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토요판/가족] 어느 남편의 취미생활 사수기

달 밝은 밤에 낚싯대 드리우고
물고기와 싸우다 승리하는
그 포기할 수 없는 쾌감!
하지만 아내의 분노가 문제였다
‘내 취미는 육아와 살림이냐’는…

물고기 잡고 잔소리 잡을
묘수는 어디 없는가
그건 바로 ‘두 아이와 함께 가기’
아내는 대만족, 난 후회막심
텐트서 애 보느니 집에서 볼걸…

‘취미: 즐거움을 얻기 위해 좋아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 여가 선용 활동.’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면 부부가 함께 취미 활동을 하는 게 좋다고 수많은 전문가들이 권유하곤 합니다. 문제는, 아무리 부부라고 해도 성격과 취향이 다를 수 있다는 거죠. 남편(아내)이 좋아하는 취미 활동을 아내(남편)가 싫어해 갈등이 생기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결혼이란 공동생활 속 즐겁게 취미 활동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아이들은 왜 태어났는가.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기 위해서? 엄마·아빠 말 잘 듣기 위해서? 아니다. 아이들은 잘 놀기 위해 태어났다. 어른들은 아이가 잘 놀 수 있도록 도와줄 의무가 있다. 그런 인생의 목적은 나잇살 좀더 먹은 어른이 됐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평생 일의 노예로 살다가 마감하는 삶만큼 불행한 인생도 없을 것이다. 취미생활을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14년차 직장인인 난 그래서 쉴 틈만 생기면 들로 나간다. 산이나 강, 저수지에는 신선한 바람과 지저귀는 새들과 알 수 없는 생물들이 가득하다. 도시에는 없는 건강한 세균들이 나에게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 준다. 그렇다고 들에 나가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무언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물고기를 잡는다. 날 좋은 밤 물가에 앉아 낚싯대를 사이에 두고 물고기와 신경전을 벌이다 끝내 승리했을 때 느끼는 쾌감은 매우 강렬하다. 직장 동료 가운데 누군가는 물고기 잡는 게 무슨 자연친화형 취미냐고 힐난한다. 그는 이중인격자임이 틀림없다. 물고기 잡는 행위를 비난하면서도 식당 가면 생선 구이나 조림을 잘도 먹더라. 그런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가 어류보다 고등 생물이라는 소와 돼지의 살은 어찌 그리 맛있게 뜯어 먹던지….

문제는 정작 직장생활 외의 시간, 취미생활의 여유가 발생하는 시간 대부분을 공유하는 아내와의 관계에서 일어난다. 아내는 나의 취미에 흥미가 없다. 신혼 초에는 주말마다 혼자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분별없고 겁대가리를 상실한 짓이었다. 평일에도 밤마다 직장 탓을 대고 술 취해 들어와서는 가사라고는 눈곱만큼만, 생색을 내는 둥 마는 둥 하는 남편이란 작자가 주말에는 월척 잡겠다고 텐트랑 낚싯대 메고 집을 나서는 꼴이 예뻤을 리 없다. “왜 당신만 취미생활을 즐기느냐”는 아내에게 “그럼 당신도 취미생활을 하면 되지 왜 내 취미생활에 간섭하느냐”고 나는 맞섰다. 고백하건대, 나의 원죄는 이때부터 거대한 산을 이루기 시작했다.

나의 결정적 잘못은 육아 부담을 우습게 본 것이다. 아이들이란 계속 흘리고 깨뜨리고 엎지르고 먹고 싸면서 어른의 끊임없는 관심을 필요로 하는 존재란 사실을 잘 몰랐다. 아니, 알면서도 무시한 것인지도 모른다. “비정규직이어서 나보다 돈을 덜 버는 당신이 육아 부담을 더 지라”는, 우리 사회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가하는 것과 비슷한 종류의 차별을 내가 내 아내에게 강요한 것이리라는 생각도 든다. 어쨌건, 아이가 둘씩이나 태어난 뒤에도 나는 개과천선하지 않았다. 주말이면 종종 혼자 차를 몰고 경기도권의 저수지를 찾아 헤맸다. 아내는 비좁은 집에서 애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면서 나에 대한 분노를 키웠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더구나 시가에 얹혀사는 며느리가 받았을 이러저러한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난 참 생각 없는 놈이었다.

