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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포트메리온·레녹스 등 수입산 브랜드 인기와 함께 관심 높아지는 접시 디자인과 최근 트렌드

2012년 한국 상반기 흥행영화 <범죄와의 전쟁>에 조 검사(곽도원 역)가 없었다면?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드라마 <추적자>에 용식이(조재윤 역)가 없었다면? 영화와 드라마는 맛이 없었을 것이다. 탄탄한 연기력의 조연이 주인공을 빛낸다. 음식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최고의 맛은 요리사의 손끝에서 나오지만, 그 음식을 온몸으로 품는 접시의 빛나는 풍모가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아무리 무라카미 류가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고 소리쳐도 소용없다. 실제 우리 인간은 혀보다 눈에 의존해 ‘맛있다’고 판단한다. 시각의 영향력은 80% 이상이다. 명품 조연들처럼 접시의 세계도 날로 영토를 확장중이다. 가 그 세계를 탐험하면서 만난 3가지 풍경을 소개한다.

70~80년대까지 국내산 풍미
90년대 수입산 들어오면서
시장 경쟁 치열해져

#1. 서울 중구 소공동 지난 6일 낮 2시. 롯데백화점 그릇 코너. 건장한 사내들이 들이닥쳤다. 딱 봐도 회사원이다. 이들은 한솔페이퍼유통 영업팀 직원들. 방우성 팀장은 수입 그릇 브랜드 포트메리온을 꼼꼼히 살핀다. 그가 애처가면 좋으련만 아니다. “고객 초청행사가 있는데 선물 사러 왔어요.” 포트메리온은 영국 남서부 웨일스 지방에 있는 선물가게 이름이다. 1960년 수전 윌리엄스엘리스와 유언 쿠퍼윌리스가 이 가게에 납품할 접시를 만들면서 탄생했다. 웨지우드(영국), 로열앨버트(영국), 로얄코펜하겐(덴마크), 빌레로이앤보흐(독일), 레녹스(미국) 등을 제치고 우리나라에서 단연 최고 인기다. 수입 브랜드 중에서 10년 넘게 판매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전세계 시장에서 한국은 영국, 미국과 순위를 다툰다. 하지만 요리사들이나 푸드스타일리스트 등 요리업계 전문가들은 포트메리온의 인기를 의아해한다. 문양이 화려하고 색이 진한 접시는 요리를 돋보이게 하기 어렵다는 게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드라마의 부잣집 찬장에 포트메리온을 두는 식의 피피엘(PPL) 광고 등의 마케팅 효과가 컸습니다. 트렌드처럼 자리잡은 거죠”라고 말한다. 우리의 밥공기나 국그릇 등을 만드는 등, 현지화 전략도 성공요인으로 꼽는다.

70~80년대는 한국도자기나 행남자기 등 국산 브랜드가 인기였다. 90년대 수입규제가 풀리면서 코렐(미국), 로얄코펜하겐, 노리다케(일본) 등 다양한 수입그릇이 들어왔다. 9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은 코렐이다. 얇고 가벼워 보관도 쉬웠다. 백화점 세일 날이면 매장은 긴 줄이 이어졌다. ‘깨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내세운 광고도 효과가 컸다. 당시 광고를 맡은 ‘한국연합광고’가 본사의 슬로건, ‘롱 라스팅 뷰티’(long lasting beauty)를 한국식으로 번역해낸 문구였다. 실제 코렐은 잘 깨지지 않는다. 3중 압축유리는 전세계에서 코렐만이 가진 기술이다. 코렐의 전신인 코닝은 에디슨이 개발한 전구의 유리를 만든 기업이다. 현재는 분사해 별도의 기업이다. 코렐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파이는 여전히 크지만 더는 트렌드로 보지 않는다.

요즘 포트메리온의 아성을 위협하는 조짐도 보인다. 미국 백악관에서 쓴다는 레녹스의 ‘버터플라이 메도’ 시리즈가 주인공이다. 오는 9월 20~30대를 겨냥해 가격을 낮춘 시리즈를 내놓을 로얄코펜하겐도 기지개를 편다. 소비층이 다양화되면서 인기를 끄는 접시들도 다양해졌다. 헤렌드(헝가리) 같은 고가 접시를 구입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마치 레스토랑이 부엌에 들어온 것처럼 흰색 접시를 선호하는 젊은 층도 생겼다. 젠한국의 흰색 식기류는 매년 매출이 늘고 있다. 2년 전에 영국 디자이너 레이철 바커의 솜씨를 빌려 레이첼바커 시리즈를 내놓기도 했다. 방짜유기나 현대적인 디자인을 입은 백자도 그릇 마니아들 사이에서 조금씩 입소문이 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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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핀란드, 포트메리온, 레녹스, 젠한국, 로스트란드, 로얄코펜하겐, 웨지우드, 우일요 등. 시대에 따라, 사람의 취향에 따라 접시의 유행도 변하고 있다.
백화점 포트메리온 아성 속
다양한 스타일 관심 늘어
담백한 흰색 도자기도 인기

