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썰매 3.jpg

 

오랜만에 눈이 내렸다.

아이들은 모처럼 푹신 내린 눈을 반기더니 이내 집으로 올라오는

비탈길을 눈썰매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안그래도 길이 미끄러워 차를 아랫골목에 세워 두었더니 차가 오르내릴

일이 없는 비탈길은 놀기 딱 좋은 곳으로 바뀐 것이다.

세 아이들은 아침을 먹자 마자 밖으로 뛰어 나가 눈썰매를 타기 시작했다.

조금 타다가 꾀가 생겼는지 마당에 쌓여있는 눈을 퍼다가 눈썰매장 코스를 다지기 시작했다.

찬물을 조금씩 뿌려 더 미끄럽게 만드는 일에도 열심이었다.

한동안은 날이 추워서 주로 집안에서만 놀던 아이들이 모처럼 내린 눈이 반가웠는지

한 나절, 아니 하루 종일 눈 속에서 노는 것이었다.

 

눈썰매 2.jpg

 

덕분에 나는 아이들의 요구대로 잘 미끄러지는 비닐 푸대를 여러장 찾느라

온 집안을 뒤져야 했다. 장갑이며 모자며 두꺼운 겨울옷도  한 번 놀고 나면

다 젖어 버리니 놀다 들어오면 벽난로 가에 널어 말리느라 애를 먹었다.

그래도 볼이 빨갛게 얼어가면서도 재미나서 또 미끄러져 내리고

다시 언덕길을 열심히 올라 또 미끄러져 내려오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눈 내린 날 마침 우리집에서 저녁부터 마을 공동체 모임이 있었는데

엄마랑 함께 온 동네 아이들은 밤 아홉시 넘도록 어른들이 회의를 하는 동안

추운 밤바람을 맞아가며 비탈길에서 신나게 눈썰매를 타더니

다음날 다시 오겠다며 돌아갔다.

그러더니 정말 오늘 점심 무렵이 되자  두꺼운 방수 바지며 웃옷이며

만만의 장비를 갖추고 나타나 눈썰매를 타기 시작했다.

 

눈썰매.jpg

 

아이들과 함께 온 엄마 두명은 따듯한 거실에서 벽난로를 쬐며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을 살펴볼 수 있다고

너무나 좋아했다.

필규 친구 다섯 명과 동생에 우리집 아이들까지 총 아홉명의 아이들은 점심 무렵부터 저녁이 될때까지

지치지도 않고 눈썰매를 탔다. 한동안 타다가 다시 눈을 모아 비탈길을 매끄럽게 다져놓고

다시 타곤 했는데 조용한 우리 마을에 모처럼 즐거운 아이들의 목소리며 웃음 소리가 종일 울려 퍼졌다.

 

어제는 종일 눈을 치운데다 밤 늦게까지 회의를 해서 고단하긴 했지만 우리집이 좋아서 몰려든

손님들이 종일 북적 북적 거리니 덩달아 나도 바빴다. 아홉 아이들 모두 탈 수 있는 두꺼운 비닐 푸대를

마련해주고 장갑이 젖은 아이들은 우리집 장갑을 찾아 바꾸어 주고, 중간 중간 물이며 간식 챙겨주다보니

정말이지 눈썰매장 주인이라도 된 것 같았다.

 

이 집을 얻어서 들어올 때 제일 소망했던 것은 무엇보다 아이들이 즐거운 집이었다.

마음껏 뛰어 놀고, 탐험하고, 즐길 수 있는 그런 집.. 아파트에서 할 수 없는 온갖 재미난 놀이를

맘 놓고 할 수 있는 그런 집을 만들고 싶었다.

이제 우리집은 아이들 친구들이 제일 좋아하는 집이 되었다.

극장에 가는 것 보다도, 박물관에 가는 것 보다도 아이들 친구들은 우리집에 오는 것을

더 좋아한다. 산 비탈을 누비며 나뭇가지를 꺽어서 해리포터 놀이를 하기도 하고

윗 마당, 뒷 마당으로 뛰어 다니며 술래잡기를 할 수 있는 집이다.

여럿이서 동네 탐험도 다니고, 겨울이면 이렇게 마당에서 눈싸움이며 눈썰매를 탈 수 있는

집이니 우리집은 언제나 찾아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물론 아이들이 왕창 놀러왔다 가면 온 집안이 엉망으로 어질러지고, 치우고 정리해야 하는

일은 늘어나지만 그래도 나는 좋다. 무엇보다 내 아이들이 즐겁게 어울려 놀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을에 어울릴만한 어린 아이들이 없다보니 멀리서 이렇게 찾아주어야 내 아이들도

신나게 놀 수 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은 들어도 누군가 찾아오면 나도 신나서

냉장고를 뒤져 먹을 것을 장만하고 열심히 뒤치닥거리를 해주며 재미나게 놀 수 있게

돕는다. 가고 나면 산더미같은 뒷정리며 청소도 불평없이 해치운다.

 

눈썰매 4.jpg

 

아이들은 종일 눈썰매를 타다가 저녁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들이 가고 난 집에는 내 아이들이 종일 버려놓은

여러벌의 웃옷들과 바지, 장갑 등 말리고 빨아야 할 옷가지들이

산더미처럼 나왔다. 두꺼운 옷들은 그냥 털어서 난롯가에 말리고

흙물이 벤 속옷들은 삶기 위해 따로 갈무리 해 두었다.

일거리는 잔뜩 생겼지만 종일 신나게 놀고, 많이 웃고, 잘 먹은

세 아이가 곤하게 곯아 떨어진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고맙기만 하다.

겨울이 깊어가도록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건강하니 그것이

제일 고맙다.

 

눈이 녹기 전에, 겨울이 가기 전에 동네 친구들 불러서

재미난 눈썰매를 더 많이 태워 줘야지.

이다음에 어린 날의 겨울을 생각하면 그저 신나게 놀고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남았으면 좋겠다.

내 어린시절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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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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