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_0849 (1).JPG 첫째 아이를 키우면서 하는 모든 행위는 부모에게 최초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은 첫째 중심으로 육아를 한다. 모든 것이 서툴고 낯설기 때문에 부모는 첫째 아이에게 유독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둘째 아이를 키울 정도가 되면 긴장감이 슬슬 사라지게 된다. 첫째 때는 이유식을 만들때 개월별로 어떤 재료를 써야 하고 말아야 하는지 신경쓰면서 만든다면, 둘째 키울때쯤이면 대충 감으로 이유식을 만든다. 첫째 아이를 키울 때는 육아서도 열심히 읽고 육아서에서 나오는대로 좋은 엄마가 되려 노력하는데, 둘째 아이를 키울 땐 첫째를 키워본 경험으로 “아이들은 제 스스로 큰다”라고 생각하며 방치하기도 한다. 첫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갈 때는 어린이집 커리큘럼부터 친구관계 등등 신경쓰지만, 둘째가 어린이집 들어가면 으레 자기 스스로 잘 지내리라 믿는다. 이렇게 둘째의 인생은 한편으로는 부모에게 간섭받지 않고 자유롭게 양육되지만 한편으로는 부모의 관심을 첫째에게 뺏긴 채 플러스 알파 인생이 되고 만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만, 우리집 둘째를 보면 부모의 관심을 받기 위한 생존 본능이 뛰어나다. 누나보다 훨씬 애교가 많아 “엄마~ 엄마~”하며 얼굴을 부비벼 내게 뽀뽀 세례를 퍼붓는 것은 기본이고, “엄마~ 내가 말하는 것 듣고 있어!”라고 재차 확인하며 제 말에 귀기울여달라는 의사표현을 할 때가 많다. 잠을 잘 때도 엄마는 자기 옆에서만 자야하고, 누나 옆에 가면 기어코 자기 옆에 올 때까지 잠을 자지 않는다.
 
둘째 아이는 교육방송(EBS)의 ‘모여라 딩동댕’에 나오는 ‘번개맨’을 아직도 좋아한다. 3살 무렵부터 ‘번개 파워~’를 외치더니 아직도 ‘번개맨’을 좋아하고 ‘너잘난 더잘난 체조’도 좋아한다. 지난해 ‘번개맨의 비밀’이라는 뮤지컬도 본 적 있는데, 그 이후로 계속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번개맨 보러 또 가자”고 말했다.

 

그래서 최근 서울 광운대에서 ‘모여라 딩동댕’ 공개방송이 있어 신청을 해서 당첨이 됐다. 마침 그 날은 딸이 어린이집에서 소풍 가는 날이라 아들과 나만 공개방송에 가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아들과 나 단둘이 어디론가 놀러가본 적이 없었다. 항상 누나 친구들과 누나가 노는 자리에 민규는 플러스 알파로 데려갔다. 공연이나 노는 곳도 첫째 중심으로 잡았고, 둘째 친구도 첫째 친구의 동생 들 정도가 다다. 갑자기 그런 생각들이 떠오르니 둘째에게 많이 미안해졌다. 아주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둘째가 한번도 엄마를 독차지해본 적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보니 이번 공연보는 날이 민규와 내가 단둘이 데이트하는 최초의 날이 됐다. 첫째 아이는 친구들끼리의 모임이 많아 단둘이 놀러 간 적이 많은데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갑자기 내 마음이 더 설레었다. 아들과 단둘이 공연보러 가는 기분은 어떨까. 조금만 걸어도 안아달라 보채는 아들이 지하철 타고 버스 타야하는 그 먼길을 잘 갈 수 있을까. 전날 나는 잠을 설쳤다.
 
공연보러 가는 당일 나는 오전에 회사에 나와 일을 하고, 점심때는 우쿨렐레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반차를 내고 부리나케 집으로 가서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던 민규를 데리고 광운대로 향했다. 가는 내내 민규는 긴장했는지 “배가 아프다”고 말해 날 긴장시켰다. 그런데 웬 걸~ 번개맨과 각종 ‘모여라 꿈동산’의 캐릭터들이 나오자 민규는 정신없이 뮤지컬에 빠져들었다. 재밌게 공연을 보는 와중에 민규가 내 귀에 대고 뭐라 속삭였다. 처음에는 못 알아듣고 “뭐라고? 가자고?”라고 물었다. 몇 번 되묻고 민규가 한 말이 “칼”이라는 걸 알게 됐다. 녹화 공연장 앞에 상인들이 팔던 현란한 칼이 민규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민규는 제일 먼저 칼을 파는 가판대로 달려갔다. 버튼을 누르면 반짝반짝 칼날에 불이 들어왔는데, 집에 있는 칼보다 훨씬 화려했다. 평소 ‘한국인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래를 좋아하고, 그 노래에 나오는 <광개토대왕>편의 그림책을 좋아하는 민규는 광개토대왕이 휘두르는 칼에 꽂혔다. 아이들에게 폭력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해 나는 칼이나 총을 사주지 않았는데, 나 몰래 애들 아빠가 칼을 사준 뒤 밤마다 민규는 아빠와 칼싸움을 즐긴다. 남자와 여자의 취향이 다른 것인지, 칼을 휘두르는 또다른 쾌감이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지만, 어쨌든 민규는 새로운 칼을 갖고 싶어했다. 나는 약속한 대로 민규에게 1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칼을 사줬다. 그 뒤로 민규는 기분이 훨훨 날아가듯 좋아했다. 낯설어하던 새 친구와 칼싸움을 하며 친해졌고, 그 뒤부터 계속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차를 가져온 동행인이 집과 가까운 지하철 역까지 데려다줬는데, 민규는 가는 내내 창밖을 보며 쉴새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지하철을 탈 때도, 버스로 탈 때도, 민규는 씩씩하기만 했다. 안아달라고 보채지도 않고, 시종일관 싱글벙글이었다.
 
IMG_1008.JPG » 번개맨 공연

 

아들과의 그날 데이트는 너무 달콤했다. 딸 눈치보지도 않고 맘 놓고 사랑 표현도 하고, 아들과 단둘이 손잡고 걷는 기분은 또 달랐다. 아들 역시 엄마를 독차지했다는 생각때문인지 “엄마~ 누나는 번개맨 안보고 민규만 보러 갔지~그런데 어째 누나는 번개맨 보러 안왔어?”라고 물었다. 자기 혼자만 번개맨을 봤다는 사실 자체를 뿌듯해하는 느낌이었다. 그날 저녁 이후로 아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고 자신감이 더 쑥 올라간 듯하다. 그런 아들 모습을 보면서 가슴 한편이 아리는 느낌을 받았다. 아들의 달라진 모습을 보면서 다짐한다. 정기적으로 꼭 첫째하고만의 시간, 둘째하고만의 시간을 만들겠다고. 그리고 속으로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둘째야, 너는 플러스 알파 인생이 아니야. 네 모습 온전히 엄마는 사랑해."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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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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