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평 용문사 템플스테이에서 만난 ‘뽕잎밥 상차림’.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설연휴 사찰여행
쉬고 먹고 생각하는 새해맞이 위해 다양한 설연휴 프로그램 준비한 템플스테이 사찰

우리나라에서 불교는 종교라기보다 전통문화의 한 자락이다. 사찰은 문화재의 보물창고이면서 만인의 기도처이자 유유자적 산천 유람의 필수 코스이고, 휴식과 재충전을 위한 피난처이기도 했다. 절집은 불교와 민간신앙이 뒤섞인 공간이다. 부처님도 있고 산신령도 있고 단군 할아버지도 있다. 백성들이 부처를 믿건, 산신을 믿건, 성황목을 믿건 누구든 드나들며 자식을 위해, 가족을 위해 빌고 또 빌던 곳이다. 마음 새로이 다스려 민족 명절 설을 맞이하려는 건 스님이나 서민이나 마찬가지다.

용문사 은행나무 앞에 내걸린 소원지들.
건강과 휴식, 힐링에 관심이 높은 요즘 백성들은 이제 여행지를 골라도 푹 쉬면서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장소와 일정을 선택한다. 깊은 산속 절집이 특별한 휴식처로 떠오르는 건 그래서 당연해 보인다. 나뭇잎들 벗어버린 숲에 눈 내려 눈부시게 투명해진 자리. 늦겨울로 접어들며 한결 고요해진 절간에서 요즘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나오고 있다.

민족의 명절 설을 앞두고 설맞이 템플스테이를 준비하는 사찰들이 많다. 모든 욕심 벗어 내려놓고 쉬면서 몸이 거뜬해지면, 다시금 가장 먼저 솟아나는 게 식욕일 터다. 긴 설 연휴 중 1박2일쯤, 맛있는 절집을 찾아 쉬고 먹고 생각하는 여행을 떠나볼 만하다.

깊은 산속에 숨어 있던 절들이 격식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먹고(전통 사찰음식) 마시고(차) 즐기는(윷놀이 등 게임) 대중친화적 설맞이 프로그램들을 준비하고 체험객들을 기다린다. 설 연휴에 설맞이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 사찰을 찾는다면, 집에서처럼 떡국 먹고, 차례 올리고, 세배하고, 소원 빌고, 퀴즈 풀고, 제기차기에 윷놀이판까지 펼치며 흥겨운 명절을 지낼 수 있다. 물론, 사찰의 기본예절은 밑바탕에 깔고 말이다.

용문사 템플스테이
뽕잎밥 만들어 먹기 체험
백련사, 골굴사, 수덕사 등
합동 차례상 차려내고
직접 떡 썰고 만두 빚는 행사 마련

사찰음식 만들기 체험하며 ‘참나’ 찾는 용문사

지난 주말 “몸에 좋고 맛있는 특별한 음식 만들기 체험”을 곁들여 템플스테이를 진행한다는 경기도 양평 용문산의 고찰 용문사를 찾았다. 평일에도 주말에도, 이번 설 연휴에도 ‘뽕잎밥 만들어 먹기 체험’과 ‘참나무 심기’(참나는 무엇인가를 찾고 가슴에 심는 체험)를 내걸고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 곳이다.

타종 체험.
20대부터 60대까지 부부·가족·동료 단위로 찾아온 28명의 참가자들은 1박2일(토~일) 동안 예불체험·타종체험·운력(울력)체험, 천년 은행나무 앞에 소원지 걸기, 스님과의 차담에 이어 뽕잎밥 만들어 먹기까지, 배우고 즐기는 가운데 ‘참나무’를 찾아내 가슴에 심었다.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나를 드러내, 괴로움을 나누고 위로받으며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차담이나 음식 만들기도 참나를 찾아가는 방법 중 하나지요.” 용문사 템플스테이 총괄 진각 스님은 “매주 소원·분노·욕망·관계 등 네 가지 주제를 내걸고 참나를 찾아보는 시간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용문사 템플스테이 ‘뽕잎밥 만들어 먹기 체험’에 참가한 가족.
부부·동료 참가자들에게 인상 깊었던 프로그램은 저녁 예불 뒤 진행된 ‘소원’을 주제로 한 ‘참나무 심기’ 시간이었다. 회사 동료 2명과 함께 참가한 40대 남성은 “평소 소원이 많았지만 진짜 바라는 게 뭔지 몰랐었다”며 “덜 중요한 것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며 찾은 결과, 내 일(사진)에 ‘넓기보다는 더 깊어질 수 있게 해달라’는 것으로 정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자녀를 동반한 가족 참가자들에게 인기를 끈 건 둘째 날 점심 ‘뽕잎밥 만들어 먹기 체험’ 시간. 참가자들은 절 들머리의 친환경농업박물관 1층 자연요리연구소에 모여, 백미·현미·찹쌀을 섞은 쌀과 바싹 마른 뽕잎 한 접시씩을 받은 뒤 탁자에 둘러섰다.

