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0월 2일.
많은 다른 직원들은 오늘 휴가를 쓰고 내일까지 연이은 연휴를 즐기는 오늘.
나는 사무실에 나왔다.
사실 나도 휴가를 써도 됐지만 최근 아이를 봐주시는 친정엄마가 몸이 안 좋으셔서 몇 번의 조퇴를 하는 바람에, 그리고 앞으로도 그 자리 비움은 계속 될 듯 하여 오늘은 출근을 해야겠다 마음 먹었다.
물론 두 아이를 기꺼이 봐주시겠다고 한 오래간만에 제주도에서 올라오신 시어머니와 매주 주말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아가씨 덕분이다.
긴 연휴 끝에 출근길은 영 찌뿌듯 했지만 거의 나 홀로 사무실에 앉아서 밀린 문서도 정리하고 책도 읽고 조용히 업무를 하자니 요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잠시 짬을 내어 지난 주에 다 읽은 책을 다시 훑어본다.
너무나 공감하며 아프게 읽었던 이 책.
올해 다양한 육아서와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 나의 생각은 어떤 한 방향으로 나가가고 있었는데 그 마지막 포인트가 어떤 모습인지 생각하게 해준 책이었다.
지난 1월에 신년 계획을 고민하면서 올해는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기록하자는 다짐을 했다. 다짐만큼 많은 책을 읽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고 조금씩 기록을 남겼다. 책의 내용을 곱씹고 마음에 남는 구절을 기록하면서 또한 그렇게 하는 이유를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 낳기까지는 흘러오면서 특별한 목표를 세우지 않고 해야 할 일들을 하면서 하루하루 살았다.
그렇게 현재에 와서 보니 정작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 무엇인지 잘 그려지지 않았고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 해야 하나, 이직을 해야 하나, 새로운 공부를 해야 하나… 이런 고민들이 나를 점령 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키우고 회사에서의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기는 했지만 그것 더불어 나의 모습을 가꾸고 새로운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고 싶다는 욕심이 채우고자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그 시간들이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 책을 읽으면서 많이 고민했던 어떤 부분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려졌다.
아이에게 어떤 것을 주어야 할지를 고민하기 보다 내가 어떤 모습의 부모가 되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부모의 역할이라는 것과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 것이다.
부모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제부터라도 나의
삶의 가치에 확신을 가지고 그 가치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대물림된 나의 유예를 거두어들일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더 이상 그 유예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부모 노릇이 막막한 것은 우리가 매뉴얼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부모 개인에게만 부모 노릇의 책임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우린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문제가
결국 나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문제임을 지지해주는 가치와 시스템이 필요하다.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지 않는 부모를 보면서 어떻게
아이들이 자신의 미래의 행복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부모의 현재는 곧 아이들의 미래다. 아이들은 부모의 삶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본다.
나 또한 이 땅에서 교육을 받고 자랐고 지금은 두 아이의 부모이기 때문에 교육에 대한 문제는 오랜 시간 경험했고, 여전히 큰 고민거리로 남아있다.
함께 사는 방법을 모르고 혼자 뛰어난 아이보다는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조금 부족하더라도인간미 넘치는 건강한 아이로 키우고 싶기에 사교육을 어떻게 할지, 어떤 가르침을 주어야 할지 생각하고 다짐도 하지만,
막상 아이가 학교에 가고 성적표를 받아오고 경쟁에서 뒤쳐지게 된다면 그 순간 나는 어떤 학부모가 될 지 자신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두려움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렇다면 그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정말로 아이의 행복을 지켜주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물론 그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책을 읽고 고민하는 시간은 상당히 아픈 시간이었다.
지나친 경쟁과 부모의 과도한 욕심 때문에 병든 아이들의 다양한 사례를 보면서 슬픔을 느끼고 그 부모들을 욕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이 사회 구조와 시스템을 확인하면서 절망과 무기력함을 느꼈다.
다른 무엇을 위함도 아닌 정상적인 부모가 되기 위해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이 땅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책을 읽은 후 핀란드나 독일 등 교육환경이 좋은 다른 나라의 모습을 찾아보면서 그런 마음이 더욱 강해짐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고 이 곳에서 내 삶의 일부를 기여하면서 살아야 하니 피하기 보다 바꾸는 방법을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재 우리가 고통받고 있는 것은 잘못된 제도와 시스템을 그대로 방치한 우리의 책임이 크다. 그 고통은 이제 우리 아이들을 옥죄고 있다. 이제 시스템의 문제를
외면하고는 지금 우리가 처한 곤경으로부터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탁상 달력 한 장을 더 넘긴다.
이제 올해도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아이들의 행복과 나의 행복을 위해서 싸우는 멋진 투사가 되어야 함은 물론
수 없이 했던 고민과 다짐들, 흔들리지 않게 잘 다독이고 실천하는 시간을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