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평화시장.jpg

 

나 혼자서 토요일 오전 8시 반에 집을 나섰다.

애 셋 몽땅 놔두고 주말 오전에 혼자 하는 외출은 결혼 11년 만에 처음이었다.

목적지는 동대문 평화시장... 그렇다. 나는 봄 옷을 사러 쇼핑에 나선 것이다!!!

 

동네에 잘 알고 지내는 큰 아이 친구 엄마가 있다. 그녀는 가끔 동대문 시장에 가서

옷을 사 온다며, 늘 입을 옷이 없다고 불평하는 내게 같이 가자고 권하곤 했다.

그러나 젖을 떼지 않은 막내와 엄마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 가겠다고 나서는 둘째가

있어 나 혼자 외출은 꿈도 꾸지 못했다.

 

상황이 변한 것은 얼마전에 막내가 젖을 뗀 다음부터였다.

젖에서 떨어지자 엄마에게 집착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덜해졌다.

아빠가 있으면 내가 한나절을 외출해도 상관없었다.

둘째도 조금씩 내 외출을 받아들여 주었다.

 

그리하여 지난 토요일, 나는 처음으로 모든 아이들을 떼어 놓고 순전히 옷을 사기 위한

외출에 나설 수 있었다. 물론 나오기 전에 남편과 아이들 먹을 아침 밥을 차려 놓아야 했지만

정작 나는 설레어서 아침밥도 들어가지 않았다.

 

결혼 11년째 세 아이들 키우면서 제일 힘든것이 옷 사는 일이었다.

품에서 떨어지지 않는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는 생필품 사는 일도 쉽지 않은데

한참을 돌아다니며 골라야 하는 옷은 정말 사기 어려웠다.

맘에 드는 가게에서 5분만 서성이면 아이들은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온 가족이 함께 쇼핑을 가도 옷 고르기는 쉽지 않았다. 아이들과 남편까지

지루해 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급해져서 '다음에 살래' 하며 나오기 일쑤였다.

 

친정 자매들은 인터넷으로 옷도 잘들 사곤 했지만 내겐 이마저도 어려웠다.

인터넷 쇼핑이란것이 자주 들락거리고 여기저기 서핑을 해 봐야 감이 오는데

컴퓨터만 열면 애들이 매달렸다. 애들과 씨름하며 블로그하고 글 쓰는 것도

쉽지 않은데 인터넷으로 쇼핑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결혼 기간 내내 나는 주로 대형 마트에서 그때 그때 빨리 눈에 띄는

옷을 사거나 자매들이 산 옷을 얻어 입거나, 어쩌다 옷을 사러 가도 오래

고민 못 하고 서둘러 산 옷을 걸치고 다녔다. 물론 계속 수유를 하고 있었기에

고를 수 있는 옷의 종류도 한정적이었다. 젖만 떼면, 아이들이 내 손을 좀 덜타면

자유롭게 옷 사러 다니리라... 고대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맞이한 마흔 네 살의 봄, 동네 엄마와 함께 동대문까지 옷쇼핑을 하러

가게 되었으니 얼마나 날아갈 듯 설레던지...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차려 놓은 후 기쁜 맘으로 집을 나섰던 것이다.

양 옆에 손 잡은 아이들 없이 맘대로 뛰고 걸으며 다니는 길은 달콤했다.

동대문까지 서서 가도 다리 아픈 줄 몰랐다.

11년 만에 찾은 동대문 평화 시장 옷가게들은 황홀했다. 사방에 걸려 있는

멋들어진 옷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시어머니에게 받았던

세뱃돈과 원고료를 챙겨 왔던 나는 행복에 불타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딸린 애들도 없겠다, 눈치 주는 남편도 없겠다, 그저 행복하고 신이 났다.

이 옷도 입어 보고, 저 옷도 입어 보고, 애 셋 낳은 엄마가 몸매도 좋다는

장삿꾼들의 말이 그저 하는 말인줄 알면서도  헤픈 웃음을 흘려가며

맘 놓고 옷 고르는 행복에 취해 있었다.

 

아아아.. 돈 버는 재미도 좋지만, 돈 쓰는 재미는 어찌나 달콤하던지...

 

바지 몇 벌에 웃옷 두 세벌 골랐더니 순식간에 20여 만원이 날라갔다.

이 옷을 사고 보니 저 옷도 눈에 띄고, 맘에 드는 스카프도 어찌나 많던지,

세일하는 겨울옷들도 놓치기 아깝고, 미리 나온 여름 신상은 또 얼마나 근사하던지..

정말이지 옆에서 이젠 가야한다고 잡아 끄는 동네 엄마가 아니었다면

나는 하루 종일이라도 옷가게들을 걸어다니며  현금서비스 받아가며

지르고 또 질렀을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양 손에는 그득 옷가방들이 들려 있고 아침도 거르고 온

뱃속은 점심 먹을 시간이 지났음을 맹렬하게 알리고 있었다.

돌아오는 전철안에서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에고... 이게 아니었는데..

애초에 필요한 건 봄에서 초여름까지 위에 걸칠만한 외투와 구두였는데...

바지를 왜 이렇게 많이 샀을까.

사온 옷들을 집에 와서 찬찬히 펴 보니 이전에 입던 것들과 똑같은

스타일이었다. 이런, 이런...

 

그저 분위기에 취해서, 자유에 취해서 아무 생각없이 눈에 띄는 대로

입어보고, 구입하고 보니 정작 제일 필요한 아이템들은 잊어 버리고

비슷한 옷만 잔뜩 사 버린 것이다.

 

도매시장에 갈 수 록 미리 어떤 옷이 필요한지 계획을 세우고

옷장안에 어떤 옷들이 있는지 확인도 하고, 꼭 필요한 옷들만 구입해야 하는데

시내보다 싸다고, 미리 사두는게 아끼는 거라는 생각에 휩쓸려서 충동적으로

돈을 쓰고 말았다. 정작 사야 할 것은 사지도 못한체...

동대문에서 사온 멋들어진 옷을 입고 위에는 겨울 스웨터를 걸치게 생겼다.

 도대체 얼마를 쓰고 왔느냐고 남편은 내게 묻지 않았지만 사온 옷들은

재빨리 옷장 안으로 감춰 버렸다. 조금 부끄러웠다.

 

옷도 계절마다 꾸준히 조금씩 구입해야 유행도 알고, 내게 맞는 옷을 고르는

안목도 생기는데 너무 오래 억눌렀던 자유를 한번에 얻고 보니 그런 요령과

안목이 내게 있을리 없다. 이제부터라도 패션에 관심을 두고 조금 더 자주

혼자 누리는 외출을 통해 내 나이와 용도에 맞는 제대로 된 옷들을 구입해야지..

다시 결심 했다.

 

그래도, 그래도 언제 그 시간이 흘러 이런 자유를 누리게 되었는지 감개무량하다.

이번엔 옷이었지만 다음엔 보고 싶은 영화 한 편 보러 나갈 수 도 있겠지..

나에게 1박 2일의 휴가를 줄 날도 머지 않았다. 그동안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 조금씩 나만의 시간을, 나만의 취미와, 나만의 욕구를 돌아보고 보살펴야지.

당분간 시행착오도 있겠지만 자유를 얻는 일은 본래 그런 것.

처음부터 완전할 수 는 없는 법..

 

적지않은 수업료를 지불한다 하더라도 그래도 이제부턴 자유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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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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