#2. 경기도 성남시 분당 요리사 지은경(36)씨의 쿠킹 스튜디오. 한쪽 벽면이 온통 그릇이다. 유명 브랜드는 찾아볼 수 없다. 독특한 디자인과 색감의 접시들이다. 남대문표 그릇도 많다. 그는 원래 요리를 업으로 한 이는 아니었다. 한국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6년 반을 미국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했다. 24살부터 혼자 생활하면서 그릇을 모으기 시작했다.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등을 여행할 때마다 슈퍼나 마트, 벼룩시장, 앤티크숍을 찾아가 접시를 샀다. “처음 산 그릇은 이케아 제품이었어요. 주로 1달러도 안 되는 접시를 많이 샀죠.” 100개도 넘는 그릇이 그의 자취방을 채웠다. 쌓여가는 그릇만큼 요리 실력도 늘었다. 직접 만든 누리집에 자신이 고른 예쁜 접시에 담은 샐러드나 파스타를 올렸다. 현지 교민신문에서 요리 칼럼 의뢰가 오고 2008년에는 <12분에 뚝딱 도시락 싸기> 책도 발간했다. 운명은 소리 소문 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그는 과감하게 붓을 던지고 도마와 칼을 잡았다. 접시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셈이다.

지금도 그는 접시 욕심이 많다. 3년 전에는 아예 타이 방콕에 그릇 여행을 갔다. 다른 여행객이 큰 여행용 가방에 멋쟁이 옷이나 신발을 잔뜩 넣을 때 그는 옷가지 몇 장 든 작은 여행가방과 비닐포장지를 넣었다. 카오산로드에 숙소를 정하고 짜뚜짝시장을 찾아 눈에 쏙 들어오는 그릇을 샀다. 큰 가방에 들면 깨질까 정성스럽게 비닐포장지에 싼 접시를 넣었다. 입국할 때 1인당 짐 무게 제한에 걸릴까 싶어 가족도 데리고 간 터였다. 현재 약 1000개를 가지고 있다.

“수입 고가 브랜드에는 관심이 없어요. 패턴이나 그림 많은 것, 진한 색은 안 좋아해요. 음식이 안 살아요. 진열해놓고 꺼내 쓰지 못하는 그릇보다는 내 생활에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그릇이 좋죠.” 한국에서는 남대문시장을 자주 찾는다. “처음에는 방산시장, 동대문이나 남대문시장을 무작정 다녔죠. 내가 원하는 것 잘 찾아주는 집 한 곳을 단골로 만들었어요.” 결혼을 앞둔 후배들은 그를 찾아와 구입하려는 그릇에 대해 조언을 구한다.

“내 부엌 생기면서 그릇에 관심
최근에는 우일요에 빠졌죠”

#3. 서울 용산구 한남동 가파른 골목길에 위치한 <이기적 식탁>의 저자 이주희(34)씨의 집을 찾았다. 들어서자마자 직녀를 만난 것처럼 개 ‘봄’이가 앞발을 올려 달려든다. 낯을 안 가리는 개다. “남산에 유기된 개를 데리고 와 치료해서 키우고 있어요.” 개와 고양이와 함께 사는 작가 이씨는 8년 전 혼자 살면서부터 접시에 관심을 가졌다. 옷이나 액세서리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제 부엌이 생기고 요리를 하면서죠. 처음 산 그릇은 무지(일본 패션잡화매장) 그릇이에요. 가격이 적당하고 디자인이 단순하면서 다용도예요. 한식에도 잘 어울리고.” <이기적 식탁>은 혼자 잘 차려먹는 밥상에 대한 이야기다. 접시가 빠질 수가 없다.

하지만 그의 그릇장에는 접시가 많지 않다. 70여개다. “접시는 음식을 담는 용도죠. 장식용이 아니에요. 내가 잘 해먹는 요리와 어울리는 것, 꼭 필요한 것만 사요.” 화려한 꽃무늬나 진한 색의 접시는 없다. 대신 자연을 모티브로 만든 북유럽 그릇이 많다. ‘이탈라’, ‘마리메코’, ‘아라비아핀란드’ 등의 브랜드다.

핀스타일닷컴(www.finnstyle.com) 같은 해외 누리집이나 국내 북유럽 그릇 전문 판매 누리집을 뒤져 산다. ‘세일’이란 글자가 크게 박힐 때면 그의 손놀림도 빨라진다. “관세, 배송비, 환율 등 잘 따져서 주문해요.”

최근에 그의 시선을 붙잡은 것은 1978년 문을 연 국내 회사 우일요의 백자다. “모던하고 기품 있는 게 많아요. 음식이 고급스러워 보이죠.” 유리컵이나 잔은 남대문시장을 헤매서 산다. “샘플로 나온 건 1000원에서 2000원까지 싸게 팔아요.” 개와 고양이 밥도 구입한 그릇에 담는다. 가족이 된 개와 고양이 때문에 지구환경, 동물보호 등에 관심이 커져 다섯달 전부터는 채식을 한다. 앞으로도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쓰려는 이씨에게 그릇은 좋은 친구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사진제공 각 그릇업체·출처 <북유럽 생활 속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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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세한 서구 왕실 접시 vs 기품있는 한국 백자 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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