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중순...한동안 육아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저에게 즉흥적으로 남편이 내어 놓은 제안.
8월 저녁 강의를 폐강시킬 수 있으니, 아이들 (6살, 4살) 등하원도 시킬 수 있고, 괜찮다며 제게 홀로 여행을 권했어요. 정말? 가능한가? 이런 기회 잘 없다는 말에...혼자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평소에 해보지 않았으나, 그냥 미친 척 용기를 내보았습니다.

그동안 항공 마일리지를 차곡차곡 모아놓은 것으로 인천-파리 항공권을 발권하고, 11박 12일(처음에는 12박으로 했으나, 간이 쫄아서 하루 앞당겼어요, 9월에 시작하는 강의도 듣고 싶고..휴가는 8월로 마무리하자는 생각에) 급 검색해서 숙소 잡고 떠나기 전날 밤에 짐을 대충 챙겼습니다.

마일리지로 파리까지 비지니스석을 처음 타봤는데, 완전 호강했지요. 계속 먹여주고, 유럽 배경의 영화를 보며 편안하게 파리에 도착. 숙소에 저녁 6시 전에 도착했으나 배가 너무 불러서 그냥 잤습니다.
다음날 부터 뮤지엄패스 2일권을 끊어서 파리를 신나게 무릎이 아프도록 돌아다녔어요. 아침 일찍 서둘러서 9시에 오랑주리 미술관 열자마자 모네의 '수련'시리즈를 감상하고, 비오는 파리를 걸으며 오르세 미술관에 가다가 지나가는 차에 빗물을 무릎까지 다 맞아서 흠뻑 젖은 상태로 인상주의화가들의 작품들을 위주로 감상을 하고...뿌듯한 마음에 센느 강가를 걸어서 노트르담 성당을 향해 걸어가다가, 소매치기를 당할 뻔도 했습니다. 어느새 바닦에 떨어져있는 내 수첩과 복대(왜 복대를 꺼내놨던가)를 보며 'PLEASE'를 외치며 지갑을 사수해서 분노의 발걸음을 내딛으며 파리를 욕하기도 했습니다.
얼마전 테러 사건으로 뮤지엄 입구마다 장총까지 메고 있는 무장 경찰들을 보며 위축되기도 하고...

10년 전 배낭여행으로 갔던 파리는 제게는 첫인상이 별로였는데 (여행끝에 지치고 돈도 없었던 시기에 지하철에서 헤매기 일수)..이번에도 지하철 탈 때마다 거의 폐쇄공포증을 느끼며 긴장...그런데, 예전보다는 어딜 가더라도 불어 몰라도 영어가 잘 통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콧대 높은 파리지앵들도 관광객들에게 영어가 필요함을 체념하듯 받아들인 걸까요?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 보다는 트륄리 공원에서 바게트샌드위치를 먹으며 햇살을 맞았던 것이 좋았고요.
노트르담 성당보다는 그 옆 동네 생 샤펠의 스테인리스 글라스 벽을 쳐다보았던 것이...
로뎅미술관 정원에서 모래놀이를 하던 귀여운 여자아이의 모습..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이리저리 애쓰던 엄마의 모습도 예뻤어요.
맛집이라고 찾아가서 혼자 식사했던 것 보다는...몽마르뜨 언덕 찾는다고 빵가게에서 갓 구워내서 따끈한 바게트를 먹었던 것이 좋았습니다. 종업원의 친절한 미소로 기분도 업!
맛집이라고 찾아간 식당에서 불어 메뉴판 밖에 없어서 열심히 영어로 설명하며 수줍어하던 웨이터의 모습...8시부터 저녁이라 천천히 먹는데...9시반~10시 되서야 북적이는 파리의 식당풍경...

파리에서 야간 자전거 시내 투어도 재미있었어요. 장성한 딸내미들 둘을 데리고 네 가족 유럽여행을 왔다는 라오스 가족들을 보며 부러웠어요.

몸은 아이들과 떨어져 지냈지만, 12일 동안에 아이들 생각 많이 했어요. 중간에 돈이 모자랄 것 같고 (파리에서는 아멕스 카드가 안통하는 곳이 많고...비상용으로 챙긴 카드가 국내용이어서 한숨), 외롭고 피곤하기도 해서... 다 접고 돌아갈까 생각도 스쳤지만, 남편이 제게 준 나만의 시간이라는 선물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끝까지 힘을 냈어요. 여행다니며 옆에 지나가는 가족들의 모습이 보이면 넋을 놓고 지켜보기도 하고, 왜 다른 나라 아기들까지 너무 예뻐보이는지..다른 아이들의 미소에 힘을 내기도 했습니다.

파리 오를리 공항에서 바르셀로나 가는 비행기...수속 시간이 늦어서 하마트면 비행기 놓칠 뻔했고요. 항공사 직원도 과중 업무에 힘들었는지 제게 짜증내서 기분이 나빴지만...일단 바르셀로나에 도착하니 분위기도 흥겹고, 열차가 5분정도 중간에 멈춰도 느긋한 분위기 사람들 표정도 밝고..무엇보다 물가도 싸고, 아멕스 카드가 통해서 돈 모자라는 걱정도 덜고...가우디 투어를 통해서 신나는 경험을 했어요. 가우디의 건축 대작들을 살펴보며 설명받는 투어를 받았는데, 참 신기하고 멋지더라고요. 제 아이들이랑 까사 바트요나 구엘공원에 같이 놀러오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며 열심히 둘러보았습니다.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에서 감동의 여운을 느끼며 하루를 보내기도 했지요.

혼자 다니다보니 맛집이라고 찾아가도, 메뉴에서 먹을 수 있는 종류가 한정되어 있는 것이 참 아쉬웠고요.
보케리아 시장에서 신선한 해산물을 그자리에서 먹는 식당이 있었는데...차마 주문 못하고, 과일주스만 사먹고 나온 것이 아쉽고, 스페인 엿이라고 샀는데..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보니...좀더 더 사올 껄 하는 후회가...
바르셀로나 밤바다도 참 예쁘더라고요.

혼자 떠나는 여행 갑작스럽게 결정해서 다녀왔지만, 떠나고 나서야 제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주변 사람들, 가족에 대해서 더 감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흔쾌히 여행을 권해준 남편에게 고마웠어요. 엄마가 열흘 넘게 없어도 별 탈 없이 일찍 등원하고, 일찍 자며 잘 지내준 아이들에게도 고맙고요. 마실받아주고, 아이들 도시락까지 챙겨준 지인에게 감사하고, 아이들 더 살뜰히 챙겨주신 어린이집 선생님들..덕분에 아이들이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여행하는 동안에 '평화는 어떻게 시작되는가' 책을 읽기도 하고, 서천석의 아이와 나 팟캐스트 방송을 들었어요. 특히 '여성학자 박혜란과 함께'와 '임경선 작가와 함께' 편이 제게 많은 위안과 힘을 주었습니다. 엄마는 이렇게 해야 해. 아이는 이렇게 키워야지...이런 저런 의무감으로 아이를 바라볼 때 많은 스트레스가 되었던 것 같아요. 아이를 편하게 바라보는 시선, 엄마 내 자신에게도 실수할 수 있는 여지를 두는게 필요하다는 것...육아는 아이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회임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사진은 파리 근교 지베르니에서 '모네의 집'에서 물의 정원에서 찍은 것이고...가이드님이 촬영
해안가 사진은 에트르타 - 노르망디 지역의 절경입니다.
파리의 복잡한 곳을 떠나 1일 버스 투어를 했던 날이었지요.
에트르타 조약돌 바닷가에서 해수욕을 하는 사람들이 참 부럽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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