이렇게 쌓인 나의 원죄는 둘 사이 크고 작은 실랑이가 일라치면 여지없이 아내의 입에서 튀어나온다. 어떤 이유에서 시작한 말싸움이건 결론은 나의 원죄로 돌아간다. 아내의 끝없는 환원논리가 지겨워 때론 좌절하고 때론 담배를 빼어 물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왜 생겼는지 알 것 같다. 요즘엔 그나마 밥짓기, 설거지, 청소 같은 일을 조금이라도 더 하려고 노력하고 이를 위해 꼭 필요치 않은 저녁 술자리를 만들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별 소용 없다. 아내가 아직까지 처벌하지 않은 내 원죄의 공소시효는 끝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분위기를 봐서는 내 관뚜껑이 닫혀야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질 게 틀림없다.

그렇다고 아내와 함께하는 들살이(캠핑)를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두어번 네 식구가 함께 풍광 수려한 저수지 가에 텐트를 치고 코펠에 밥 짓고 찌개를 끓여 먹고는 함께 잠을 잤다. 하지만 들살이는 근본적으로 깨끗함이나 위생과는 거리가 먼 탓에 아내와도 가까워지지 못했다. 등이 배기는 잠자리는 불편하고, 씻는 것도 쉽지 않은데다 각종 날벌레들도 친구 하자고 덤벼드는 상황을 아내는 불편해했다. 그렇다고 잘 정비된 캠핑장을 찾는 것은 내 적성에 맞지 않았다. 대개의 캠핑장은 자연과 호흡하기 위해 온 것인지 장비 자랑하러 온 것인지 모를 정도로 장비 자랑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로 가득한 듯했다. 마치 캠핑 브랜드 전시장 같아서 싫다. 또 들살이의 본령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데서 시작하는데, 전기를 끌어와 프로젝터로 영화를 틀고 전기장판으로 난방을 하는 것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럴 거면 그냥 집에서 편하게 널브러지는 게 더 낫다는 게 내 판단이다.

결국 내가 찾아낸 답은 애들을 데리고 들살이를 나가는 거다. 아내는 집에 남긴다. 우선 아내가 매우 좋아한다. 주말 육아 부담을 온전히 홀로 지다가 반대로 완전히 해방되기 때문이다. 사실상 1박2일짜리 휴가를 맞게 된 셈이니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로서는 아내의 잔소리로부터 해방된다는 장점이 있다. 이제는 일요일 귀가 뒤 되레 큰소리칠 수 있는 순도 높은 알리바이를 갖게 됐다. 아이들과 들에서 꽁치김치찌개를 끓여 먹으며 때로는 우리 셋의 ‘공동의 적’인 아내 흉도 보고 함께 놀면서 즐거운 추억을 쌓을 수도 있다.

단점도 없지 않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육아 부담이 집에서 텐트로 옮겨왔다. 그 탓에 낚시를 제대로 하는 게 거의 불가능해졌다. 낚시는 그 속성상 주로 해거름부터 자정 정도까지 집중을 해야 하는데, 애들 밥 챙겨주고 놀고 이 닦이고 잠 재우다 보면 밤 10시가 훌쩍 넘는다. 물고기들도 하품하며 잠자리를 물색할 시간이다. 애들 재우고 나면 혼자 소주 한잔 마시며 “내가 미친놈도 아니고, 집에서 편히 쉴 것을 뭣하러 여기까지 나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하며 후회를 한 밤이 숱하다. 그러면서도 다음 주말이 가까워지면 또 들썩거리는 엉덩이를 느끼면서 내가 분명 제정신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었다. 결혼을 하면 많은 공동의 책임이 생긴다는 사실, 애를 낳으면 잘 키우는 데 많은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가벼이 여긴 내 책임이다. 어쩔 수 없다. 내 취미생활은 현재의 조건을 인정한 상황에서 다시 부팅해야 한다. 이렇게 부팅 몇 번 하다 보면 인생이 저물 것이다. 변론서를 의도했으나 자술서가 돼버린 이 글처럼 볼품없어지는 거다.


들에서 살고픈 어느 40대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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