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매거진 esc] 스타일

직장인 이아무개(32)씨의 가방에 삐죽 털실이 나와 있다. 주말 아닌 평일이다. “정말 신기한 일이에요. 아무리 흥미로운 취미여도 몇달을 못 갔는데, 이번엔 달라요.” 그는 손뜨개질 도구를 모두 가방에 넣고 다닌다. 일터에서도 점심을 먹고 난 뒤 자투리 시간이 있으면 뜨개질을 한다. 이씨가 뜨개질을 하게 된 계기는 소박했다.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는 제3세계 아기들의 사연을 듣고 난 뒤였다. 털실로 짠 작은 모자가 첫 작품이었다. 들쭉날쭉 못난이 모자였지만, 첫 작품을 완성한 뒤 뿌듯함과 성취감은 그 어떤 때보다 컸다. 그리고 이씨는 뜨개질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저체온증 신생아 돕기
모자 뜨기 캠페인
뜨개질에 대한 관심 높여

뜨개질은 본디 홀로 하는 것이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지난 3일 저녁 7시30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 4명이 모였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꾸린 뜨개질 모임이다. 최영선(31)씨는 “뜨개질을 몇번 시작하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어요. 실을 사는 곳에서 뜨개질 방법을 알려주기는 하지만, 집에 돌아와 실과 바늘을 집으면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누군가와 서로 뜨개질 방법을 공유해가면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모였다.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최씨가 고민을 올리자 함께하고 싶다는 뜨개질 친구들이 연락을 해 왔다. 한달에 두번, 그들은 따뜻한 차를 마시며 함께 뜨개질을 한다.

겨울, 뜨개질의 계절이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취미지만, 역시 따뜻한 털스웨터나 목도리가 그리워지는 추운 날에 뜨개질을 찾는 사람이 많다. 기억 속의 뜨개질은 ‘일감’이었다. 어머니가 가사노동을 하면서 쌈짓돈이라도 벌 수 있는 수단이 바로 뜨개질이었다. 1980년대, 시장통에는 꼭 털실, 뜨개질 가게가 있었다. 이젠 일거리보다는 취미의 영역에 속한다.

뜨개질은 새롭다고 할 수는 없는 취미이다. 하지만 새로운 의미를 더해가고 있다.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마음과 정서 치유의 방법을 찾아 헤맨다. 바로 뜨개질에 더해진 의미가 이것이다. 치유의 취미로서 뜨개질이 각광을 받고 있다.

초보자도 쉽게 할 수 있는 목도리 뜨개질을 가르쳐 주고 있는 이해옥 대표. 뜨개질로 만든 장식품과 어린이옷들.
뜨개질의 대모를 찾았다. 어릴 적 에이치오티(H.O.T)가 매던 하얗고 노란 목도리를 직접 만들어 보겠다고 도전했던 게 뜨개질의 첫 경험이다. 150센티미터는 되어야 할 목도리를 90센티미터밖에 짜지 못하고 서둘러 마무리를 했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다시 도전해 이번에는 꼭 목도리를 완성해 보리라 다짐하고 뜨개질 대모가 계신 곳의 문을 두드렸다.

4일 저녁 6시, 서울 종로구 삼청로의 ‘단주’로 갔다. 지층에는 뜨개질로 만든 각종 완성품이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목도리, 장갑, 모자부터 와인병 싸개, 쿠션, 브로치까지 아기자기한 상품들이 가득하다. 누군가의 손을 거쳐 만든, 아마 세상에서 하나뿐인 작품들이다. 외출을 했다가 들어오며 반갑게 기자를 맞이하는 이해옥 대표가 꾸려가고 있는 곳이다. 1층에는 뜨개질에 필요한 털실과 도구를 파는 가게가, 2층에는 니트 카페가 있다. 니트 카페에서는 수시로 뜨개 강좌가 진행된다.

반복적 손놀림으로
세로토닌 활성화 도움
학술지에서도 명상효과 인정

일단, 1층에서 목도리 하나를 뜰 수 있는 키트를 샀다. 키트의 구성은 간단하다. 털실 4뭉치와 뜨개바늘. 2층 니트 카페로 올라가 포장을 뜯으니, 덜컥 겁이 난다. 고명인 강사는 “어렸을 때 한번 해봤다면 금세 익숙해질 거예요. 자전거 한번 제대로 배워놓으면 잊어버리지 않듯이 뜨개질도 그렇다니까요”라고 안심시킨다. 하지만 역시나 목도리 뜨기의 첫 단계인 코잡기는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봐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고 강사의 도움으로 코잡기를 한 뒤 본격 뜨개질이 시작됐다.

마주 앉은 이해옥 대표가 “마지막에서 두번째 코는 안뜨기 방식으로 바늘만 빼고, 마지막 코는 원래 하던 겉뜨기로 마무리하세요”라고 알려주지만, 이 문장 자체가 암호일 뿐이다. 6번에 걸친 안내 뒤에야 비로소 스스로 한 줄 뜨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 갈 길은 구만리였다. “손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갔네. 멋진 뜨개질 자세 잡을 생각일랑 말고 천천히 시작해봐요.” 이 대표는 다독였다.

style tip

초보라도 괜찮아

니트 스튜디오 단주에서는 키트를 구입하면 무료로 뜨개질 방법을 알려주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모든 뜨개질 강좌가 무료는 아니다. 한 품목을 만들 수 있는 뜨개질 키트를 구입하고 수강료 3만원을 내면 교육을 수강할 수 있다. 단주에서는 종종 벼룩시장 및 전시도 열리고 있다. danju.co.kr, (02)720-1127. 서울 종로구 삼청로 65-4.

이해옥 단주 대표는 뜨개가 주는 치유의 효과를 확신에 차 설명했다. “뜨개질을 하다 보면 명상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어요. 이것은 저희가 주장하는 주관적인 판단이 아니에요. 유명 학술지에서도 뜨개질 효과를 다루기도 했지요. 반복적인 손놀림 활동이 세로토닌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는 내용이에요.” 과연 이 효과를 실제로 느껴볼 수 있을 것인가? 마음에 평온이 찾아오기 전 손가락이 아파 왔다. 특히, 오른손잡이여서 왼손 근육이 더 빨리 뻐근해졌다. 그럼에도 신이 났다. 몸에 새겨져 있던 뜨개질 방법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겉뜨기와 안뜨기, 이거였지!’ 유레카라도 외칠 기세였다.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한 한 방법인 거잖아요. 머리 아파 가면서 할 이유가 있나요. 다만, 차근차근 배우는 게 좋겠죠?”라고 이해옥 대표는 말했다.

돌아가는 길에 귤 한 봉지를 샀다. 텔레비전을 끄고, 음악을 틀었다. 따뜻한 방바닥에서 전해져 오는 온기로 나른해졌다. 2시간을 그렇게 꼼짝없이 뜨개질에 붙들려 앉아 있었다. “명상의 효과요? 세로토닌 활성화 효과도 있지만, 아무래도 온전히 뜨개질에만 집중하게 되는 순간에 찾아오더라고요. 뜨개질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도 잊게 되는, 무아지경의 세계랄까요?”라며 웃는 이해옥 대표의 말이 떠올랐다. 뜨개질엔 따뜻한 중독성이 있다.

글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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