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매거진 esc] 독자사연 사랑은 맛을 타고
우리 집 여름 밥상에는 반찬이 제법 풍성하다. 열무김치, 야채모둠장아찌, 된장찌개, 묵은지돼지갈비찜, 수박나물, 멸치호두조림 등. 전부 내가 만든 반찬이다. 내 손으로 반찬을 만드는 데 20년이 더 걸렸다.
학교와 직장 다니느라 살림에는 관심이 아예 없었다. 친정에는 언니 넷, 올케 둘이 있어 내가 음식 할 기회는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아무튼 결혼을 하긴 했는데, 매 끼니 밥을 하는 일이 결혼의 주된 업무라는 것을 늦게 알았다. 결국 스무살 위의 큰언니가 김치, 된장, 밑반찬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문제를 손쉽게 해결했다. 그 당시 우리 집 밥상에서 내가 만든 것은 국, 찌개와 밥뿐이었다. 맞벌이 핑계로 몇년 동안 줄곧 언니에게 얻어온 반찬으로 끼니를 해결하던 즈음, 기어코 난리가 났다.
그날도 언니네 집에서 저녁을 때우고 반찬 몇 가지를 비닐봉지에 주섬주섬 담고 있는데 늙수그레한 형부가 한마디 하셨다. “처제, 언니도 이제 늙는데 언제까지 그렇게 반찬을 해주겠어?! 이제 음식 좀 배우지!” 그 순간 가슴이 뜨끔했다. 기어코 올 것이 왔구나! 그 말이 백번 옳았다.
그날 당장 난생처음 김치를 담가보았다. 며칠 뒤 내 손으로 담근 김치를 자랑스럽게 들고 의기양양하게 집을 나섰다. 일부러 저녁식사 시간에 맞추어 언니 집으로 간 나는 처음으로 직접 담근 김치를 상에 올렸다. 형부와 조카들은 신기한 일도 다 보았다는 듯이 휘둥그레 커진 눈으로 그 김치를 한 점 먹어보았다.
“흐미! 세상에 이런 김치가 다 있다냐!”, “하하하! 이모가 그럼 그렇지!” 모두가 나를 조롱했다. 이것이 처참하게 망친 나의 첫 김치였다. 하지만 내 전략은 성공했다. 그 이후로 형부는 다시는 나에게 음식을 배우라는 둥 하는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나는 요긴하게 활용도 했다. “형부 생일에 내가 김치를 좀 담가 올까 하는데”라는 말만 흘려도 형부는 기겁을 했다. “아이구 아녀! 이번엔 아무도 안 부르고 식구들끼리 밖에서 그냥 사먹을 생각이구먼. 그러니께 처제는 오지 마, 알았지?” 언니와 나는 그런 형부를 보며 낄낄거리고 한참을 웃었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우리 집 밥상에 올리는 음식은 전부 내 손으로 장만한다. 김장도 혼자 하고 열무김치나 장아찌도 곧잘 담근다. 언니에게서 독립한 것이다. 인터넷이 있기에 가능했다. 할머니가 된 지 10년도 넘은 언니에게 이제는 내가 만든 반찬을 나누어 주어야겠다. <끝>
윤옥복/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삼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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