용문사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의 뽕잎밥 점심공양.
“뽕잎은 피를 맑게 해주고 중금속을 배출해 준다고 합니다.” 템플스테이 뽕잎밥 담당 선덕화 보살이 마른 뽕잎을 들어 보이며 설명했다. “오디가 달린 가지째 채취해 말리고 덖어낸 뽕잎입니다. 물에 가볍게 헹궈내고 억센 가지만 떼어 버리세요.” 엄마·아빠가 뽕잎을 헹궈내자 초등생 아이들도 함께 달려들어 가지를 떼어내고 뽕잎을 잘게 자르며 즐거워하는 표정들이다. 작은 가마솥에 쌀과 뽕잎 우려낸 물을 붓고 들기름에 무친 뽕잎을 살짝 올려놓으면서 뽕잎가마솥밥 지을 준비가 끝났다.

하지만 식사는 운영팀이 준비해놓은 밥과 반찬들로 하게 된다. 밥 짓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체험 인원도 많아서다. 갓 지은 뽕잎밥에 버섯미역국, 뽕잎장아찌, 청경채·느타리버섯 무침, 콩과 견과류로 만든 콩고기 야채볶음, 야채·김치전, 단호박·브로콜리 조림, 새송이버섯 조림 등이 준비된 점심공양은 뷔페식으로 차려진다. “처음엔 형식을 갖춘 발우공양으로 진행했지만 참가자들이 부담스러워해 뷔페식으로 바꿨다”고 한다. 뽕잎밥은, 콩과 산야초 등 9가지 자연 재료를 발효시켜 만든 된장에 비벼 먹는다. 격식 차릴 것 없이 마음껏 먹되 남김없이 먹어야 하고, 설거지도 각자 하는 게 원칙이다.

경기도 광주에서 두 자녀(초등 4년·1년)와 함께 참가한 이학길·정승자씨 부부는 “사찰음식에 관심이 많았는데, 직접 체험할 수 있어 즐거웠다”며 “반찬 하나하나가 재료 맛이 살아 있는데다 짜지도 않고 맛깔스러워 아이들도 잘 먹었다”고 말했다.

용문사에선 이번 설 연휴 기간에도 뽕잎밥 체험을 포함한 ‘참나무 찾기’ 템플스테이를 진행한다. 아침에 떡국도 끓여 먹고 가족 세배도 하고 제기차기에 윷놀이도 펼친다. 진각 스님은 “제기차기·윷놀이엔 차와 다기 등 상품도 걸려 있다”고 자랑했다.

설 연휴 템플스테이 만두빚기·윷놀이 야단법석

용문사의 경우처럼, 설이나 추석 등 명절 연휴에 엄격한 사찰 예법을 요구하는 대신, 집에서처럼 먹고 놀고 쉬며 다양한 사찰문화 체험을 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를 진행하는 곳이 해마다 늘고 있다. 이번 설 연휴에만 다양한 설맞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찰이 20여곳에 이른다.

절하는 법을 배우는 템플스테이 참가자들.
체험복으로 갈아입고, 새벽 예불, 사찰예절 배우기, 백팔배, 참선, 포행, 스님과의 차담 등은 대부분 사찰의 기본 프로그램. 여기에 각 사찰들이 마련한 별도 프로그램이 기다린다. 설 연휴이니 조상님(또는 부처님) 생각하며 떡국 끓여 먹기나, 부모님(또는 부처님)께 세배 올리기를 프로그램에 넣은 곳이 많다.

가평 백련사, 서울 국제선센터, 경주 골굴사, 예산 수덕사 등에선 체험객을 위해 합동 차례상을 차려주고, 공주 갑사, 해남 미황사, 용인 법륜사, 부안 내소사, 봉화 축서사 등에선 윷놀이나 제기차기 등 민속놀이판을 펼친다. 참가자들이 직접 떡 썰고 만두 빚어 떡만둣국을 끓여 먹는 곳들(골굴사·수덕사·법륜사 등)도 있다. 이밖에 체험 프로그램으로 나무 열매로 염주 만들기나 한지로 연꽃 만들기, 반야심경 베껴쓰기(사경), 야생동물 먹이주기 등을 진행하기도 한다. 서울 국제선센터에선 설 연휴에 탈북 주민과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한 특별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의 김단인 팀장은 “건강·치유·전통음식에 관심이 높아지고 사찰 체험 수요가 늘면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도 하루가 다르게 새로워지고 있다”며 “전통 불교문화를 따르되 격식을 간소화해, 일반인 누구나 부담 없이 체험하고 쉬면서 재충전할 수 있는 내용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양평/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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