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진.jpg 

올 해 딱 한 장의 사진만을 고르라면 나는 이 사진이다. 6월 16일, 결혼 11주년 기념으로 마당 단풍나무 그늘 아래에서 우리끼리 찍은 가족 사진이다.세 아이들이 환하게 웃고, 남편이 미소 짓고 하늘을 맑았고 단풍나무의 초록그늘은 근사했다. 내 집에서 내 가족과 같이 보낸 특별한 것 없지만 사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1년은 언제나 너무나 많은 일들을 안겨준다. 나라 안팎으로도 비참하고 아쉽고 가슴아픈 사건들이 너무 많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여름날 갑작스레 시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신 한 해 였고 내 분신과도 같은 쌍둥이 자매는 죽음 직전까지 같던 교통사고에서 살아 돌아와 지금도 큰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몇년 동안 흘릴 눈물을 한꺼번에 쏟았던 한 해였지만 그러나 2013년 마지막 날에 나는 고마운 마음으로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고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서 가장 많은 희망을 보았다. 안녕하지 못한 날들을 살아가면서도 크게 아프지 않았고 늘 명랑했고 키도 몸도 마음도 쑥쑥 자라 주었다.
 
필규는 열 두 살, 5학년을 앞두고 있고, 윤정이는 손가락으로 날을 헤아리며 어서 빨리 여덟살이 되서 학교에 가기를 소망하고 있다. 이룸이도 다섯살은 더 신나고 즐거울 거라며 기다리고 있다. 이 아이들이 보여주는 성장은 우리 부부에게 가장 큰 기쁨이다. 힘든 회사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아이들을 끼고 누우면 남편은 세상의 모든 일들을 잊었다. 아이들 때문에 힘들다고 늘 불평하는 나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매일 아이들과 사는 날들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안다. 부족하고 소리 잘 지르고 벌컥 벌컥 화도 잘 내는 엄마지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고 웃기는 엄마라고 좋아해주는 아이들이 있어 다시 힘을 얻곤 했다.
 
고등학교 입학식 날, 제 손으로 자퇴서를 내고 나와 온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큰 조카는 저를 몹시도 아끼셨던 할머니의 죽음에서 누구보다 마음아파했다. 그리고 마침내 올 겨울 긴 방황을 끝내고 직업학교에 진학해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고 있다. 조카가 방황하는 모습을 아프게 지켜보았던 우리는 새 출발하는 조카의 새해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다. 남들처럼 평범한 고교 시절을 보내지는 못했지만 흔들린 만큼 더 단단하게 제 앞길을 헤쳐 나갈것을 믿고 있다.
 
엄마의 교통사고와 이어진 수술 후유증으로 몸이 불편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도우며 학교를 다니고 있는 두 친정 조카들도 대견하다. 큰 조카는 내년에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둘째도 초등학교를 졸업한다. 엄마가 겪는 고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무섭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했다면서도 누구보다 엄마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늘 어리게만 보이던 조카들도 힘든 시간을 함께 보내며 더 여물어졌다. 새해엔 쌍둥이 자매의 건강도 조금씩 더 회복될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다.
 
황망하게 아내를 떠나보낸 시아버님도 딸처럼 챙겨드리는 둘째 며느리집과 강릉 본가를 오가시며 잘 지내 주셨고 몇 달 씩 걸렸던 치아 보철 치료도 잘 견뎌 주셨다. 본가에 가 계실땐 스스로 밥도 지어 드시고 반찬도 챙겨 드시는 날들을 보내셨다. 어머님 살아계셨을 때는 전혀 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직장에 다니며 시아버님을 모셨던 동서에게도 정말 큰 감사를 보낸다. 동서는 시부모님께 늘 막내딸이었다. 나는 11년째 며느리로 모시고 있지만 동서는 정말 딸처럼 살갑고 따뜻하게 아버님을 챙긴다. 맏며느리지만 아버님을 모시지 못하는 형님 내외도 마음만은 누구보다 아버님 곁에 가까이 두고 있음을 안다. 어머님이 떠나신 자리를 삼 형제와 세 며느리들이 이전보다 훨씬 더 가깝게 채워주고 있다. 어머님이 주고 가신 선물이다.
 
친정 부모님은 크게 아프지 않고 한 해를 보내셨다. 엄마는 내가 손 내밀면 늘 먼 길을 달려와 나를 도와 주셨다. 생각하면 눈물겹게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한 해 한 해 분명 더 늙어가시는 모습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식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되고 의지가 되는 두 분이 새해에도 늘 건강하고 안녕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일 하면서 아이 키우는 두 여동생들의 고단한 삶에도 새해엔 여유가 생기기를...
아이가 없는 대신 마음이 아픈 친정 남동생을 누구보다 많이 보살피는 큰 언니네 부부의 날들에도 축복이 내려앉기를...
 
그리고 1년간 다섯 식구의 가장으로서 힘든 회사 생활을 견디며 든든하고 따스한 남편이자 아빠로 있어준 남편에게 토닥 토닥 위로와 감사를 보내고 싶다.
 
안녕하지 못한 세상에서 이 만큼 애쓰며 눈물겹게 살아냈으니 새해엔 다시 희망을 품고, 기대를 품고 두근 두근 설레며 맞을 생각이다. 새로운 생활을 앞두고 있는 모두에게 새날들은 분명 올해보다더 좋을 것이다.
 
그런 날들을 만드는 일에 내 작은 힘도 열심히 보태야지.
1년 동안 세 아이의 엄마로서 아내로서 주부로서 그리고 베이비트리 필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아주 조금 더 성장한 나 자신에게도 토닥 토닥 위로를 보낸다. 애썼다. 애썼다.
 
내년엔 올해보다 조금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되자.
 
애썼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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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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