스로 휙휙 그려대는 것들도 예사롭지 않게 느껴져 아이가 낙서해 놓은

종이들을 모으고, 오빠 따라 책 읽는 흉내를 내는 모습에 가슴을 또 설레이곤 했다.

둘째는 유난히 말이 빨랐는데 두 돌 무렵에 ‘엄마,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건 바람 때문이에요’ 같은 말들을

했다. 다섯살인 지금도 논리가 정확한 말들을 구사하고 표현력도 아주 풍부하다. 한 번 듣고

기억하는 것도 뛰어나고, 남에게 설명하는 것도 잘 한다.

이러다보니 남편과 나는 또 첫애 때의 증상이 슬슬 도지기 시작했다.

“얘가 아무래도 언어 영역에 영재가 아닐까?”

‘뛰어난 능력을 타고 났는데 우리가 무심하게 내버려두고 있는 건지도 몰라’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둘째는 세살 때부터 유치원에 다니고 싶다고 졸라댔고 다섯살인 요즘은 언제 학교 가냐고 묻곤 한다.

학습지라도 시켜줘야 하는 거 아닐까? 영어에도 관심이 많은데, 어린이 영어 교재라도 사들여야 하나,

뛰어나게 태어난 아이를 부모가 너무 평범하게 키우는거면 어떡하나... 온갖 소설을 써 가며

고민하고 있다. 물론 이런 고민도 살림과 육아에 치이다보면 자꾸 귀찮아지고 게을러져서

스르르 사라져 버리곤 한다. 그리고는 또래 친구가 백까지의 숫자를 술술 읽어대고, 영어 알파벳을

모두 외워 쓰는 모습을 보고는 기가 팍 죽어 버린다. 아아... 역시 천재는 아닌가봐... 하면서 말이다.



그러던 우리 부부가 요즘 슬슬 옛날 증상이 도지고 있는 중이다.

물론 셋째 때문이다.

14개월이 된 셋째는 얼마 전부터 걸음마를 하고 있는데 이것도 오빠 언니보다 훨씬 빨라서 우리

부부를 감격하게 했다. 마흔넘어 얻은 금쪽 같은 막내라서 그런지, 위로 두 아이를 키우고 얻은

아이라서 그런지 아이가 보이는 모든 행동들이 이쁘고 귀하고 특별하게 느껴진다.

두 명의 모델이 있어서인지 유난히 보고 따라하는 것이 빠른데 아빠가 망치질을 하면 저도

손에 든 것으로 망치질하는 흉내를 내고, 언니가 그림을 그리면 저도 붓을 들고 물감을 짜는

시늉을 한다. 내가 노래를 부르면 ‘어-어’ 하며 따라 부르는 시늉을 하고, 언니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으면 저도 책을 가져와 ‘으어-으어’ 하며 읽는 흉내를 낸다.

무얼해도 이쁘고 기특하고 특별해 보인다. 남편과 나는 매일 막내를 보며 감탄하고 황홀해한다.



‘첫째랑 둘째 때 보다 더 빠르지? 이런 건 첫째도 둘째도 요 개월 때 하지 않았었지? 얘는

언니 오빠보다 훨씬 더 영특한 것 같애’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맞장구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행복해 하고 있다.

이런 즐거운 상상과 뿌듯한 행복감이 얼마나 더 갈지 모르지만  머지않아 깨어질 헛된 기대라도

좋고 곧 비범함은 커녕 또래보다 잘 못하는 것이 더 많은 것을 발견하고 배신감을 느낄지라도 좋다.

두 번이나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매일 무언가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게 너무나 신기하고

조금씩 말을 배워가고, 새로운 행동을 익혀가는 것도 너무나 대단하게 느껴진다.

마치 첫 아이를 보는 것 처럼 모든게 다 새삼스럽고 새로와서 기쁘고 감탄스럽고 벅차게

이쁜 것이다.

영재가 아니면 어떤가. 부모의 눈에는 모든게 다 특별하고 뛰어나 보이는 걸... 머지않아

끝날지라도 남편과 나는 이 시절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내 아이에게서만 느껴지는

특별함과 영특함에 감탄하고 아무것도 아닌 몸짓과 표정에도 진심으로 기뻐하며 아이의 존재

그 자체로 가슴이 벅차 오르고 고마와서 무엇에라도 감사하고 싶은 그런 나날들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다 특별하다.

세상이 평가하는 비범함이 없다해도 그 아이만이 지닌 특별함과 귀함이 있다.

부모에게만 보이고, 부모라서 알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

나는 지금 내 아이의 모든 것이 다 특별해 보이는 시절을 살고 있다.

이런 시절을 세 번이나 겪을 수 있어서 고마울 뿐이다. 세번째라서,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어서 더 진하고 더 설레는 기쁨을 느끼고 있다.



이번 증상은 생각보다 오래갈 듯하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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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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