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9ec0b742a85b8c8ff765ae84977731b. » 정자와 난자를 체외수정하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서른여덟 고령임신 도전기...'다 갖는 아기' 나만 힘들다는 스트레스가 더 힘들어



"둘째시죠?"



병원가서 검진이라도 받을라치면 젖먹이가 있다는 말에 이렇게 되묻는다. 내 나이 올해로 서른아홉. 둘째를 낳아도 늦둥이인 판에 셋째나 넷째냐고 묻지 않은게 고마울 뿐이다. 칼럼을 시작하며 썼던 바와 같이 울 아기는 첫째다. 첫째인 동시에 무지 귀한 아기다. 귀하지 않은 아기 어딨냐고 유난떤다고 열받지 마시라. 농담이다. 하지만 조금 특별한 아기인건 사실이다. 무엇이 특별한가하면 아기 '제작 공정'이다. 엄마 아빠의 뜨거운 하룻밤이 아니라 김박사님(이박사님?)이하 연구진의 실험을 통해 만들어진 아기인 것이다. 로보트 태권브이를 낳았냐구? 그럴리가.



맞다. 시험관 아기다.  결혼한지 딱 5년됐을 때 시도한 체외수정으로 올 2월 첫아기가 태어났다.



서른세살에 막차타는 기분으로 결혼했을 때 임신 출산에 대한 계획이 뚜렷이 잡혀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은근히 '표준적인 삶'을 지향했던 나인지라 아이를 갖는 것에 큰 고민을 하지 않았다. 남편은 1년 정도 신혼을 갖기를 바랬지만 조금 당겨 6개월이 지난 뒤 아기를 가져보기로 했다. 물론 계획 뒤 바로 임신이 되기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언니 둘다 결혼 뒤 1년이 넘어서야 아기 생긴다는 보약까지 먹고 아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이미 30대였으니까.



초조하게 기다리진 않았지만 서른다섯이 되니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고령임신으로 넘어가는 시점이 아닌가. 게다가 결혼 1년 뒤  몸만들기 차원에서 언니들이 효과봤다는 보약도 먹어봤지만 감감 무소식. 친정엄마가 '용하다'(?)고 추천받은 불임클리닉(그렇다, 큰 병원도 여전히 다 불임클리닉, 불임치료다)에 갔다.



남편도 나도 검사 결과는 정상. 이러니 더 답답한 거다. 배란주기를 이용한 자연임신 시도, 배란촉진제를 먹고 자연임신 시도, 여기까지는 덤덤했다. 이렇게 생길 아이면 애시당초 생겼겠지. 병원 다닌지 서너달 만에 인공수정을 시도했다. 혹시 헷갈리시는 분을 위해 간단히 설명한다면 인공수정과 체외수정(시험관 아기 시술)은 다른 치료법이다. 간단히 말해 인공수정은 병원이 대신 해주는 섹스. 아빠의 정액에서 정자를 정제 추출해 엄마의 질 속에 투입한다. 그러니까 정자들과 난자의 임무는 자연임신과 별로 다르지 않다.  무리한 신체 조작이 없기 때문에 엄마의 몸에도 부담이 별로 없다. 대신 성공률은 20퍼센트 미만. 두번 시도 실패.



간단한 시술이라 큰 고민없이 시도했음에도 실패의 스트레스와 좌절은 생각보다 컸다. 누군가 별생각없이 "아이는?" 지나가는 말로 물어도 예민해졌다. 난임이 힘든 건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단지 집안에서의 기대나 눈치 때문이 아니다.  무슨 사법시험 합격도 아니고 왜 '남들 다갖는' 아기가 나에게만 안생기나, 억울한 마음이 든다. 누구는 서로 눈빛만 찡끗해도(특히 연예인들!!!) 애가 생긴다는데 말이다.



