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글은 불친절하다. 그냥 한 번 읽어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일독 난해, 이독 오해, 삼독 불가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렵기가 형법총론 교과서에 버금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글을 어느 신문의 독자 투고에 보냈으니 게재될 리가 만무하다. 아래는 몇 해 전 선거를 앞두고 투고했으나 당연히 실리지 않은 글이다.
제목 : 개운의 비결
음양오행을 공부한다고 내 소개를 하면 대뜸 사주를 보아달라는 이들이 종종 있다. 잘 모른다고 아무리 거절해도 한사코 보아 달라는 사람에게는 좋은 이야기를 해준다. 그러면 피해야 할 것과 조심해야 할 것도 가르쳐 달라고 한다. 이때 나는 늘 같은 이야기를 한다. 바로 개운(開運)의 비결(秘訣)이다.
‘수많은 이순자 씨가 모두 영부인이 된 게 아니다. 성명학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다. 남한에만도 같은 사주를 타고 난 사람이 50명 이상씩 있지만 도플갱어는커녕 비슷한 삶도 찾기 어렵다. 사주가 별 거 아니라는 뜻이다. 성형수술한 사람 많지만 그 덕에 백마 탄 왕자님 만났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다. 세상만사는 마음먹기에 달렸다-觀相不如心相-고 하지만 사람 마음[心]은 글자 모양처럼 사방으로 흩어지고 뒤집어지고 종잡을 수 없으니, 내 마음 나도 모른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인생을 좌우할까. 성명이나 사주나 관상보다 중요한 건 부모․친구․스승 등 좋은 사람을 때에 맞게 만나는 것이다. 그런데 개인보다도 훨씬 더 영향력이 큰 것은 조직이니, 바로 좋은 나라에 사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장애를 가진 채로 스칸디나비아에 태어난 것과 내전 중인 아프리카 국가에 태어난 경우를 비교해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부모와 사주는 이미 타고난 것이니 바꿀 수 없다. 이름과 얼굴은 고쳐봤자 드라마틱한 효과는 없다. 하지만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나라는 바꿀 수 있다. 즉 나라를 바꾸는 게 개운의 비결이다. 그러니까 투표를 꼭 하라.’
선거(選擧)의 선(選)은 손(巽)자에 쉬엄쉬엄 걸어갈 착(辶)자를 더한 것이다. 손(巽,☴)은 팔괘 중 바람[風]을 의미한다. 바람[風]은 생명의 표징이다. 살아있으면 움직이기 마련이고, 움직이면 바람이 일기 때문이다. 즉 투표장에 걸어가서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선거다. 선거철만 되면 노인들이 큰절 받는 것도 바로 투표장에서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분들이기 때문이지 않은가.
바람은 오행(五行)으로는 목(木)이다. 목(木)은 유형적 생명의 시작이니, 바로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이다.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움직여야만 하는 때가 선거일이다. 또한 목(木)은 수(水)라는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와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비상이니, 투표는 바로 청년의 기상이다.
민주공화국에서 모든 권력의 원천인 주권자로서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싶은가. 그러면 투표하라. 아이를 사랑하는가, 웅지를 펼칠 세상을 원하는가, 팔자를 고치고 싶은가. 그렇다면 투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