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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그동안 유치원 적응을 유난히 힘겨워 했다.

작년 1년은 담임 선생님이 좀 엄해서 무서웠는지 아침마다 안 간다며 울고불고 -

올해는 친절하고 다정한 담임 선생님 덕에 처음엔 엄청 좋아하더니,

이것도 얼마 안 가 5,6월부터 여름방학 전까지 정말이지 전쟁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담임과 의논을 해 봐도 유치원에서는 별 일없이 잘 놀며 지낸다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였던 걸까.

단 1초도 심심한 걸 못 참는 둘째와 날마다 하루종일 같이 지낸다는 건,

나의 모성애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험난한 여정임을 알기에 -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하루도 빠짐없이 유치원에 보냈다.


그런 1학기를 보내고 여름방학이 지나, 2학기가 되면서 아들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아침에 등원할 때면, 먼저 유치원에 도착한 친구들이 아들의 이름을 마구마구 부르며

반겨주고, 오후에 데리러 갈 때면 몇몇 친구들과 뒤엉켜 너무 신나게 놀고 있곤 했다.

그동안 친구들과 많이 친해진 모양인지

담임 선생님께 여쭤보니, 늘 몰려다니며 노는 남자 아이들이 정해져 있는데

그 친구들과 너무 신나게 놀며 원 생활을 즐기고 있다 한다.

매일 아침, 자전거에 태워 유치원 앞에 도착할 때면 아들은 요즘 이렇게 말한다.

"오늘도 많이많이 놀아야지!!"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유치원 마당에서 놀고 있던 친구들이 대문 근처로 몰려와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빨리 놀자고, 얼른 들어오라고 야단이다.

엄마에게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대문을 들어서는 5살 아들 주변을

몇몇 남자아이들이 에워싸며 끌어안고 장난치고 .. 그 사이에서 아들은 무척 행복한 표정이다.

아...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지만, 적응을 하긴 하는구나..

아이들에겐 정말 친구라는 존재가 참 크구나 .. 둘째를 키우면서 다시한번 절감하게 된다.


아들의 절친 중에 우리집에서 가까이 사는 친구가 있어

요즘은 그 아이와 유치원이 끝난 뒤에도 집을 돌아가며 노느라 더욱 신이 났다.

나와 아이의 친구 엄마와도 의견이 잘 맞아

아들 뿐 아니라 나도 새 친구를 얻은 기분이다.


우리 아이보다 생일이 반 년은 빠른 이 친구는 덩치도 크고 힘도 세지만,

4형제 중에 막내다 보니, 인간관계에서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현명한 건지에 대한 감이

기가 막히게 뛰어나다. 그래서 가끔 고집불통에 철부지같은 우리 아들과 놀 때도

둘 사이에 일어나는 문제들을 잘 해결해가며 위기들을 참 슬기롭게 넘기곤 한다.

아이들이 크게 안 싸우고 자기네들끼리 잘 놀아주니, 엄마들은 그저 고마울 따름.

서로의 집을 오가며 경험하는,

각각의 가족 분위기나 일상문화에도 아이들은 새롭게 느끼는 것 같다.

위로 3명이나 형제가 있는 친구네 집에 아들이 놀러갔다 오는 날은,

항상 그 집의 누나나 형이 함께 놀아준 이야기를 오래도록 들려준다.

나 역시, 나와 동갑 나이임에도

아이 넷을 씩씩하게 키우고 있는 왕선배 엄마에게 배우는 게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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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덕에 유치원 적응이 수월해진 아들 못지않게,

올 한해 딸아이가 어느 때보다 학교생활을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친구 때문이다.

4학년이란 나이답게, 여럿이서 우르르 모여노는 것보다

딸아이는 이제 자기만의 절친과 단둘이, 깊이있는 우정을 나누는 걸 즐긴다.

학년 초부터 한 친구와 눈이 맞았는지, 학교 돌아와서 풀어놓는 수다보따리의 대부분은

그 친구 이야기였다. 친구가 좋아하는 음식, 책, 취미, 교과, 놀이, 옷 색깔 등등

'엄마 걔는 있잖아,,  거북이랑 열대어를 키운대, 살찐다고 고기는 잘 안먹는대,

우리반 남자애들 중에 00를 너무 좋아하는데, 밤마다 꿈에 걔가 나온다네 글쎄 ㅋㅋㅋ...'


뭐 이런 식이다. 그렇게 알콩달콩 우정을 키워가다가

2학기부터는 드디어 서로의 집을 오가면서 노는 사이가 되었다.

학교를 일찍 마치는 수요일마다, 서로의 집을 번갈아가면서 모여 숙제도 같이 하고

간식도 먹고 그 집에서 키우는 동물 구경도 하면서(두 아이의 공통점은 동물을 사랑한다는 점)

짧기만 한 2시간을 불태우며(?) 정열적으로 논다.

