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선물이에요. 열어 보세요!
아이들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어났다. 호기심에 눈빛이 반짝거렸다.
조금 전까지 힘들어, 배고파, 밥 줘 를 연발하던 투덜이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고분고분해진 아이들이 바나나 잎을 조심스레 벗겨 냈다.
세모난 것에서는 늘 먹던 나시라막이 나왔고 길쭉한 것에서는 처음 보는 떡들이 들어 있었다.
오전에 바닷가와 수영장을 오가며 신 나게 물놀이를 하고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호텔 바로 앞에 큰 푸드코트가 있어서 당연히 그곳에 가면 될 줄 알았는데, 밤늦게까지 들썩이던 푸드코트는 낮 동안 문을 열지 않았다.
큰 길가로 나와 식당을 찾아봤는데 지난밤, 저녁 식사를 팔던 식당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슈퍼마켓이라도 찾아보려고 조그만 골목으로 들어서니 정겨운 복도식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가로운 한낮의 주택가 풍경이 펼쳐졌다. 노인들이 커피와 차를 마시는 카페 노점에 우리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호떡처럼 납작하게 기름에 구운 밀가루 빵(인도에서 난, 차파티라고 부르는데 여기서도 같은 이름으로 부르거나 로티차나이라고도 한다.)을 시키고 좌린이 다른 노점에서 바나나 이파리로 싼 간식거리를 사왔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내어 놓으니 배고픔에, 식당을 찾아 헤매느라 지친 아이들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여행 중에 우리는 되도록 ‘맛집’을 찾지 않는다.
원래 우리의 입맛을 고집하지 않고 되도록 현지인들을 따라하려고 애쓰며 익숙한 것보다는 낯선 것을 추구한다.
지도를 보고 길을 물어 찾아간 맛집에서 그만큼의 수고로움을 보상받지 못하거나 사람들이 좋아요를 꾹꾹 누르는 그곳에서 감흥을 느끼지 못할 때가 많았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 현지인들의 생활 방식은 오랜 세월 이곳의 환경과 기후에 맞게 가다듬어진 것이니! 좌린은 인도에서 한동안 손으로 밥을 먹기도 했다. 인도 사람들처럼 화장실에서 뒤처리하는 왼손과 밥 먹는 오른손을 구별하여.
‘다름’을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낯선 곳을 찾아 떠난 여행길에서 굳이 매일 먹던 한국 음식이나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피자, 스파게티 등을 찾아다닐 이유가 없다.
그리고 이렇게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우연히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할 때의 즐거움이란!
소박한 길거리 식당에서는 나름의 독특한 개성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까페 주인이 힘센 팔뚝으로 능숙하게 반죽을 다루는 솜씨에 반해 난을 세 개나 먹었다.
커리를 끼얹으면 더 맛있다.
꾸이(Kuih)는 길거리 가판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간식, 굽거나 찌거나 튀긴 케잌, 쿠키, 스낵 등을 한데 묶어서 부르는 말이다.
찹쌀떡과 비슷한데 덜 쫀득거리고, 야자 설탕이 들어 있어 무척 달콤했다.
점심을 먹고 주변을 쏘다니다가 과일 가게에 들러 과일을 샀다. 과일 파는 노인이 우리를 보고 조금만 더 가면 대형 할인마트가 있다고, 가는 길을 가르쳐준다. 지난밤에 가봐서 알고 있는데, 우리는 일부러 할인마트 대신 조그만 가게를 찾아왔는데. 냉장고도 없이 겨우 저울 하나와 과일 몇 가지 늘어놓고 파는 허름한 가게의 주인이 관광객에게 악착같이 물건을 팔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할인마트 가는 길을 설명하다니. 그리고 한국은 어떠냐? 우리나라(말레이시아)에서 어딜 다녀 봤냐? 이야기하는데 더 열을 올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뭐 하나 더 팔아 보려 애쓰지 않아도, 식당을 저녁에만 열어도 먹고 살만한가, 이곳 사람들은?
