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감기몸살을 앓고 나니 얼굴이 홀쪽해졌다.

새집으로, 새 사무실로 이사를 하다보니 과로한 것 같다.

지난 한 달은 내게 너무나도 힘든 시기였다.

2013년의 13월인 듯 느껴질 정도로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

뽀뇨 돌보기 좋아서 선택한 일이 2년 반 만에 점점 잘 풀리다(?) 보니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어졌고 새로운 사무실에, 새로운 동료까지 생겼지만

어찌된 일인지 정리가 되질 않는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고 돌 지난 뽀뇨가 자라듯 함께 성장해온 마을기업이지만

일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회의가 드는 것은 사실이다.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정답일 텐데 나의 초심은 늘 가족과 함께 풀을 뜯는 여유로운 수소의 마음이었지

온 에너지를 뽑아쓰는 에너자이저의 마음이 아니었다.

다만 시간을 내 마음대로 관리하는 주인의 삶을 살자는 원칙에 따라 한발짝 또 한발짝 이 길을 걸어왔다.

 

일을 하다보니 욕심이 생겨서 일과 내가 일체가 되는 물아일체의 지경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은 장효조도 타격 3할 했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지금 수준의 80%만 해라라는

격려 아닌 격려를 해주셨고 주변의 지인들, 제주를 여행차 왔다가

잠시 나를 만난 지인들은 내 하소연 듣느라 귀가 조금 아팠을 것이다.

일을 그만둘까 아내에게 넌지시 말을 건내 보았지만

만삭의 몸에, 27만원 관리비가 10년이나 들어가야 하는 임대아파트로 이사 왔지만

당장 그만두라는 이야기를 할 것이 뻔한 아내이기에 사직서 제출2년 뒤로 미루기로 했다.

 

그리고 찾아온 몸살감기.

새해 들어 주말에 제대로 한번 쉬어보지 못하고 설대목이다 이사다, 행사다 이것저것 하고나니

결국엔 찾아올 것이 찾아온 것이다.

밤새 몸살감기와 싸우고 나니 아내가 48시간 안방이동금지명령을 써붙이고선 장을 보러 갔다.

남편이 스스로 하지 못하는 일을 아내가 해주니 고맙기도 하고 절로 웃음이 났다.

밤낮으로 침대에선 몸살과 싸운 것이 아니라 쌓여있는 일들의 잔상과 싸우느라 온 몸에 식은 땀이 흐르고 힘이 들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일이 사라진 것도 아니지만 이틀을 아내의 명령에 따르다 보니 침대에 누워서 구름을 보았고

베란다 너머로 범섬과 태평양을 보았다.

제주에 내려와서 까지 그렇게 살 필요가 있을까라는 내 마음속의 또 다른 자아가 내게 말을 걸었지만

살아가는 일은 그리 만만치 않다라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오늘 가만히 앉아 손마디 끝에 온기가 도는 듯 땡기는 느낌이 있어 살펴보니 피부가 닳아 맨질맨질 해졌고 어떤 곳은 꺼끌꺼끌해졌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치려는데 잠자리에 든 뽀뇨가 몸이 간질거린다고 아빠를 부른다.

뽀뇨, 아빠가 등을 긁어줄께요. 이리오세요

등을 내미는 아이에게 손톱이 아니라 꺼끌꺼끌한 손마디 끝으로 긁어주니 아이는 시원한 듯 곧 잠이 들었다.

뽀뇨의 등을 긁어주며 나는 깨달았다. 내 손마디 끝의 굳은 살이 어릴적 할머니, 어머니의 굳은 살임을.

일하며 닳은 손마디 끝 굳은 살을 통해 나는 어른이라는 존재가 되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피터팬처럼 39년을 살아오며 어른이 되는 것을 싫어했으니 이제 슬퍼해야 할 일이겠지만

나를 이틀씩이나 안방에 감금해준 아내와 지난 2년 동안 시골에서 일하는 아빠를 따라다닌 뽀뇨,

그리고 새로 태어날 하나가 있기에 슬픔은 잠시 보류하기로 한다.

 

<아내가 안방문에 걸어둔 경고문>

아내의 감금령.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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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이메일 : pporco25@naver.com       트위터 : pponyo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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