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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일상생활에 자전거는 필수품이다.

 뒤에 어린이용 보조의자가 달린 자전거로 매일 유치원에 데려다준다>

 

 

 

나는 아침에 늘 약하다.

저혈압인 사람들이 아침에 잘 못 일어난다고 그러던데 내가 딱 그렇다.

밤에 일찍 자는 것과 상관없이 일어난 직후 1시간 쯤은 늘 힘들었다.

 

그나마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연습이 되어선지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카페인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여전히 피곤하다.

그래서 아파트에 살 땐 큰아이 밥만 얼른 차려주고 현관에서 다녀와! 한 뒤,

둘째 유치원 갈 준비를 후닥닥 해서 아파트 입구까지 오는 버스를 태워보내면

집안에서 내 일을 하는 식이었다.

 

거의 도어투도어 일상인 셈이다.

그게 편했고 집에서 일을 해야 하니, 잠깐의 시간도 아쉬운 나는

그게 나에겐 딱 맞는 방식이라 여겼다.

 

그런데, 주택으로 이사를 하고 나니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았다.

그 많은 일 중에 아침이 이전보다 2배는 바빠졌다.

큰아이가 새 동네에서 등교반 반장(일본 초등학교는 안전 때문에 집단등교를 한다)이

되는 바람에(반장 학부모가 인솔을 책임진다)

7시40분이면 10명 정도되는 아이들을 인솔해 학교까지 다녀와야 했다.

새학기 초기 아이들이 적응할 때까지만 잠깐 하는거지만,

그래도 둘째를 데리고 하는 일이라 쉽지 않았다.

 

거기다 이번에 이사를 오면서

둘째는 유치원 버스를 취소하고 내가 직접 데려다 주기로 해서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자전거에 태워 유치원으로 또 달려야 한다는 사실.

집이 바뀌면서 유치원 버스가 서는 곳이 어중간한 데다가

이참에 버스비(일본 유치원은 한달 회비와 별도로 5만원 정도 버스비를 낸다)도

절약해 볼까 해서 자전거 통원을 시도해 보았다.

실제로 일본 엄마들은 자전거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데려다 주는 경우가 많다.

둘째까지 데려다주고 오면 9시 가까운 시간이 되는데

현관문을 따고 집안에 들어설 때

나는 이미 하루에 쓸 체력을 다 쓴 느낌이었다.

 

새 집을 즐기고 어쩌고 할 새도 없이

몇 시간 지나면 또 데리러 가야한다.

(일본 유치원은 2시에 마친다.그래서 가끔 엄마들은 울상이다^^)

아... 버스태워 보낼 때는 얼마나 쾌적하고 간편한 일상이었나..

집에서 타는 곳까지 좀 걷더라도 다시 버스를 태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자전거 페달을 밟는데

이 일도 몇 주 하고 나니, 웬일? 슬슬 적응이 되는 거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마당을 내다보며 식구들이랑 아침을 먹고

등교반 엄마들과 매일같이 만나니 동네 정보를 나누며 빨리 친해졌고

아이 얘기만 듣던 등교길을 나도 함께 걸어보니

아이들이 아침에 학교가며 이런 기분이구나.. 하는 걸 체감할 수 있는데다

어린 둘째에게 매여있는 탓에 큰아이랑 이야기나눌 시간이 늘 부족했는데

아침에 함께 걸으며 잠깐씩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참 좋았다.

 

어머, 저 가게는 이 시간에 벌써 문을 여네?!

엄마, 몰랐어? 저 가게 아줌마 되게 부지런하셔.

 

이런 식으로.

그리고 둘째 아이도 엄마 뒤에 자전거 타고 가는 게 신난지

스스로 옷 갈아입고 준비하는 시간도 빨라졌다.

늘 정해져 있던 버스시간과 상관없이 내가 가고싶은 시간에 갈 수 있으니

오늘은 일찍 가서 우리 1등할까? 이런 것도 가능하고

무엇보다 자전거 타고 가면서 아이랑 나누는 대화가 너무 즐겁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자전거에서 잠깐 내려 민들레도 실컷 구경하고 씨도 후 하고 불며 날려보고

하는데 처음엔 '아휴.. 좀 빨리 가자. 엄마 집에 가서 할 일 많단 말야..'

그랬는데 그런 마음을 좀 포기하고 나니

이젠 내가 더 즐기고 있다.

유치원과 집 중간에 있는 누나 학교 앞에서 급식실에서 풍겨오는 냄새를

킁킁 맡으며 아이랑 오늘은 무슨 메뉴일까 맞춰보기도 하고

(누나가 집에 돌아오면 둘째가 이렇게 묻곤 한다.

  "누나 오늘 급식 스파게티였지? 나도 먹고 싶었는데..")

작은 빵집에 들러 빵을 골라 사오기도 하고

어제와는 다른 길로 돌아 달리면서 꽃집을 새로 발견하기도 하고...

 

내일은 또 저쪽 안 가보던 골목으로 돌아서 가봐야지.

그렇게...

차가 아닌 자전거여서 가능한 일들이 이렇게 많구나 새삼 깨닫게 된다.

조금 돌아가며 지금 당장은 시간낭비를 하는 것 같지만

천천히 흐르는 시간을 즐기면서 오히려 얻는 것도 많다는 걸

요즘 느끼고 있다.

버스타기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계속 이 일을 해나갈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차를 타지않고 자전거를 타는 일상에서 더 풍성한

이야기들을 경험한다는 것 만큼은 분명하다.

 

2배로 바빠진 아침 덕분에 살도 조금씩 빠지고 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몸을 쓰다보니 정신도 더 맑아지는 기분이다.

아직 변화된 일상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사면에 다 창이 있는 주택처럼 내 몸의 여러 곳도 그동안 닫혀있던

창이 열린 기분이랄까. 아무튼 몸은 힘들지만 사는 맛이 난다.

 

이제 가끔은 자전거도 그냥 세워두고

아이랑 오랫동안 걸어보는 것도 이번 봄에는 시도해 봐야겠다.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상황과 환경이 있다는 것,

그런 변화와 자극이 때론 우리의 일상을 더 긴장시키고 싱싱하게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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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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