아이들이 친한 덕분에, 친구의 엄마와도 인사를 하게 되었고, 가끔 차 한잔 하며

4학년 여자 아이들의 삶과 일상에 대한 수다를 나누며 듣는 이야기와 정보는 무궁무진했다.

머지않아 찾아올지도 모르는 아이들의 첫 생리를 앞두고 겪는

딸 가진 엄마들만의 설레임과 긴장, 불안을 서로 털어놓을 때는

뭔가 알 수 없는 동지애마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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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친구를 통해, 올해 새로 사귄 두 엄마 중 한 사람이
얼마 전에 대만 여행을 다녀왔다.
즐거운 여행이야기와 함께 선물이라며 '파인애플 케잌' 한 상자를 내게 건네주었다.
대만에 가 본 적은 없지만, 파인애플 과자가 맛있다는 소문을 예전부터 듣고있던 터라
한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예상치도 않은 사람에게 받게 되다니!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에서 친구라는 존재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또 그들과 함께 있을 때 보이는 눈빛과 표정이 얼마나 생기있고 빛나는지,
친구들과 충만한 시간을 보내고 난 뒤, 기분이 좋아 흥분된 아이의 모습을 바라볼 때
부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어쩌면, 어른인 나도 가족을 통해 얻을 수 없는 힐링과 공감을
엄마 친구들을 통해 채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피로와 스트레스가 목까지 찼다가도, 마음맞는 엄마와 한 두시간 수다를 실컷 떠는
것만으로도 뭔가 속이 후련하고 가슴 속 응어리가 씻겨내려가는 것 같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릴 때도 그랬고 어른이 된 뒤에 맺게 되는 친구관계가
늘 그리 달콤함만 있는 건 아니다.
둘도 없이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하루아침에 등을 돌리기도 하고,
사소한 오해로 오랫동안 소중히 관계를 가꿔온 친구와 서서히 멀어지는 경우도 많다.
여자들의 관계와 세계는 그만큼 뭔가 디테일하고, 이성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때론 사랑보다 우정이 더 아프다는 걸,
나도 이 나이되도록 수도 없이 끙끙 앓으며 겪어왔다.
아이들도 그런 과정을 앞으로 자주 겪으며 자라날 텐데..
특히 마음이 여린 딸아이를 보고 있으면, 사춘기에 겪을 동성과의 눈에 보이지않는 신경전을
잘 이겨낼 수 있을까, 어릴 때부터 기가 센 친구들 사이에서 마음고생을 자주 했던 아이라
공부보다 친구관계가 더 신경이 쓰이고 걱정이 된다.

그래도 그런 아픔마저도 많이 겪고 부딪히며 자라길 바란다.
많은 친구를 경험해봐야 정말 좋은 친구, 내게 진정한 친구를 알아보는 눈이 생기게 되고
사람의 '진심'을 얻는 것이 그리 쉽고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가게 될 테니까.
아들 친구의 엄마는, 네 아이 중 첫째인 딸이 요즘 한참 친구관계로 고민하는 중학생인데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한다.
"엄마도 '진짜 친구'라는 느낌이 드는 친구를 고등학교 때 가서야 겨우 만날 수 있었어.
좋은 친구를 만난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인 거야. 너도 언젠가는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될 거고, 그땐 정말 그 친구를 소중히 하고 너도 그 얘한테 좋은 친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해."

그 얘길 듣고 나니, 나도 뭔가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좋은 친구가 있다는 건 정말 다행스런 일이지만, 그 엄마 말을 듣고 나니
지금 당장 없다고 해서 그리 조바심낼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와 잘 맞는 친구와 만나게 될 때까지, 좀 다르지만 다양한 친구들을 두루 겪으면서
아이들이 세상 경험을 쌓는 기회로 여기며 천천히 기다려도 좋을 것 같다.

올해 만나 친해진, 두 아이들의 친구와도
내년에 반이 바뀌고 나면 언제 친했냐는 듯이 자연히 멀어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는 이 한때를 행복하게, 찬란하게 빛나게 해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참 고맙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헤어지고 멀어지는 걸 걱정하기 보다
지금 이 순간 함께 있는 시간을 최대한 누리고 나누었으면 좋겠다.

겨울이 점점 더 깊어가는 요즘,
집안에 있어도 얼음처럼 차가워지는 손을
따뜻한 차 한잔으로 데우며, 아이들의 친구 엄마에게서 받은 파인애플 케잌 하나를
먹어본다. <꽃보다 누나>들의 크로아티아 여행이 너무너무 부러운 나는,
파인애플 케잌 맛으로나마 대만을 여행하고 있다.
어쨌든, 이것도 다 "친구" 덕분 아닐까.

때론 우정이 사랑보다 아플 수 있다해도, 삶에 대해 함께 배우고 나누며
마음과 뜻이 통하는 친구들을 앞으로도 많이많이 만나고 싶다.
올 한해, 베이비트리를 통해 만난 새 친구들이 너무 많아
그것만으로도 2013년은 감사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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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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