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509_1.jpg » 한겨레 자료 이미지. 

결혼을 앞둔 후배가 결혼식 준비 얘기를 하다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민다. 결혼 준비를 하며 모아놓은 두 사람의 어린 시절 사진이 가지런히 들어있다. 둘이 연애하며 찍었던 사진, 결혼 전 으레 찍는 스튜디오 촬영 사진도 있다. 커플의 모습이 귀엽다 생각하던 찰나, ‘아!’ 하는 얕은 탄식을 나는 참지 못한다.

나도 이런 사진 많은데! 나도 그땐 핸드폰에 넣어놨지만 그땐 스마트폰이 아니라 이리 깨끗하진 않았는데! 나도 그 사진들 지금 전화기에 넣어다닐 수 있는데! 문득 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니 죄다 애들 사진이다. 아내 전화기도 그렇다. 아이고! 컴퓨터나 미니홈피 어딘가 고이 모셔져있을 결혼사진과 연애시절 사진을 좀 옮겨놔야겠단 생각이 절로 든다. 나도 이 녀석들마냥 자랑이 하고 싶다.

사진을 보며 희희락락하는 것도 잠시, 결혼 생활이 어떻냐고 묻는다. 미혼들은 늘 그렇다. 결혼이 좋으면 뭐가 좋은지, 나쁘면 뭐가 나쁜지, 그냥 연애만 하고 살면 안 되냐를 말하라 한다. ‘미혼’과 공통의 대화 소재를 찾기가 점점 힘든 ‘유부’는 딱히 할 말이 없다.

곰곰이 생각을 해본다. 결혼은 일생 중에 내 가족을 스스로 고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정말로 신중해야 할 일이다. 그래, 신중하라고 해줄 순 있겠다. 쩝, 너무 뻔하다.

아이는 어쩌라고 해야 하나. 흔히들 신혼은 아이를 낳을 때까지라고들 한다. 돌이켜 보면, 아이가 없는 결혼은 연애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둘만 좋다면 뭐든 할 수 있으니 사실 더 좋았다. 최대한 즐기라고 해야겠다. 즐기다보면 스스로 결혼에 대해 한층 깊이 알게 될테고, 아이가 필요한지 어떤지도 스스로 판단하겠지.

그러다보니 꼭 해줘야 할 얘기가 있다. 부부싸움 얘기다. 같이 살면서 이런저런 다툼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갈등은 오래가면 안 된다. 쌓이면 언젠가는 터진다. 그때그때 풀어야 한다. 부부싸움 해결의 묘안, 짜잔! 싸울 땐 손 잡고 마주앉아 싸우기!

결혼 전 누군가에게 들은 뒤, 우리 부부는 반드시 이를 지키기로 약속했고 지금껏 실천하고 있다. 큰 원칙은 두 가지다. 우선 전화나 문자메시지, PC메신저 등으로는 절대 다투지 않을 것. 둘째, 다툼이 벌어지면 반드시 한곳에 마주앉아 양손을 맞잡고 싸울 것. 전자는 불필요한 오해를 막자는, 후자는 싸울 일이 있어도 마지막 믿음까지 버리진 말자는 취지다.

문제는 후자다. 싸우면서 마주 앉아 손까지 잡는 게 가능할까? 힘든 게 사실이다. 싸움이 벌어지면 꼴도 보기 싫은 게 인지상정이다. 나도 성인군자가 아니다. 말다툼이 붙을 무렵 내 감정도 그리 다르지 않다. 그러나 어쩌랴. 약속은 약속이다. 치솟는 분노를 꾹 누르고 아내에게 말을 꺼낸다. “약속은 지켜야지. 앉자.” 아내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한두번 튕기다가도, 끝내 마주앉는다. 그리고 두 손을 맞잡는다. 서로 할 말을 하려다 갑자기 웃음이 큭큭 나온다. 싸움은 금세 끝난다. 이해의 시간이 시작된다.

이 방식은 우리 결혼 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 해서 다른 분들에게도 널리 알리고 다녔다. 이제는 나처럼 부모가 된 분들과도 나누고픈 조언이 됐다. 부모의 불화는 아이들 마음의 상처가 된다. 싸우다 보면 으레 아이 얘기가 나오니, 아이들은 싸움의 원인이 자기들인가 싶어 죄책감을 가진다. 아닌데, 그건 아닌데, 싸움은 모두 어른들 잘못인데. 그래서 권한다. 최대한 싸우지 않아야겠지만, 불가피하게 싸우더라도 신뢰를 유지하는 ‘손 잡고 싸우기’를 모두에게 권한다.

** 이 글은 월간 육아잡지 <맘&앙팡>(디자인하우스) 2013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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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외현 기자
아이 둘의 아빠인 <한겨레21> 기자. 21세기 인류에게 육아는 남녀 공통의 과제라고 믿는다. 육아휴직 등으로 나름 노력해봤지만 역시 혼자 가능한 일은 아니며,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걸 어렴풋하나마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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