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는 여행에 미쳐 지냈다. ‘여행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모드로 여행을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모으면 바로 떠났다. 호주, 프랑스, 터키,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몽골, 태국, 중국, 베트남, 일본 등 세계각지를 돌아 다녔고 30세가 되던 해에 우리나라 시골에서 살기로 결정하고 충남 금산에 있는 대안 학교로 내려가 영어 교사로 일을 했다. 거기서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결혼 전에 ‘처녀 최형주 장례 의식’을 치르기 위해 인도의 갠지스 강에 다녀왔다. 지금은 대전에서 120일 정도 된 딸 ‘임최바다’와 함께 어마어마한 육아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
현재 바다를 모유로 키우고 있는데 이렇게 힘이 들 줄 몰랐다. 내 젖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너무나 황당하고 괴로워서 그림과 글로 갈겨 거실 벽에 붙이기 시작한 것이 젖 그림의 시작이었다. 젖 이야기는 출산 직후부터 지금 5개월까지 경험한 여러 에피소드를 그림과 글에 담은 것이며 그 여정과 작업은 계속 되고 있다. 친구 남편이 내가 젖 그림을 그리는 것을 알고 이름을 ‘최 젖’으로 개명하면 더 유명해질 거라고 했는데 그렇게 까지는 하고 싶지 않다.
젖 그림이 난무하는 우리 집에 놀러왔던 만삭의 친구가 젖 그림을 실컷 보고 나서 젖이 도는 느낌이 난다고 하더니 얼마 후 출산을 한 후에 첫째 때는 안 나오던 젖이 그렇게 잘 나온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이렇듯 나의 젖 그림이 많은 엄마들의 젖을 움직여 조금 더 수월한 모유 수유를 하게 된다면 행복하겠고, 모유 수유하느라 애쓰고 있는 엄마들과 공감하며 웃을 수 있다면 기쁘겠고, 모유 수유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엄마들이 추억을 곱씹으며 술 한 잔 하고 싶게 만든다면 고맙겠고, 출산과 모유 수유를 준비 중인 예비 엄마들이 젖 여정의 혹독함을 간파하고 마음을 다잡도록 돕는다면 뿌듯하겠다. 만약 그들이 지레 겁을 먹고 모유 수유를 포기하게 된다하더라도 나에게 책임을 묻지는 말기. 나는 바다 하나만 잘 책임지고 싶다.
특별 작품 1 - 봄 젖
봄 젖
봄 세상에 젖이 내린다.
들판의 씨앗들이 젖을 먹으며
꽃을 틔울 힘을 만든다.
씨앗 같은 바다도 엄마의 봄 젖을 먹고
쑤룩쑤룩 자라고 있는 거... 맞니?
이 그림을 그린 날 나는 방 안에서 한 달 된 딸, 바다를 끌어안고 젖을 먹이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산후조리 한다고 겹쳐 입은 옷 때문에 덥고, 마음대로 잘 안 되는 젖 먹이기에 애가 타서 덥고, 잘 먹고 있는 건지 아픈 데는 없는지 이렇게 울어도 되는 건지 예민하게 바다를 살피느라 더웠다. 내가 좋아하는 봄맞이를 하고 싶었지만 할 정신이 없었다. 지금쯤 초록 잎들이 보일 텐데, 바람이 꽤 부드러울 텐데 하는 생각도 잠시, 나는 또 아픈 젖을 부여잡고 있었다.
바다가 잠 든 늦은 밤에야 봄 생각이 다시 올라왔다. 젖을 먹이면서 볼 수 있는, 나에게 힘을 줄 만한 봄 그림을 그리자! 하는 생각이 들었고 봄을 맞은 온 세상을 내 젖으로 적시는 그림 구상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아이디어를 작은 캔버스에 담아보니 이렇게 그려졌다. 이 그림을 걸어놓고 보며 한동안 힘을 받아 젖을 잘 먹였다.
특별 작품 2 - 춤 젖
춤 젖
후룰룰루 후룰룰루
신선한 엄마 젖이
푸른 바다 안으로
춤을 추며 들어간다.
바다 너도 춤을 추며
젖을 먹어보지 않을래?
촥촥 잘도 나오는 내 젖을 먹고 바다는 배를 불리고, 잠들고, 놀고, 울음을 그친다. 젖이 아프고 젖 먹이기가 고역이지만 이렇게 내 젖으로 살아가는 바다를 바라보며 힘을 낸다. 신나게 춤추듯 뿜어져 나오는 젖처럼 나도 신나게 웃으며 젖을 먹이는 날이 오겠지? 하며 나를 위로한다.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나도 모르겠다. 일단 열심히 물려봐야지 뭐. 출산을 하고 나서는 세상에 수많은 엄마들이 그 엄청난 일을 경험하고도 별 티를 안 내며 살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는데 수유를 하면서는 더 놀라고 있다. 이건 정말 금뱃지 같은 거라도 받아야 되는 거 아닌가? 이런 수고가 어디 있냐 말이다. 내 새끼이긴 하지만 인류 종족의 보존을 위해 하는 수고가 아닌가. 누구도 안 주니까 내가 주는 의미에서 그림을 계속 그려야겠다. 수유 이야기를 기록하고 기억하며 내가 애쓴 것을 알아줘야겠다. 이것이 내가 나에게 주는 금뱃지 같은 것이다. 자, 한번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