서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며 아등바등 살아가는, 팍팍한 우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24시간 문을 열고 배달까지 해주는 그런 식당은 대한민국에만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도 이렇게 식당이나 가게들이 아침부터 낮까지 또는 오후부터 밤까지 교대로 문을 열면,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도 줄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침에 나가 밤늦게 들어와 잠만 자고 나가는 ‘하숙생’ 남편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답답하다. 일하는 시간을 줄이면, 개인의 삶, 나아가 가족의 삶의 질이 좋아지고 그 속에서 아이들은 더 평화롭고 건강하게 자라지 않을까. 시간을 나눠 교대로 일을 하면 일자리 수가 많아져 고용 문제도 해결 될텐데. 그런데 일을 적게 해서 필요한 생활비를 벌 수 있을까. 주택, 의료, 교육이 보장된다면, 복지가 실현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우리만큼 윤택하지는 않지만, 더 여유롭게 느껴졌다.
상대방에게 이익을 취하기보다 순수한 호기심으로 다가오는 이들의 인정 어린 모습에 마음이 푸근해졌다.
또다시 물속으로 풍덩~.
오후에도 바닷가와 수영장을 오가며 물놀이를 했다.
바닷가 모래밭에 자리를 깔고 누워서 책을 읽다가 수영을 하며 지내는 평화로운 이 시간이야말로 큰 선물이 아닐까.
좌린이 스마트폰에 스피커를 연결해 음악을 틀어줬다.
그동안 쌓인 몸과 마음의 피로가 스르르 빠져나갔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는 나른한 오후의 휴식이 참 달콤했다.
아루는 물놀이에 푹 빠져 물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해람이는 내 옆에서 모래를 만지며 놀았다.
모래에서 꼼지락거리는 해람이 손과 발을 보고 있으려니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모래 놀이는 하는 사람뿐 아니라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편안하게 만든다. 작정하고 뭘 만드는 것도 아닌데, 그냥 만지고 비비고 주무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엄마, 엄마는 스물여덟 살에 자전거 배웠다고 했지? 나는 여섯 살부터 두 발 자전거 탔는데.
엄마는 스무 살에 수영 배웠다고? 나는 일곱 살인데 수영할 줄 안다.
아루가 드디어 보호장구 없이 제 손발을 저어 헤엄을 칠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기쁘고 좋은지, 아주 의기양양하다.
아루 말대로 나는 어른이 될 때까지 운동을 못하고, 안 하고, 몸 쓰는 일이 중요한 줄도 모르고 살았다. 운동 신경이 둔한데다 성격도 소심하여, 운동을 못한다는 생각이 들자 더욱 움츠러들었다. 사실 입시 위주의 학교 교육에서 운동을 못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체육 시간은 거의 자율학습이었는데, 어느 날, 체력장을 앞두고 운동장에 나가 달리기를 한 적이 있다. 가슴이 뻐근해지도록 힘껏 내달리고 나니 후련했다. 답답하던 마음이 시원스레 뚫리는 느낌, 그때 느낀 해방감이 선명하게 오래 남았다. 운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수영을 배웠다.
좌린을 만나 스물여덟 살에 자전거를 배웠다. 나이 들어 배우느라 고생을 했지만, 덕분에 요즘 아이들과 한강, 올림픽 공원을 달리는 즐거움을 누리고 유치원과 학교, 생협 매장, 텃밭 등 웬만한 곳은 차 대신 자전거로 다니고 있다. 이야호!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을 달릴 때의 짜릿함이란!
사실, 좌린에게 배운 것은 어떤 기술이라기보다 즐겁게 노는 것이다. 좌린은 내게 몸으로 노는 재미를 일깨워 주었다. 수영장에서 접영까지 마스터 했는데도 막상 바다에 나가니 파도가 두렵고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 상황이 무서웠다. 어린 시절 바다에서 놀며 헤엄치는 법을 익힌 좌린은 폼나게 팔을 휘두르는 건 못해도 물에서 정말 신 나게 논다. 좌린과 놀다 보니, 저절로 물이 편해지고 몸이 자유로워졌다. 물안경을 내던지고, 수영장에서 배운 고상한 영법 대신, 좌린 따라 물 밖으로 얼굴을 내놓고 개헤엄, 개구리헤엄을 치게 되었다. 발이 닿지 않는 깊은 바다에서 멀리까지 헤엄을 칠 수 있고, 숨을 참고 물속 깊이 들어가는 것도 할 수 있다. 파도가 오면 둥실 몸을 띄워 파도 타는 즐거움도 알고.
