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가 마땅하지 못한덕에 종이컵이 총출동하는 일이 벌어졌다.
어린이에게 있어 놀이는 그들의 삶이다. 마음껏 뛰어노는 놀이가 매일 이루어져야한다.
현이가 태어나면서 만 4년동안 서울생활을 했다. 걸음마하면서 매일 단 하루도 빠짐없이 놀이터며 흙이 있는 화단을 전전긍긍 다녔던 기억이 뚜렸하게 난다. 민준이가 태어나면서는 준이 낮잠 잘 겸 업고 온 동네를 돌아다닌 세 모자의 모습이 그려질까.
얽힌 이야기...
오후 다섯시쯤이 되면 종일반을 마치고 오는 현이 또래 아이를 보살피는 할머니는 늘 우리 세 모자를 피해 집으로 들어가곤했다. 한 번은 비가 개인 날 아파트 화단 앞에 물이 고여있었다. 비가 왔으니 당연히 장화는 신고 나왔으니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듯 퐁당거리고 노는 모습을 그 어르신께서 보시고 아이를 마중하러 가셨다. 하지만 저 멀리 앞 동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리 돌아 돌아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까지 보았다.
친정집은 시골이다. 외가로 가는 날이면 장화도 운동화도 있는대로 다 챙겨갔었다. 비가 오고 마당에 고인 물과 진흙과의 조화는 그야말로 최고의 놀이감이다. 그러니 당연히 첨벙거리고 노는 현, 준이였다. 이웃에 사시는 6촌 당숙이 손주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마실을 왔다가 저 아이들은 이상한 아이들이야라는 말을 남기고는 발길을 돌려 다른 곳으로 갔었다. 시골이라 늘 즐길 것만 같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가 이상적으로 꿈꾸는 것과 실천 가능한 것에는 넘어야만 할 벽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사실 나 역시 매일 둘 아이가 흙범벅을 한 서너 벌의 옷가지 매일 빨아야하는 고된 일이 반복되면 한 숨이 절로 나올때도 있다. 현관과 현관 입구는 늘 모래 투성이다. 뭐 그 이외에도 나열하면 수십가지가 될테지만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어떤 집이라도 그럴것이니.
성장기 즉 자라나는 시기의 어린이들에게는 햇빛 아래 산책, 모래놀이, 숨이 찰 정도로 뛰어노는 놀이는 꼭 해야만 건강하게 내재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도 많은 연구 결과도 있거니와 내 짧은 십여년의 경험담이기도 하며 지금 세 아이들과 함께 나날을 지내면서 백배 공감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놀이나 체험은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삶의 일부분이다. 때문에 매일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한다.
이론적인 이야기지만 동적이 활동을 충분히 해야만이 정적인 활동에 집중할 수 있다는 말을 백배 공감하게 한다. 요즘 넘쳐나는 게임기와 스마트 폰으로 당장엔 아이를 조용히 머물게 할 줄 몰라도 아이의 내면에 내재된 에너지는 과연 어떻게 풀 수 있을까. 고민 해 보아야하지 않을까 한다. 그에 대한 문제나 한계를 당장에는 나타나기 보다 점점 자라면서 문제는 더욱 커진다는 점이다.
모기 쫓느라 얇은 이불 모기장 삼아 업고 왔다갔다 오가면 금세 달게 잠을 청하는 민이다.
일주일 내내 무성한 풀을 캐어도 내고 베어도 보지만 쉽게 바닥을 내보이지 않아 모종을 내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여러가지 방법을 모색한 끝에 종이컵을 이용해 포트활용을 하기로 했다. 급한대로 화원으로 달려가 상토 한 자루 샀다. 준이는 저 아빠말을 듣고 냉큼 집으로 들어와 종이컵 달라고 했다. 저 할 일을 찾는 네살배기 준이다. 그이가 먼저 종이컵에 상토를 알맞게 넣는데 마당에서 놀다 냄새라도 맡은듯 달려와 종이컵을 하나씩 빼서 아빠에게 내미는 현이다.
어린 아이와 함께 일한다는 것은 그저 되는 일은 없다. 아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돕기 위해 여러번 다시 생각하고 생각해야 군더더기 없이 할 수 있으며 그래야만 하는 아이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현이에게는 무우씨는 세 개씩 나누어 담는 일을, 준이에게는 한개씩 담는 일을 각각의 몫을 주었다.
저 스스로 어떤 일을 하고자 마음을 먹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성취감과 자신감, 기쁨을 맛본 아이라면 기쁜일이든 어려운 일이든 서슴없이 실천하고 이겨내리라 이 애미는 믿는다. 세상살이는 부모가 대신 해 줄 수 없으니 저 스스로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도록 이런 기회를 함께 나눈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일련의 과정 하나 하나가 아이의내공으로 쌓여지기를 바란다.
작은씨앗 하나에서 시작되어 적당한 햇빛, 물, 땅의 기운을 받아 자라는모습을 아주 천천히 보게 될것이다. 나 가슴이 콩콩거린다. 얼마나 신비로운 일인가. 대 자연의 경이로움을 맛 볼 것이다. 보기 좋게 자랄 배추가 되기까지 기다림은 어떤 배움보다 가치로울 것이다.
자연스레 무우씨와 배추씨의 차이도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토종씨앗에 대한 이야기...
다행히 고맙게도 노란 배추씨는 한국산이다!
일주일 후, 태풍 16호 산바를 대비하기 위해 갓 싹이 틘 모종을 처마 밑으로 자리를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