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극장에서 ‘겨울 왕국’을 봤다. 함박눈이 내리는 영화 속 풍경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3D로 보니 눈송이가 내 어깨 위에 슬며시 내려앉을 것처럼 느껴졌다. 와, 진짜 눈 같아! 아이들도 신기하다며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sIMG_6917.jpg

 

 하얀 눈 뒤덮인 산, 얼음 왕국, 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곳이 있다. 스위스 융프라우, 십 년 전 그곳을 여행할 때 라우터브루넨 골짜기가 내려다보이는 조그만 산골 마을에서 며칠 묵었다. 눈이 얼마나 많이 오는지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민박집에서 하릴없이 창가를 서성이며 밖을 내다보는데 멀리서 그 집 아이가 점심 먹으러 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아이가 두텁게 쌓인 새하얀 눈밭으로 고꾸라졌다. ‘어머, 어떡해?’ 발을 헛디뎌 넘어진 줄 알고 걱정했는데 배시시 웃으며 일어서더니 다시 눈 더미에 몸을 던졌다. 눈 속에 파묻혀 막 뒹굴다가 눈을 뭉치고 허공에 뿌리고 한 움큼 입속에 털어 넣었다. 아이는 온몸으로 눈과 하나가 되어 구르고 있었다.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산, 하늘, 공기, 온 세상이 한데 뒤엉켜 아이에게로 촘촘히 박히는 듯 했다.


XAj5aeD4wK.jpg


 민박집 주인아주머니를 따라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구경을 갔다. 학생이 서른 명 남짓 되는 아주 작은 학교에 교실 한 칸이 목공 작업실이었다. 커다랗고 튼튼한 나무 작업대, 그리고 벽에는 다양한 공구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나는 서른이 되도록, 지금까지도 한 번 만져보지도 못한, 이름도, 쓰임새도 알지 못하는 도구들로 가득했다.


XC9gpp2Mxn.jpg


초등학생들이 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깎고 다듬어 물건을 만든다니, 조금 날카로운 칼을 잡기만 해도 위험해서 큰일 나는 줄 알고 자란 나로서는 몹시 놀라웠다. 이곳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학교와 집에서 나무 다루는 기술을 익힌단다. 안전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옆에서 도와주면 어린아이도 해낼 수 있다고.


자신의 손끝에서 새로운 물건이 만들어지는 것은 얼마나 멋진 경험인가!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손으로 짓는 즐거움을 알게 된다면 소비에 의존하지 않고 당당히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자연과 사물의 귀함을 깨닫게 되리라.


XfLcmFS77B.jpg


 융프라우는 잘 알려진 대로 아름다웠다. 산기슭에서 이 멋진 풍경을 품고 자라는 아이의 모습은 그보다 더 깊은 울림을 주었다. 아이를 낳으면 자연과 가까이 살게 하리라, 그때의 다짐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지만, 늘 마음에 두고 산다. 아이들에게 진짜 칼을 쥐어주고 원하는 걸 덥석 사주기보다 같이 만들어 보려 애쓴다.


XE0axawQEp.jpg


 영화 속 장면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지만, 눈으로만 즐기고 사라져버리는 가짜 눈은 아무래도 아쉽다. ‘같이 눈사람 만들래?’ 영화 주제곡을 듣고 있으려니 몸이 근질근질하다. 이 겨울 가기 전에 함박눈 펑펑 내렸으면 좋겠다.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잔뜩 움츠렸던 몸과 마음 쭈욱 펴고 아이들과 신 나게 놀아 보리라. 거리낌 없이 온몸을 내던져, 그때 그 아이처럼!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빈진향
사진으로 만난 남편과 408일간 세계일주를 했다. 서로에게 올인해 인생을 두 배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둘이 넷이 되었고, 현재를 천천히 음미하며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 돈 벌기 보다는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아루(아름다운 하루), 해람(해맑은 사람)과 함께 자연과 사람을 만나며 분주한 세상 속을 느릿느릿 걷는다. 2012년 겨울, 49일동안 네 식구 말레이시아를 여행하고 왔다. 도시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사진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다.
이메일 : babytree@hani.co.kr      
블로그 : http://plug.hani.co.kr/beanytime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147151/d49/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1005 [박태우 기자의 아빠도 자란다] 아기의 16일간 사투 그리고 그후 161일 imagefile [18] 박태우 2014-03-04 17460
1004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새봄, 새학기 준비는 바른 수면습관부터 imagefile [13] 윤영희 2014-03-02 11749
1003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내 없는 일주일, 외식 외식 외식.... imagefile 홍창욱 2014-03-01 16737
1002 [최형주의 젖 이야기] 푸우우우~~~ imagefile [2] 최형주 2014-02-27 9559
1001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언니 때문에 막내는 열공 중 imagefile 신순화 2014-02-26 15789
1000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500원짜리 가방 들고 둘째는 학교에 간다네!! imagefile [2] 신순화 2014-02-26 9571
999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밥보다 변신로봇, 엄마의 무한도전 imagefile [10] 양선아 2014-02-26 13849
998 [즐거운아줌마의 육아카툰] [육아카툰34편] 워킹맘, 새벽에 김밥말고 출근한다네~ imagefile [1] 지호엄마 2014-02-25 9077
997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폭풍육아중인 부모에게 집밥은, 탄수화물 그 이상의 것 imagefile [5] 윤영희 2014-02-24 10503
996 [최형주의 젖 이야기] 젖 맛, 손 맛 imagefile [1] 최형주 2014-02-20 24091
995 [즐거운아줌마의 육아카툰] [육아카툰33편] 왜 이제야 나타난거야? 베이비트리 앱 imagefile [1] 지호엄마 2014-02-20 30998
994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눈 내린 그곳에 아버님 혼자 계셨다 imagefile [3] 신순화 2014-02-18 22373
993 [엄마 귀는 팔랑팔랑, 이거 살까 말까] 8화. 유아 겸용 변기 커버 imagefile [3] 팔랑팔랑 2014-02-18 12882
992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내 없이 살아가기1 imagefile 홍창욱 2014-02-18 17621
991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일본과 한국을 오가는 육아 공감 선물 imagefile [7] 윤영희 2014-02-16 20444
990 [박태우 기자의 아빠도 자란다] 세상으로의 첫 여행, 곧바로 중환자실로 imagefile [3] 박태우 2014-02-12 28623
989 [박태우 기자의 아빠도 자란다] 확률 1/10만 희귀병, 뱃속 아기가 아팠다 imagefile [3] 박태우 2014-02-12 23156
988 [김외현 기자의 21세기 신남성] 할배요~ imagefile [1] 김외현 2014-02-11 11029
» [사진찍는 엄마의 길 위의 생각] 스위스 산골 아이처럼 imagefile [2] 빈진향 2014-02-11 15682
986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아들이 집 나갔다, 얼쑤 신난다!! imagefile [10] 신순화 2014-02-11 20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