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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을 앞둔 7월.

일본에선 엄마로서의 여성의 삶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듯한 드라마들이 시작되고 있다.

사고로 남편을 잃은 20대의 젊은 엄마가 어린 두 아이를 혼자 키워야하는

싱글맘의 현실을 그리고 있는 드라마 <우먼>.

이제 이 세상에 없는 사진 속의 남편을 향해 

"두고봐, 내가 우리 아이들 멋지게 키워낼거니까!" 라 말하며

씩씩하게 싱글맘 생활을 시작하는 주인공 '코하루'는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지만

자주 아픈 아이들을 돌보느라 일터에서도 쉽게 잘리게 되고

주유소로 세탁소로 투잡을 뛰며 벌어도 

매달 생활비와 보육료를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이 드라마는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일본에는 현재 이렇게 엄마 혼자 일과 육아를 감당하는 싱글맘들이

1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들의 평균 연수입은 200만엔 정도에 불과하다.

이 정도 수입으론 아이들을 보육원(어린이집)에 맡기고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빠듯해

한국처럼 가사/육아도우미나 가정보육교사를 들인다는 생각은 꿈도 꿀 수 없다.

 

이건 경제적인 형편이 어려운 싱글맘 뿐 아니라

일본의 보통 직장맘이나 전업맘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보육원이나 유치원같은 시설에 보육료를 내고 아이를 맡기는 것 외에

집에 누군가가 와서 아이를 돌봐주는 시스템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물론 일본에도 베이비시터가 있긴 하지만,

인건비가 비싼 일본은 우리집만을 위해, 우리 아이만을 위해

누군가가 집까지 와서 오랜 시간동안 가사일과 육아를 맡아주는 일은 극히 드물다.

 

육아 뿐 아니라 전문 인력이 개인 집을 방문해 필요한 일을 해결해주는 비용 자체가

워낙 비싸다보니, 일본은 집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가능한 스스로 해결하는 편인데

집안일과 육아도 마찬가지다.

경제적인 형편이 아주, 좀 많이 넉넉한 가정은 도우미를 이용하겠지만

맞벌이를 하고 수입이 어느 정도되는 가정이라 해도 대부분

가사&육아는 부부가 함께 해결하는 게 당연하고 또 그럴수밖에 없는 분위기.

여기에는 경제적인 이유뿐 아니라 낯선 사람이 자신의 집에 오는 걸 꺼리는

일본인들의 정서 탓도 크지 않을까 싶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하는 엄마들의 일상은 어느 나라나 그런 것처럼

아이가 어릴수록 만만치가 않다.

한손엔 유모차를 번쩍 들고 한손으론 둘째아이를 안은 채, 뒤에 따라오는 큰아이에게

빨리!를 외치는 엄마들의 아침은 드라마가 아닌 실제 현실이다.

집안일과 바깥일을 병행해야 하는데 남편과 손발이 잘 맞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일본 아빠들도 회사일에 묶여 집에 없는 시간이 무척 길고

가사와 육아는 여자의 몫이라는 보수적인 생각에 여전히 머물어 있는 남성들이 너무 많다.

한국처럼 친정이나 시댁 부모님의 도움을 가끔 받는 경우도 있지만

일본은 부모자식간에도 자기몫의 일은 자기가 하는 것이 기본이고

결혼을 하고 가정까지 이뤘다면 가사와 육아는

당연히 부부 두 사람이 책임지고 해 나가야한다는 인식이 강하기에

아이가 아플 때나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외엔 마냥 부모에게 의지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일하는 엄마들의 현실이 이렇게 힘들다해도

차라리 일찌감치 아이를 어딘가에 맡길 수 있는 삶을 부러워하는

이들이 있으니 그들은 바로 전업주부.

일본의 보육원(한국의 어린이집)은 취업증명서가 없으면 아이를 맡기기가 어려운데

그만큼 보육원 입원 대기자가 많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대부분 전업주부의 아이들은 유치원을 가게 되는데

아이가 태어나서 유치원을 가는 만3년에서 4년의 시간을 엄마가 돌보게 된다.

엄마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며 애착을 형성하는 좋은 의미도 있지만

이웃과 인간관계가 희박해질대로 희박해진 일본 사회에서

전업맘과  0세-3세의 아이 단 둘이 보내는 24시간은 엄마에게 엄청난 부담이 된다.

그리고 요즘은 전업주부라 해도 완벽한 전업주부는 찾아보기 힘들다.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는 엄마들도 오전만이라도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주말에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일하는 엄마들도 있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적은 수입이라도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일본의 불황이 오래 지속되면서 가계에 도움이 되거나

자신의 용돈이라도 벌거나 단 몇시간이라도 자신의 세계를 갖고자

일을 하는 엄마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육아스트레스가 심각한 사회문제화되고 엄마들의 소리없는 비명이 들려온 지 오래된

일본사회는 몇 년 전부터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빠를 멋진 남성의 이미지로

부각시키는 <이쿠맨>이란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육아의 '육'(育)이란 한자를 일본어로는 '이쿠'라 읽는데서,

그리고 잘생긴 남자를 뜻하는 일본어인 '이케맨'과 발음이 비슷한 점에서,

육아를 즐기고 잘 참여하는 '이쿠맨'아빠들은 여성들의 지지를 한몸에 받게 되었다.

