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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jpg » 도복 입은 딸과 아들 선생님과의 통화를 끝낸 뒤 마음이 심난하기만 했다. 육아도우미 문제로 신경이 예민해져 있던 상황에서, 딸의 태권도 문제까지 겹치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선생님 말을 곱씹고 곱씹어봤지만, 태권도 학원에 보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나는 어떤 문제가 터지면 혼자서 문제를 안고 골몰하는 타입은 아니다. 가깝고 믿을만한 지인에게 조언을 구하는 편이다. 조언을 구하는 과정에서 내 스스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도 하고, 지인들이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해결책을 내놓기 때문이다. 이번 태권도 문제도 같은 도장에 보내는 엄마들에게 에스오에스(SOS)를 보냈다. 00엄마와 △△엄마는 먼저 내가 받았을 충격에 공감해주고, 밤 늦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카카오톡으로 진지한 상담을 해주었다.
 
엄마들과 상담하는 과정에서 엄마들의 의견도 엇갈렸다.

 

한 엄마는 원장 선생님이 이미 딸에 대해 적응할 수 없다고 판단을 한 상황에서 괜히 태권도 학원에 보내 다시 부정적인 경험을 하게 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이었다. 태권도를 영영 싫어하게 만들 수 있으니 보내지 않는 것이 낫다는 의견이었다. 다른 학원을 알아보거나, 아예 시간을 두고 나중에 다시 시도를 해보는 것이 더 낫겠다는 의견이었다.
  
또다른 엄마는 태권도를 계속 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처음 뭔가를 시도했다가 겁 먹고 처음부터 뭔가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과연 아이에게 좋겠냐는 의견이었다. 이 엄마는 내게 “처음에 도장을 보낼 때 친구들과 함께 시작하고, 적어도 몇 번 정도는 엄마가 같이 따라가서 지켜봐주었다면 이렇게 민지가 첫 날부터 태권도에 대해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엄마는 또 “민지는 어린이집 처음 적응할 때도 다른 아이들보다 적응하는 속도가 늦은 편이었다. 평소 그런 민지의 기질과 특성을 고려한다면 앞으로도 학원을 보내거나 뭔가를 새로 경험하게 할 때 친구들과 함께 하는 등 좀 더 부모의 섬세한 배려가 필요할 것 같다.”고 조언했다. 또 이 엄마는 내게 “민지가 4살 때보다 5살 때 표정도 어둡고 활발한 모습이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도 전했다.  

 

아뿔사! 엄마들의 냉철한 분석과 아이에 대한 객관적인 이야기를 듣고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딸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다른 사람들보다도 민지에 대해 잘 모르고 있거나 너무 무신경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저 아이들을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놀아줄줄만 알았지 아이 생활에 대한 섬세한 배려를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갑자기 많은 것이 후회됐다.
 
‘왜 그렇게 속사포로 결정해서 덩그러니 아이만 혼자 보냈나. 아직 만 4살밖에 안 된 아이인데 낯선 환경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친구들과 함께 운동을 시작할 수도 있었는데... 적어도 첫날은 내가 밖에서 운동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아이가 낯선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줬어야 했는데…. 이러다 운동 자체를 싫어하게 되면 어쩌나…’
 
그러나 이미 사건은 벌어졌고, 나는 뭔가 선택을 해야했다. 언제나 그렇듯 선택은 어렵다. 엄마들의 의견까지 엇갈리니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한참을 어떻게 할 지 망설이는데, 구세주 같은 엄마들이 내게 이런 제안을 한다.
 
“언니~ 그럼 민지한테 OO이랑 △△이가 태권도 가는 날이라 하고 한 번만 더 가보자고 해보는 것은 어때요? 만약 하고 싶으면 들어가서 운동하고, 안하고 싶으면 나중에 해도 되니 밖에서 그냥 친구들 운동하는 것 보기만 하는거죠. 다만 여기서 우리가 중시해야 할 것은 ‘태권도가 무섭고 재미없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민지에게 알려주고, 민지가 나중에 태권도 하고 싶다고 하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하는 거예요. 만약 바로 친구들과 함께 운동하겠다고 하면 더 좋고요. 우리 두 엄마도 민지랑 함께 한다고 말해주세요. 아예 하원할 때부터 친구들이랑 같이 있다가 같이 가면 거부감이 덜할 거예요. 민지가 우리들 좋아하잖아요. 호호호.”
 
