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처음으로 케이티를 데리고 수영장에 갔다.
번역하자면 '아이랑 엄빠랑' 쯤 되는, 생후 6개월~36개월 아이들과 그 부모가 함께 하는 '생애 첫 수영'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수영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아빠와 20여년 전 배운 자유형과 배영을 다 잊어버린 엄마, 그리고 물놀이라곤 욕조와 아기 풀장에 물 담아 놓고 해 본 것이 전부인 케이티의 첫 수영장 나들이.
첫 수업에 들어가기 전, 나는 프로그램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아이가 선천성 희소질환을 앓고 있는데, 이 문제로 담당 강사와 논의할 게 있다"고.
특별히 문제될 건 없을거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워낙 겉으로 보기에 아이 다리가 많이 다르기 때문에 최소한의 설명은 필요할 것 같았다. 혹시라도 다른 참가자들에게 불쾌감이나 불안감을 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역시, 그건 기우였다. 담당자는 월요일 아침, 아이 다리를 직접 보고서도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말했다.
"수영장이니까 전염성이 있는 거면 당연히 문제가 되지만 그게 아니라면 아무 상관 없다. 아이가 수영을 하다가 아프거나 다쳐서 뭔가를 더 악화시킬 수도 있나? 혹시 그런거면 아이가 다치지 않게 엄마 아빠가 더 잘 봐야 한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어린 아기들이 엄마 아빠랑 같이 물 속에서 노는 거고, 참가자 수도 많지 않아서 애들이 서로 부딪히거나 긁어서 상처 낼 일도 거의 없다. 그러니 안심하고 즐겨라"
미국 와서 살면서 '아 이거 어쩜 내가 너무 한국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싶을 때가 종종 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수영 등록을 한 날 밤, 수년 전 스치듯 본 <휴먼다큐 사랑>의 한 꼭지가 떠올랐다. 두 다리 없이 태어난 한 아이를 입양해 수영 선수로 키워 낸 엄마의 이야기였는데, 그 엄마는 아이에게 수영을 가르치기까지 숱하게 문전박대 당했다고 했다. 전염 질환도 아닌, 선천성 지체장애를 갖고 있을 뿐인데도 '수영장 더러워진다'고 멸시하는 통에 엄마가 매일같이 그 넓은 수영장을 닦고 청소해주며 관계자들에게 통사정해서 겨우 겨우 수영장을 다녔다고 했다. 한국에 있었으면 나와 케이티도 그런 대우를 받았을 지도 모른다. 오른쪽 다리가 왼쪽에 비해 2.5배나 굵고, 오른 발등은 거북이 등처럼 불룩 솟아 있고. 발가락은 팅팅 부어 볼링핀 모양을 하고 있고. 발등과 무릎, 허벅지, 배, 등에 울긋불긋 얼룩이 져 있고. 군데군데 상처 딱지 같은 것도 나 있으니.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그 엄마의 얘기 뿐만이 아니었다. '장애인 남성과 비장애인 여성의 연애'로 <인간극장>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는 항승씨의 얘기도 떠올랐다. 여자친구 주리씨와 데이트를 하던 중에 공원 관리인으로 보이는 한 아저씨가 다가와 항승씨에게 말했단다. "거 그 의족은 좀 가리고 다녀요. 부끄럽지도 않나." 사고나 질병으로 다리를 잃은 사람이 의족을 차고 다니는 것조차 '가려야 할 것' '부끄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곳이 한국이다. 하물며 거북이 등 같은 발과 볼링핀 발가락을 갖고 있는 내 아이 케이티는 어떨까. 자폐아를 키우는 한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버스를 탔다가 아이들이 소란을 피우면 "저런 걸 왜 데리고 다녀!" 소리를 듣기 일쑤라는데. 아픈 아이들을 아픈 아이들로 보기보다는 '이상한 것들'로 보고 '저런 걸 왜 낳았대?' 하는 시선과 비난을 던진다는데. 나는 무슨 복이 많아서 단 한번도 그런 얘기 듣지 않고 '아이가 참 예쁘다' '해피 보이네!' '너 닮아서 애가 밝다' 소리 들으며 지금껏 키울 수 있었는지. 새삼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그게 정말 내가 복이 많아서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이 사회가 내가 살아 온 사회보다는 조금 더 이런 문제에 열려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비록 이 사회도 여러 문제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적어도 이곳은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대학 교육을 받고 일을 할 수 있는 사회다. 누군가 휠체어를 탄 채 버스에 오르내리느라 시간을 지체해도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 없고, 버스 기사는 휠체어 탄 승객이 탈 때마다 매번 자리에서 일어나 휠체어 고정 장치를 잠갔다 풀었다 도와주는 곳. 심각한 ADHD 학생들에게 시험 시간을 더 주고 공간을 따로 배정해서 그들이 최대한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게 돕는 곳. 안면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버스에 올라도 피하거나 찌푸리지 않는 곳.
최근 알게 된 한 미국인 할머니는 내 아이를 보며 당신의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70년대 초반에 낳은, 얼굴도 보지 못하고 잃은 둘째 아이의 얘기였다. 조산기가 있어 병원에 갔다가 바로 수술을 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다운 증후군에 심각한 미숙아 상태였다고 했다. 결국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났는데, 병원에선 아이가 죽은 후에도 아이 얼굴 한 번 보여주지 않았다고 했다. 할머니는 수술 회복실에서 간호사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그저 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저 여자가 낳은 애 봤어? 흉측해 글쎄, 말도 못해. 다운 증후군인데다, 아직 발달이 다 안 되서 사람 꼴도 아니래. 어쩜 저런 걸 낳았을까?'
이 아픈 얘기를 들려주며, 할머니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할머니는 이내 눈물을 닦고 내게 말했다. "네 아이는 잘 자랄 거야. 걱정 마. 그 세월 동안 많이 변했어. 이 나라도, 이 곳 사람들도. 네 아이가 더 크면, 그 때는 또 더 많이 달라져 있겠지."
한국도, 우리도, 그렇게 변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