 

연예인 중에서도 아이가 많고 육아경험이 풍부한 남성 연예인들이 큰 인기를 끌게 되고

그들이 방송이나 잡지에서 육아경험담을 이야기하거나 육아관련 프로그램을 맡는 등

일하고 돈을 벌어다 주는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 여기던 예전의 아버지들과는 달리

이젠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는 젊은 아빠가 멋진 남성이 되는

달라진 시대를 보여주는 듯 했다.

정부도 이 <이쿠맨>이미지를 적극 홍보하며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보려 애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업맘이든 직장맘이든, 일본의 엄마들이 이런 남성들의 변화와 정부의 노력에

감동받는 일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일과 육아의 병행, 전업맘의 경우 육아에만 전념한다 해도

엄마인 여성이 혼자 감당해야하는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놀아주거나 집안일을 조금씩 분담한다해도

'육아와 살림은 여성의 일'이라는 일본 남성들의 근본적인 사고에

큰 변화가 없다는 사실도 한 몫하고 있다.

 

한국에 비하면 대체적으로 체계화된 보육시설과 교육내용에

시댁과의 관계도 비교적 자유롭고 간섭받지않는 일본의 엄마들이지만

육아를 둘러싼 남편과 사회에 대해서는

'화가 나는 걸 넘어서 슬플 따름이다'라고 말한다.

그건 아마 우리가 감자나 무우를 키우고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회시스템이 육아를 하기에 최적화되고

일터에서도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환경을 보장받는 날이 온다 해도,

사람을 키우는 일이 그렇게 물만 주고 지켜만 보면 되는 수월한 일이 아니라는 걸

엄마들은 육아를 통해 무섭도록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남편에게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밀린 설거지를 대신 해주거나 청소기를 밀어주는 것보다

지금 아이 앞에 당면한 문제들 - 

아이가 참고 기다려야 하는 순간에 자기 감정을 조절하는 연습 /

자전거의 보조바퀴를 떼고 넘어져도 다시 올라탈 수 있는 용기로의 안내 /

풀기 귀찮은 산수문제가 너의 미래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지혜로운 설명/

우는 아이 앞에서 함께 흔들리지않고 위기를 넘기는 현명함 ... 이런 것들이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집안일을 하고 식구들 시중을 들면서 자신의 일까지 해야하는

엄마들의 가장 큰 부담은 바로 아이들 내면의 성장을 돕는 일 아닐까.

이런 일은 청소기 한번 돌리고 세탁기 한번 돌리는 일과 달라서

그동안 살면서 닦아온 삶의 지혜를 총동원하고 디테일한 육아 스킬로 덤벼들어도

한번에 성공하기 어렵다. 오랜 시간과 노력과 다양한 수법?과 인내의 결과로

겨우 이루어진다. 아이가 보이는 반응과 결과가 항상 성공적이란 법도 없다.

인간 내면의 변화와 성장이 걸린 이런 어렵고도 숭고한 작업에

나와는 다른 비장의 도구를 가진 제2의 손길이 다가온다면 그것만큼

눈물겹도록 감사한 일이 있을까!

내가 남편에게 바라는 아빠로서의 역할은 바로 이런 것이다.

회사일이 아무리 바쁘다해도 이런 육아에 대한 관심은

출퇴근하는 전철 안에서도 잠깐씩 생각하고 궁리하는 것으로도 해결될 수 있다.

마음이 있다면, 진심으로 아이가 변화하고 성장하기 위해 부모로서 무엇을 도와줘야 할 것인가

아내에게 듣거나 코치를 받고나서가 아니라 자신의 '육아 뇌'는 스스로 키워가려는 의지를

가지기를 바라는 것...

 

살림과 일상과 온갖 관계에 치이면서도 무더운 부엌에서 밥을 하는 엄마 곁에서

이유없이 짜증을 부리며 힘들게 하는 아이를 묵묵하고도 멋있게 들춰 안고

"엄마 맛있는 밥 만드는 동안 우리 놀이터 갔다올까??"하며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아이를 꼬시는 아빠.

내 생각이긴 하지만, 일본 엄마들은 자기 대신 밥을 해 주는 아빠보다 이런 아빠를

더 바라고 있진 않을까.

아이를 데리고 나간 남편이 잠시 후에 이런 문자를 보내온다.

"밖에 나오니 너무 신나해서 더 놀리다가 00가 좋아하는 걸로 저녁먹고 들어갈께."

 

뭐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상상속의 시나리오지만... 쩝!

 

 

 

* 사족 . 어제 칠월칠석은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었다.

           견우는 직녀에게 어떤 남자였을까? 뭐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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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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