아~ 이런 천사들이 있을까. 나는 정말 너무 고마워 눈물이 나올 뻔했다. 이렇게 자기 아이 생각하듯 해주니 갑자기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 언젠가 내 육아기에 직장맘과 동행해주는 전업맘들이 정말 든든하다고 썼었는데, 이번에도 두 전업맘이 또다시 나의 육아 동행자가 돼주었다. 두 사람의 제안으로 나도 용기를 얻어 민지에게 제안을 했다. 민지는 계속 울면서 태권도 얘기만 꺼내도 싫어했다. 나는 딸을 계속 설득하고 설득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이런 얘기도 했다.

“민지야, 엄마가 민지에게 태권도를 강요하는 것은 아니야. 다만 엄마는 민지가 어떤 것을 처음 시도했는데, 첫 느낌이 안좋다고 해서 그냥 안하는 게 걱정되서 그러는 거야. 혹시 민지가 처음 느낀 그 감정이 계속되지 않을 수도 있거든. 엄마 절대 강요 안해. 민지가 안하고 싶다고 하면 안하는거야. 그런데 민지가 태권도 학원은 무섭고 재미없다고 섣불리 생각할까봐 그러는거야. 그냥 우리 OO이랑 △△이가 어떻게 운동하는지 함께 보자. 엄마도 OO엄마도 △△엄마도 민지 옆에 함께 있을거야. 그러니까 절대 겁내지 않아도 돼.”
 
한참을 얘기하고 나서야 민지는 “엄마, 나 도복은 안입을거야. 그냥 밖에서만 지켜볼거야”라고 말했다. 휴~. 그래도 아예 안가겠다고 하지 않는게 어디인가.
 
다음날 세 엄마는 어린이집 앞에서 만나 아이 셋과 함께 걸어왔다. 집에 가는 길에 맛있는 붕어빵도 사먹으면서 기분 좋은 시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태권도 학원에 갈 시간이 돼 아이 셋과 엄마 셋은 함께 태권도 도장에 갔다.
 
OO이와 △△이는 남자 아이들인데 아주 씩씩하게 운동을 했다. 민지는 예상대로 밖에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태권도 얘기만 꺼내도 눈물을 줄줄 흘렀던 민지가 친구들이 운동하는 것을 보면서 키득키득 웃었다. 친구들이 발차기를 하거나 뛰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다. 그런 민지의 모습을 세 엄마는 그저 지켜봐주며 함께 있었다. 40분이라는 시간은 더디지만 흘러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민지에게 다시 물었다.
 
“민지야, 어때? 태권도가 꼭 무섭고 재미없는 것은 아니지? OO이와 △△이랑 함께 운동하면 재밌을 것 같지 않아?”

그러자 민지는 바로 “아니~ 태권도가 무서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은 드는데 나는 안할래. 나는 재즈댄스가 좋아. 원에서 하는 재즈댄스 할래~”라고 말한다.

 

그렇게 감정 소모를 하고도 나는 태권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아이를 존중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행복하게 살도록 돕겠다고 하면서, 어느새 나는 또 내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노’라고 강하게 거절할 수 있는 아이가 차라리 고마웠다. 아예 대안까지 제시하지 않았나, 재즈댄스 하겠다고. 아이에게 운동을 꼭 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데, 태권도만 운동은 아니지 않은가. 재즈댄스도 운동이고, 신체활동이지 않은가. 자꾸 태권도에 대해 집착하는 내 자신이 오히려 웃겼다. 본말이 전도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 시키려다 운동을 아예 싫어하는 아이로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이후 민지는 원에서 하는 특별활동인 재즈댄스를 신청해 지금까지 즐겁게 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의 태권도에 대한 미련은 여전하다. 태권도를 하지 않지만 도복만 사다가 민지와 민규에게 입히고 티비에서 나오는 태권도 동작이라도 따라하라고 할 정도다. 민규는 도복을 입고 ‘태권도!’라고 소리지르는 것을 좋아한다. 딸이 태권도라도 배워야 험한 세상에서 자기를 방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때문인 것 같다. 민지가 재즈댄스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릴 때 즈음 단짝 친구 호정이와 함께 태권도에 보내리라 계획하고 있다. 과연 민지가 언젠가는 태권도를 배우겠다고 나설까? 딸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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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블로그 : http://plug.hani.co.kr/anma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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