직장을 다니는 경우 몸만들기의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  특히나 나처럼 거친(!) 일을 하는 사람은 더하다. 잦은 술자리와 야근. 병원에서야 평소의 일상생활을 자연스럽게 해도된다고 하지만 마감 때 잠시 병원에 들러 인공수정을 하고 와서 12시까지 야근을 할 땐 청승맞은 생각도 들었다. 물론 주변에 나의 상황을 자세히 이야기했다면 배려를 받았겠지만 '남들 다 갖는' 아기 나만 갖는다고 요란 떠는 것같아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요란 떨다가' 임신에 실패하면 더 꼴 한심해진다는 자격지심도 들었다. 이러니 술자리에서 농담처럼 "몸 만들려고요"하면서 거절하면 "됐거든"하면서 두배의 술잔이 돌아왔다. 더군다나 평소 밝고 명랑한 술자리에 대한 애정이 과도했던 나인지라 독하게 결심을 했다가도 술잔을 내 앞에 놓고 <슈렉>의 장화신은 고양이보다 애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얼굴들을 보면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다보면 역시나 '타의 모범'이 되어 부어라마셔라를 솔선수범하고 있었다. "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위로해주면서도 나와 병원의 지시를 성실하게 이행하며 서포트해주던 남편마저 이런 내 모습에는 "애 가질 생각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벌컥했다.



두번의 실패 후 더 이상의 시도를 중단했다. 보통 인공수정이 세번 정도 실패하면 시험관 시술로 들어가는데 더럭 겁이 났다. 안그래도 황우석 사태 때 난자채취가 얼마나 괴롭고 힘든 것인지 전국민이 알게 됐는데 그것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또 간단한 인공수정 실패로도 기분이 땅밑 마그마까지 퍼낼 정도로 다운되는데 시험관 시술까지 실패하면 도저히 정신적으로 감당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또 3년을 흘려보내는 동안 주변에 친한 친구들이 줄줄이 아이를 낳았다. 누군가의 출산소식을 들을 때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사람들은 위로 차원에서 마음 편하게 지내다 보면 생기는 경우가 많다더라 말하곤 했지만 그런 일이 나한테 생길 턱이 없었다.  친정이고 시집이고 결혼 뒤 한두해는 새해덕담이 "내년에는 식구 하나 더 와야지" 였다가 "몸 건강이 최고"라고 바뀌었다. 나를 위한 배려였지만 그게 더 속상했다.



그러는 사이 점점 더 빨리 지나가는 내 몸속의 가임시계가 째깍째깍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그러다 지난 해 3월, 만으로 서른일곱살을 찍었을 때 마음 속의 시계가 땡땡 울리는 느낌을 받았다. 낼 모레면 마흔. 요새는 마흔 넘어 출산도 한다지만 자신 없었다. 하지만 '때와 왔다'고 느낀건 단지 이런 촉박함 때문이 아니었다. 무엇이든 한번 끝까지 해보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다행이 나이가 들어선지 한번 실패하고 세상 무너진 듯 괴로워 하지 않을 마인드컨트롤의 자신도 생겼다. 한두번은 실패할거야. 그러면 뭐 어때? 설사 끝까지 안된다 한들 안해보고 나중에 후회하는 것보다 낫잖아?시험관 시술 딱 세번만 해보자. 그러고 안되면 입양을 생각해볼 수 있고 그것도 힘들면 아이 없이 즐겁게 사는 방법도 있지 않겠어?



마음이 결정되자 행동은 자연스럽게 빨라졌다. 병원을 다시 알아보고 의사 친구의 추천을 받아 지난해 3월 다시  불임클리닉의 문을 두드렸다. 두둥!(눈물없이 볼 수 없을 것 같지만 실상 그렇지도 않았던 시험관 시술 스토리는 다음주에 투비 컨티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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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 기자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얇은 팔랑귀를 가지고 있는 주말섹션 팀장. 아이 키우는 데도 이말 저말에 혹해 ‘줏대 없는 극성엄마가 되지 않을까’, 우리 나이로 서른아홉이라는 ‘꽉 찬’ 나이에 아이를 낳아 나중에 학부모 회의라도 가서 할머니가 오셨냐는 소리라도 듣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엄마이다. 그래서 아이의 자존심 유지를 위해(!) 아이에게 들어갈 교육비를 땡겨(?) 미리미리 피부 관리를 받는 게 낫지 않을까 목하 고민 중.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여주고 입혀주기 위해 정작 우는 아이는 내버려 두고 인터넷질 하는 늙다리 초보엄마다.
이메일 :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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