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jpg » 도복을 입은 아이들. 딸은 도복을 입어도 청초하고, 아들은 그저 신난 모습이다. “언니~ oo이랑 △△이랑 이번 달부터 태권도 다니고 있어. 일주일에 세번 해. 축구도 시작했어~ 남자애들이라 그런지 아니면 운동하면서 에너지 발산을 할 수 있어 그런지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 처음에는 망설였는데,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같은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6살이 되면서 주변 엄마들이 부쩍 아이들의 운동이나 신체 활동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나보다 한 두 해 먼저 아이를 낳은 선배들도 6살 무렵부터 태권도를 가르쳤다. 선배들은 다소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던 아이들이 태권도를 하면서 좀 더 씩씩해지고 밝아졌다고 말했다. 또 요즘 태권도 학원에서는 태권도를 집중적으로 가르치기보다 줄넘기나 뜀틀 운동 등 다양한 생활 체육을 가르치니 신체 활동을 한다는 의미에서 태권도를 적극 권했다. 딸이 6살이 되니 나도 슬슬 아이를 태권도 학원에 보내야하나 고민이 됐다. 더군다나 딸 아이를 키우기 워낙 불안한 세상이라 딸에게 앞으로 꾸준히 자기를 방어할 수 있는 태권도나 합기도 같은 운동을 시키겠다는 생각을 하던 터였다.
 
마침 육아도우미(베이비시터) 문제로 회사에 휴가를 내야했던 지난 2월 말, 나는 속사포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친구들이 다닌다는 태권도 학원에 가서 상담을 했다. 사범님 인상도 나쁘지 않고, 여자 사범님도 있어 안심이 됐다. 가서 보니 기본적인 신체 운동을 하고, 요일별로 프로그램이 달랐는데 웅변을 하는 날도 있었다. 약간 수줍음을 타고 5살이 되면서 다소 내성적인 면모를 보인 딸에게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렸을 적 나도 다소 성격이 내성적이었는데, 친정엄마가 웅변을 시키면서 좀 더 활달해지고 남들 앞에서 이야기를 잘 하게 됐던 경험이 있다. 신체활동과 웅변은 내가 원하던 딱 그 조합이었다. 한 달 9만원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았다. 그래서 딸에게 물었다.
 
“민지야, oo이랑 △△이 태권도 한다는 얘기 들었어? 민지도 해보는 게 어때?”
“응. 좋아. 엄마~ 나도 하고 싶어. 친구들이 재밌다고 했어.”
“그래, 그럼 엄마 있을 때 바로 내일부터 시작하자~”
 
그렇게 나는 쉽게 결정했고 다음날 아이는 태권도에 대한 첫 경혐을 할 수 있게 됐다. 민지는 어린이집에서 돌아와 도복으로 갈아입고 태권도 학원차를 탔다. 당연히 친구인 oo이와 △△가 학원에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아이를 태권도 학원에 보내고 난 뒤 나는 아이가 잘 적응하리라 믿었다. 그러면서 은근히 ‘얍!’하고 큰 소리로 기합을 넣으며 태권도 동작을 하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런데 웬 걸…. 그날 아이는 돌아와서 울면서 “태권도 안하고 싶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고, 저녁에는 학원 원장님이 전화를 해서 이런 말을 했다. 
 
“어머님, 아무래도 따님은 아직 아닌 것 같아요. 적응 못 할 것 같습니다. 다음 기회에 보내시죠.”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오늘 처음 수업을 들었는데 오늘 하루 아이를 보시고 앞으로 계속 적응 못 하실 거라고 판단하시는 거예요?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아이에게 몇 번의 기회를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제 경험상 민지같은 아이는 계속 시켜도 수업 제대로 못합니다. 아직 만 4살이고 그렇게 서두르실 필요 없어요. 오늘 민지 계속 수업시간 내내 울고 앉아만 있었습니다. 여자애라서 제가 더 걱정이 됩니다. 이렇게 억지로 운동시키면 아이가 운동 자체를 싫어할 수 있어요. 그럴 필요 있나요? 그리고 선생님들이 민지만 개인지도 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됩니다. 민지가 계속 울고 시무룩하게 앉아 있으면 다른 아이들 수업까지 방해됩니다. 그런 부분도 이해해주세요. 지금 운동 안시키셔도 됩니다. 아이가 원할 때 시키세요.”
 
선생님의 설명은 어느정도 타당했으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뭔지 모를 분노의 감정이 솟구쳤다. 아마도 아이가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했는데 처음 시작이 너무 힘들어서 부정적 감정을 내비쳤다는 이유로 배제당하고 포기를 강요받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특히 원장님이 말한 ‘적응을 못 할 것 같다’는 말을 마치 ‘우리 아이는 부적응자이며 무능력자’라는 의미로 내가 받아들였던 것 같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나는 거의 원장님과 싸울 태세로 대화를 이어갔다.
 
“원장님의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가르치는 교육자분께서 그렇게 쉽게 한 아이에 대해 판단하신다는 점에서 저는 화가 납니다. 저는 딸이 이렇게 처음으로 뭔가를 시도했는데 쉽게 포기하도록 만드는 게 교육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태권도에 대한 이런 경험때문에  앞으로 저희 딸은 처음에 힘들고 어려워 보이는 것은 쉽게 포기한다고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오늘은 oo이와 △△이도 수업을 듣는 날이 아니라면서요. 친구들과 수업을 같이 들으면 훨씬 잘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희 딸에게 몇 번 기회를 주고 그래도 아이가 힘들어한다 싶으면 그때 그만둬도 늦지 않을까요? 너무 수업의 효율적 운영만 생각하시는 거 아닙니까?”
 
내가 아무리 이런 얘기를 해도 원장님은 “내 경험상 적응 불가능하다. 억지로 시킬 필요없다.”는 입장을 견고하게 유지했다. 한참을 옥신각신하다 결국 선생님은 내게 “어머님 뜻이 정 그렇다면 한 두 번 정도 더 수업을 들어보는데, 따님에게 특별히 더 세심하게 신경을 써줄 수 없는 점은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때부터 나의 고민은 또다시 시작됐다. (다음 육아기에 계속)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후편) 태권도와 재즈댄스, 엄마 욕심 아이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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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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