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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와봐!"

 

토끼밥을 주러 간 남편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마침 주방에 있던 저는 뭔 일인가 싶어

준영이를 들쳐 안고 후다닥 뛰어나갔어요.

 

그가 흥분한 건 바로...

우리집 꼬꼬야들의 첫 작품,

조그맣고 새하얀 알 때문이었답니다.

 

엊그제,

평소와 다른 톤으로 길고 고통스럽게 울어대길래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사진을 찍어두려고 들여다보는데

마음이 콩당콩당 두근두근

이것이 바로 시골 사는, 닭 키우는 재미구나 싶어

여러분과 나눠볼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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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을 보는 그 순간은 무척 기뻤지만

사실 닭들과 함께한 지난 6개월은 꽤 험난했답니다.

 

작년 가을, 화순으로 이사를 오면서

우리부부가 기대한 '사건' 중 하나는 가축 키우기였어요.

특히 우리가 직접 키우는 닭들이 낳은 달걀을 먹을거라는 생각에

얼마나 흥분했던지.

남편과 호주 허브 농장에서 일할 때,

허브 먹고 방목하며 자란 닭의 달걀 맛이 얼마나 특별한지

맛을 봐버렸거든요.

 

새 공간에 적응하기도 전에 새 식구들부터 들이는게 부담스러웠지만

하여튼, 준영 외할머니로부터 여섯 마리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오골계 두 마리, 장닭 포함한 일반 닭 네 마리.

제대로 울음소리도 내지 못하는,

이제 막 병아리 티를 벗은 청소년쯤 되는 어린 닭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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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무척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어요.

 

뒷마당에 풀어놓으면

지들끼리 옹기종기 앞서거니 뒤서거니 몰려다니며

벌레를 잡아먹고, 허브 잎사귀도 뜯어먹고.

그러다 지렁이라도 발견하면 서로 먹으려고 사투도 벌이고요.

 

그런데 얼마 뒤부터 닭들이 알 수 없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는 겁니다.

잘 먹지 않고, 눈꺼풀이 자꾸 감기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가며 이상한 소리도 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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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방치돼 있던 쾨쾨한 닭장이 원인인가 싶어

반나절을 꼬박 쓸고 물을 뿌려 청소한 뒤

동네 어르신에게 얻어온 쌀겨를 푹신하게 뿌려주었건만...

 

쓰다듬고 어루만져주고,

동네 동물병원 의사선생님이 주신 약을 먹여도,

한 마리 한 마리 쓰러지더니

결국 오골계 두 마리만 남고 말았습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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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골계 알이라 그런지, 초란이라 그런지 크기가 비교적 작지요?

한살림 유정란과 비교해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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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젓만 넣고 계란찜을 했어요.

색깔이 무척 샛노랗지요?

 

산란의 고통을 이겨내고 생산해낸 그들의 첫 작품,

먼저 간 네 마리에 대한 미안함과 아련함.

저는 왠지 괴롭게 울던 닭소리가 귓가에 계속 맴돌아서,

마음이 뭉클해져서, 한 숟가락도 못 뜨고 말았지만

준영이가 맛있게 냠냠 먹으니 그거면 충분하다 생각했어요.

 

아직 알을 낳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해서

한 마리가 하루에 한개씩 낳고 있는 건지,

두 마리가 하루 걸러 하나씩 낳은 건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생명의 귀함과 애잔함에 대한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나니

기쁨을 안겨준 닭들이, 자연이 고맙습니다.

어서 장닭들 들여와야겠다거나,

이웃들에게 나눠주면 좋겠다거나 하는 즐거운 마음도 생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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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영이가 무척 좋아하는 "꼬끼야~"들

 

이렇게 앞마당에서 이들과 마주친 날은 무척 운이 좋은 거랍니다.

역마살있는 주인을 닮았나,

요놈들은 멀쩡한 집보다 텃밭과 그 뒤에 있는 야산에서 노는 걸 더 좋아해요.


닭장 안에 놔둔 모이가 줄어드는 걸 보며

가끔 들어는 오는구나, 할 뿐이지

명색이 주인인 우리도 이들이 보고싶으면

근처 산과 밭을 뒤져야만 한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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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햇살과 바람이 무척 따뜻하네요.

서울에 눈이 왔다던 어제, 화순에는 봄비가 살짝 내렸는데

밤이 되자 이렇게 하늘에서 빛이 쏟아져 내렸답니다.

 

남편이 한참 시간을 들여 찍어온 이 사진을 보며,

여러분에게 이런 풍경을, 이야기를 자주 들려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아이가 퇴원한 뒤 화순집에 오고 나서도

한참동안 일상으로 완벽하게 돌아오지 못했어요.

 

지난 몇년 간, 일하면서 책 쓰고 첫 아이 낳고 키우고

책을 출간하고, 다시 임신을 하고, 아이가 아프고...

수월하게 넘겨온 줄만 알았던 일들의 무게가 한꺼번에 몰아닥쳤는지

한동안 몸도 마음도 방전이 된 건전지마냥 축 늘어져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지금껏 이렇게 의욕이 없던 적이 있었던가 할 만큼 힘들고 지치고 허무했지만,

행여나 제가 더 짐이 될까봐 누구와도 나누지 못하고 자책만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이건 무슨 연정인가요^^

그 와중에도 베이비트리 분들의 안부가 궁금하더라고요.

그동안 새로 오신 분들이 많이 계셔서인지 베이비트리가 무척 다이니믹하게 느껴지네요.

반갑습니다. 자주 뵙고 싶어요.

그리고 익숙한 분들도 모두 안녕하셨지요?

오랫동안 글을 못 올렸더니 개인적으로 안부를 물어주셨던 분들이 계세요.

이 공간을 빌어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 마음, 응원들 덕분에 다시  기운을 낼 수 있었어요.

 

봄 봄 봄

희망과 시작의 계절.

남쪽에선 벌써 매화와 산수유가 피었다지요?

저희도 이번 주말에 짧은 여행을 다녀올 예정인데요.

다녀와서 아름다운 꽃소식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더욱 즐겁게 시골육아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안정숙 엘리사벳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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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숙
2012년 첫째 아이 임신, 출산과 함께 경력단절녀-프리랜서-계약직 워킹맘-전업주부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경험 중이다. 남편과 1인 출판사를 꾸리고 서울을 떠나 화순에 거주했던 2년 간 한겨레 베이비트리에 ‘화순댁의 산골마을 육아 일기’를 연재했다.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를 통해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17년 겨울, 세 아이 엄마가 된다. 저서로는 <호주와 나 때때로 남편>이 있다.
이메일 : elisabethahn@naver.com      
블로그 : http://blog.naver.com/elisabeth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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