아이들에게 자전거와 수영은 일찍부터 가르치고 싶었다. 시간과 목표를 정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놀면서 자연스럽게 몸으로 익히기를 바랐다. 어려서부터 같이 자전거를 탔고, 수영장, 계곡, 바다에 가면 우리가 물속으로 뛰어들어 재밌게 놀면서 아이들을 조금씩 물속으로 끌어들였다. 제 몸이 뜨는 것을 느끼고 팔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여보라고 커다란 튜브에는 태우지 않았다. 발이 닿는 얕은 물에서 시작해서 이제는 두 아이 모두 암링(arm ring) 튜브를 끼면 깊은 곳까지 헤엄칠 수 있다.
아이 스스로 재미를 붙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억지로 가르치거나 어떤 단계를 무리하게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조바심을 드러낸 적도 있다. 재작년에 필리핀에 갔을 때였는데, 바닷속이 무척 아름다워, 아루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각양각색의 산호와 말미잘, 화려함을 뽐내는 물고기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자이언트 클램(대왕 조개)까지! 최고의 스노클링 포인트였다. 닷새 동안 계속 권하고 설득했지만 아루는 끝내 스노클링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조금만 해보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두려움을 이겨내면 엄청나게 멋진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데, 안타까운 마음에 그만 화를 내고 말았다.
좌린은 나보다 느긋하다. “못하겠어? 그럼 하지 마. 나중에 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때 해보자.” 아이가 싫다고 하거나 못하겠다고 하면 더 시키지 않고 쿨하게 받아들인다. 그래 놓고 또 살살 부추겨서 다시 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리고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실은 아주 집요하다. 얕은 물에서 뛰어노는 것으로 시작해 조금씩 깊은 곳으로 이끌었고, 얼굴을 물속에 담그고 조금씩 더 오래 숨 참기를 해보면서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도록 했다. 아루가 제힘으로 헤엄을 치기까지, 좌린이 애를 많이 썼다. 따지고 보면 우리 집 두 여자의 자전거 타기와 물놀이는 모두 좌린 덕분이다. 좌린도 아루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기뻤을 것이다, 오늘.
엄마, 봐! 내가 엄마 있는 데까지 헤엄쳐 갈게.
아루가 조금씩 내게로 다가온다. 아직 온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지만, 표정엔 자신감과 기쁨이 넘친다. 아이의 성장이 기쁘고 감동적인 것은 아이가 성취해낸 결과, 그 때문이 아니라, 옆에서 과정을 지켜보고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일들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가슴이 뭉클했다.
엄마, 봐! 나도 해볼게.
해람이도 덩달아 내게로 향한다. 팔에 튜브를 끼고 있지만, 제법 헤엄치는 자세가 나온다.
내 품으로 달려드는 아이들을 한아름 안는다. 주책없이 또 눈물이 난다. 하루하루 내게 가슴 찡한 감동을 전해주는 이 아이들이야말로 내 생애 최고의 선물임을 깨닫는다.
아루야, 튜브 없이 네 힘으로 헤엄을 치다니, 참 장하다.
필리핀에서 내 욕심 때문에 너를 나무란 것이 오랫동안 후회스럽고 미안했어.
스물여덟 살에 자전거를 배울 때 나는 어땠는지 아니? 아주 완만하고 야트막한 내리막길이었는데, 내려가려니 겁이 나서 그 앞에 서서 엉엉 울었단다. 누가 봐도 쉽게 내려갈 수 있는 완만한 경사였는데, 그걸 알면서도 발이 떨어지질 않더라고. 겨우 그 정도 내리막을 겁내는 내가 한심해서 또 엉엉. 스물여덟 살이나 먹은 어른이, 엄마가 그랬단다.
그랬으면서, 그때의 나보다도 한참 어린 네게 두려움을 극복하라고 다그치다니 참 부끄럽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