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티의 엄마가 되고 나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이 늘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재봉질로 바지 만들기와 신발 만들기.
케이티는 오른 다리가 왼쪽 다리에 비해 2.5배 크다 보니 기성 바지를 입기가 쉽지 않다.
오른쪽 다리는 자라면서 점점 길어지기까지 하니 더더욱 그렇다.
신생아 때는 싸개로 돌돌 싸매고 지내거나 기저귀만 입히기도 했는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게 되자 마음이 괴로웠다. 그러던 중 재봉질 고수이며 역시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내 지인이 급히 바지를 만들어 보내왔다. 이렇게.
이 바지들을 받고 용기를 내어 거금을 들여 재봉틀을 장만했다. 사실 나는 어릴적 부터 미적 감각이라곤 전혀 없고 손재주 따위는 기대할 수도 없는 사람. 그런 내가 재봉틀을 덜컥 지른 건, 순전히 '필요'에 따른 것이었다. '잘' 하지는 못해도 뭐든 '열심히' 하는덴 이골이 난 사람이니 이것도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 정도는 할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어차피 유아기 몇 년 동안엔 아주 솜씨 좋은 바지 같은 건 필요 없고 그저 고무줄 바지면 충분할 테니까.
그리하여 케이티 생후 6개월 무렵부터 나의 재봉질이 시작되었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천과 헌옷감을 얻어다 요리조리 난도질(!) 해가며 시작했는데, 재봉질은 커녕 기본 손바느질도 잘 모르고 덤벼든 거라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주먹구구식이다. 정식으로 하려면 신체 치수를 재서 패턴을 뜨고, 바짓감으로 적합한 천을 찾아서 선세탁 하고 다림질 해가며 깔끔하게 해 내야 하는데.. 나는 작아진 아기 옷을 해체해서 천에 대고 대충 크게 크게 따라 그려 만든다. 천도 여기저기서 마구잡이로 얻은 것들이라 옷감보다는 홈 인테리어용에 어울리는 게 대부분인데 천을 따로 살 경제적 여건도 물리적 여건도 되지 않아 그냥 가진 것만으로 만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외할머니 가까이 살 때 이것저것 많이 배워둘 걸 그랬다. (우리 외할머니는 40년 넘게 자식들, 손주들, 이웃들 신체 치수 재서 그림 그리고 패턴 떠서 뜨개질로 옷 만드는 걸 낙으로 여기시는 분인데,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곤 목도리 뜨기, 덧신 뜨기 밖에 없으니.. 패턴 같은 건 눈여겨 본 적도 없다.)
그래도 아직 아이가 어리다 보니 그냥 내 눈만 질끈 감고 모른척 하면 대충 입혀 지낼 수는 있다.
재봉틀 산 지 약 6개월 만에 첫 바지를 만들었고
덧신과 신발도 만들어 신겼다.
이건 막 걷기 시작할 무렵 실내/타일 바닥용으로 만들어 신겼던 덧신.
그리고 이건 바로 지난 겨울, 어른용 실내화 바닥재에 재봉질로 만든 덧신을 합쳐 꼬매서 만든 나름 '정식' 신발. (왼발은 기성 신발을 신겼기 때문에 케이티는 한동안 짝짝이 신을 신고 돌아다녀야 했다.)
다행히 신발은 지인의 도움으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맞춤제작 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한시름 놓았다. 요즘은 여름이라 통 넓은 반바지를 사 입힐 수 있어서 바지 만드는 일도 약간 주춤해졌다. 더운 여름 동안엔 조금 쉬면서 치수 재고 패턴 뜨는 법 공부를 좀 해 두어야겠다. 가을이 오면 오른 다리 품도 기장도 넉넉한, 예쁜 엄마표 바지를 여럿 만들어야지.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엄마표 이지만, 그 덕에 내 평생 해 볼 생각도 하지 않은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게 됐으니, 기쁜 마음으로 배워 나가야지. 지난 1년간은 기쁜 마음보다는 속상한 마음, 조급한 마음으로 재봉틀을 돌렸지만 앞으로는 조금 더 여유를 가져야지. Disabled(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fashionable(옷 잘 입는) 할 수 있다, 는 모토로 만들어졌다는 어느 패션 관련 서적을 떠올리며, 나는 내 아이의 크고 긴 한쪽 다리를 가리기 위한 옷이 아닌, 아이를 더 빛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멋진 날개옷을 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