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산바 세아이들이 잠들고서야 뉴스를 봤다. 바다을 업으로 일하시는 분들, 땅의 기운을 빌어 일하시는 분들께 위로의 말이라도 전하고 싶었다.
비 오는 날은 놀아본 사람만이 안다.
2012.9.13 목
엄마 비가 오네요!
밖에서 놀게 비옷 찾아주세요. 안에 옷이 안 젖는 걸로요.
(지난번 저렴하게 구입했던 비옷이 흡수력이 좋았던 모양이였다. 그래서 저 저렴하게 마련 해 놓았던 일회용 비닐 우의를 꺼내놓았다. 말이 일회용이지 벌써 여러번 입고 다시 씻어 말려 정갈하게 접어놓았다. 언젠가 쓸모있겠지라는 생각에 살짝 찢어진 부분은 테이프로 수선해가면서.)
그러니깐 아침 식사를 마치자 마자 무언가를 끄적이더니 2인용 자전거와 끈, 상자가 있어야한다며 밖으로 훌쩍 나가는 현이다.
무언가 비상((飛上)하는 물체를 만들고자하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였는지 공기 주머니같은 것이 필요하다며 다시 들어와 EM으로다 쌀뜨물 발효액 만들려고 모아둔 페트병을 달라고 했다. 곤란한데....그러더니 양파 장아찌를 담았던 빈통에서 냄새가 나니 이 걸로 줘도 된다며 협상안을 내어 놓았다. 일단 나도 확인 어 진짜 냄새 나네. 다른 곡식이나 다시마라도 보관할 용기로 재활용하려고 씻어 놓았는데. 인심썼다!
성민이 젖 먹는 동안 벌써 한참 놀았던 현, 준이다. 동네 어르신이 지나가면서 비가 오는데 얘들이 나왔더라며 염려를 해 주신다. 현이는 잡기 놀이를 제안했다. 엄청 신나서 저 혼자 깔깔 웃기도 한다. 몸으로 뛰고 얼굴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최고의 놀이다. 그럼 얼음 쨍! 요걸로다 한 수 알려주지싶어 꾀를 내었다. 성민이 업고 더는 못 뛰어다닐때 쓸 수 있는 비장의 카드랄까. 얼음!!!
며칠 전에 본 파닉스 송에서 본 달리기 경주를 하기도 했다. 동물들이 달리기 대회를 하는 모습 그대로를 마치 재현이라도 하듯 흉내내며 또 한 번 까르르 웃었다. 이 애미가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해 둘까. 고맙다.
현: 토끼처럼 hop!
저 형 말이라면 때론 반항도 하지만 충성심은 누구보다 높은 준이다.
민준아~ 우리 숨바꼭질도 하자!!
안 보이는 척, 못 찾는척한다고 고생했다. 방울토마토가 우거진 곳으로 들어가 저 큰 몸을 숨기기도 하고 저 보다 가는 나무 뒤에 들어가 몸을 숨기기도 했다. 나 역시 성민이 업고 커다랗고 시커먼 골프 우산 쓰고 빨간 자동차 뒤에 숨었으니 우린 진짜 웃기는 가족이다.
그 때 지나가는 동네 주민 2님께서 씨익 웃으시며 눈 인사를 건냈다.
축구공까지 들고 왔다. 성민이 업고 열심히 공 찼다. 공 잡으러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현이는 절대적인 에너자이져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 아름답다. 이 세상 평화를 여기에서 보는듯하다. 그럼 난 행복한 사람이지. 맞다. 난 최고의 나날을 보내는 한 사람이다.
현: 요건 배추고, 요건 무우~ (농사 잘 지어서 시장에다 내다 팔 계획이다.)
비 오는 날 현관앞에서 소꼽놀이는 낭만적이기 보다 처량하기 짝이 없는데다가 비위생적이기 까지 했다. 매일 거위를 풀어 놓는 통에 쾌적한 전원생활은 일찍감히 포기했다. 비오는 날 처량맞게 현관에서 종이 박스 깔고 앉아 성민이 젖 먹였다. 우린 진짜 못 말린다.
어제 가지고 놀았던 돌덩이를 잘도 찾아 노는 준이다. 돌 사랑 민준. 어디를 가도 나뭇가지며 나무잎을 줍는 아이다. 작년 안동 탈 축제에 갔었다. 노랗게 물든 가로수에 떨어진 낙엽을 주워 예쁜 나무잎 다발을 만들기도 했다. 돌, 나뭇잎, 열매, 나뭇가지를 간직하는 그 마음. 어렸을때 돌리켜보면 나도 매일 들꽃이며 억새풀을 꺽어 집안을 꾸미곤했었다. 그래서 우리집은 소라 껍데기는 물론이며 동글 동글한 검정 돌부터 흰 돌까지, 도토리, 호두, 복숭아 씨, 살구씨가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다.
엄마 손씻게 물 주세요~지금(성민이 수유...)어렵겠는걸. 그랬더니 플라스틱 통 하나씩 가져와 처마끝에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을 모아 손씻는 현, 준이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물인데.
측우기는 세종대왕이. 손씻을 물은 두현이가. 삶 속에서 과학을 몸으로 느끼는 아이들이다.
삽으로 진흙을 파더니 찰진 찰흙이 나왔다. 그 조차 우연히 발견했고 찰흙으로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 그 어떤 기술 또한 알려고 하지도 않았거니와 알려주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저 하고 싶은 대로 진흙의 촉감을 만끽하는 것만으로 대단함.
여섯살 현이는 오전 내내 네시간 동안 놀아도 더 놀 기세다. 저 넘치는 에너지를 감히 이 곳이 아니면 어찌 풀었을고 생각하니 더욱 감사하다. 자연이 주는 선물 오늘 또 느꼈다.
오전 내내 놀았으니 점심은 어떡하지?
일단 씻는 것 조차 내겐 미션이다. 성민아 기다려줄 수 있지? (꼭 기다려야만 한다. 그것도 잘! 그럼 거실에서 놀고 있어~ 알았지...부탁하자.)
다음, 점심이다. 어쩌지? 으흐흐흐 미리 미역국 끓여 놓았지.
현: 엄마 난 미역국이 제일 맛있다. 따뜻하게 줘~~
점심때, 책 배달왔다. 지난 주 도서관에서 빌려 본 책 중 저 마음에 꼭 드는 책이니 주문 해 달라고 간절하게 청을 했었다. 며칠을 기다려서야 받은 책이니 얼마나 반가웠을까마. 식사하고 책 보기다!! 단호한 한 마디로 눈을 마주쳤다. 어찌 참았을까. 아마 밥 먹는 내내 책이 궁금했을텐데.
엄마 목소리만 들어도 삐씩 웃는 민이는 늘 애미 손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도 제 타고난 거라. 잘 자랄것이다. 이 애미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