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3일에서 14일로 넘어가는 새벽 1시 무렵, 진통이 시작됐다. 그날은 출산 예정일에서 1주일 하고도 하루가 더 지난 날이었다. 가진통을 거의 느껴본 적이 없었던 나는 진통이 시작되자 초조하게 시간을 체크하느라 밤을 꼬박 새야 했다. 진통이 시작되니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고 앉아 쉬는 것 조차 힘이 들었다. 결국 열 몇 시간을 먹지도 자지도 못한 상태로 병원에 들어갔다.  


나는 출산을 할 때 과도하게 의료진의 개입이 이뤄지는 게 싫었던지라, 담당의도 '의사'가 아닌 '조산사'로 선택한 상태였다. 그리고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먹고 싶은 것 먹어가며 물 속에 들어가 진통 하는 쪽을 택했다. 그런데 진통이 내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오기 시작하면서 내 모든 계획이 틀어지고 말았다. 배나 허리 부근 어딘가가 아플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웬걸, 나의 진통은 꼬리뼈와 항문으로 오고 있는 게 아닌가! 그 덕에 나는 내내 제대로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상태로 남편 어깨를 붙들고 눈물만 줄줄 흘렸다. 조산사의 권유에 따라 짐 볼에도 앉아보고 물에 들어가 엎드려도 봤지만 별무소용이었고, 몇 시간째 자궁문은 1센치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12시간 넘게 잠도 못 자고 물도 뭣도 안 먹으려고 하는 나를 보고 조산사는 오후 늦게 결국 무통주사를 권했다.  그런데 그 뒤에 문제가 발생했다. 무통 주사를 맞으면 진행이 더 더뎌질 수 있다는 것 정도야 알고 있었지만, 아이가 갑자기 역아가 될 줄이야. 


진통을 시작한 지는 이미 12시간이 훨씬 지났고, 자궁문은 이제 겨우 3cm인데, 역아라니. 나는 더 버틸 힘이 없었고, 결국 수술실에 들어갔다. 불현듯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정말 아이 다리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 그래서 혼자 힘으로 나올 수 없어서 이렇게 오래도록 힘들어하다 아이가 자리를 바꾼 것 아닐까. 조산사는 만일을 대비해 신생아 전문 담당의를 수술실에 대기시켜 두겠다고 했다.  


수술실에 들어간 직후부터 왼손은 남편이, 오른손은 내 담당 조산사가 잡아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온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어야했다. 그리고 곧 나온 아이. 그러나 나는 아이를 곧바로 보지 못했다. 남편이 신생아 전문 담당의와 짧게 얘기를 나누고는 내게 와서 속삭였다. '놀라지 마..' 


아, 그랬던 거였구나. 정말로 네 다리에 문제가 있었던 거구나. 


아이는 내게 약 3초간 얼굴만 보여주고는 곧 신생아집중치료실로 들어갔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설명을 들었고, 나는 회복실로 옮겨졌다. 


그 날 밤 자정이 넘은 시각, 담당 신생아 전문의 닥터 롤로가 체크 남방에 청바지 차림으로 들어와 내 곁에 앉아 찬찬히 얘기를 들려주며 길고 긴 그 진단명을 자그마한 쪽지에 적어 우리에게 쥐어 주었다. 클리펠-트리나니 신드롬(Klippel-Trenaunay Syndrome). 아이는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오른쪽 하반신의 혈관과 림프관이 기형적으로 형성된 상태라고 했다. 붉은 포도주 빛 얼룩이 군데군데 크게 져 있는 것은 모세혈관의 비정상적 확장 때문에 생기는 것이고, 다리와 발등이 크게 부어 있는 것은 림프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탓이라고 했다. 치료법은 없다고 했다. 생명에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나, 간혹 이 병을 가진 사람들 중에 폐나 심장 등 장기와 관련되어 있는 혈관에도 기형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고 했다. 그 여부를 알기 위해서는 이틀 후 큰 도시에 있는 아동병원에 가서 MRI를 찍어봐야 한다고 했다. 


그가 떠난 후 나는 약 기운에 취해 몽롱한 상태로 곧 잠에 빠져들었고, 길고 긴 아내의 진통과 갑작스러운 수술, 아이의 상태까지 온전히 혼자서 보고 듣고 받아들여야 했던 남편도 병실 창가에 놓인 보호자용 소파에서 긴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우리가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던져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귀로는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사건 소식을 뉴스 속보로 들으며(12월 14일, 미국 커네티컷 주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 아이들 20여명이 사망했다), 입으로는 미역국을 먹으며, 생각했다. 아, 여기가 우리가 사는 세상이구나. 한 아이가 10만분의 1확률의 희소 질환에 걸려 태어나고, 스무명의 아이가 총에 맞아 죽는, 여기가 우리의 세상이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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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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