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명절에 대학생이 되는 조카에게 많은 이야기를 쏟아 내었다. 신입생으로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새내기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나도 한때는 경영학도 선배(?)였음을 밝히며 나의 경험담을 이야기 해 주었는데, 그게 얼마나 조카에게 와 닿을지는 모르겠다. 명절에 어쩌다 한번씩 만나는, 집에서 아이 둘 키우는 외숙모가 어쩌면 이번 이야기로 달리 보였을지도...그냥 명절 때 듣는 기성세대의 잔소리로 여겼을 지도...


내 잔소리의 요지는: 술 자리에서 자신이 어느 정도 술을 마시면 취하는 지, 반드시 알아야 하며
... 술에 취해서 느슨해졌을 때 조심해야 한다는 것.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은  100 프로 신뢰할 수 없다는 것. 요령껏 폭탄주를 피하는 법. 적당히 내숭 떨며 주량을 감춰야 한다는 것.

나는 한국의 술문화를 내 나이 서른이 넘어서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요즘 미투 행렬들을 보면서, 육아에 전념하다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문득 문득 떠오르는 기분 나쁜 기억들이 떠올랐다.  잊었다, 묻었다 생각했던 그런 일들...


회사생활하면서 술자리와 회식자리를 오가다 경험한 성추행의 모호함과 불편함을 느꼈던 순간들이 있었다.
- 회식자리 노래방이나 송년잔치에서 상사와 브루스 한번씩 추었던 일, 은근슬쩍 어깨에 팔을 올리거나 춤 한번 추는 걸로 정색을 하며 싫다고 발언해서 분위기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참은 것이지 절대 즐거운 순간은 아니었다.  

정직원의 셋째 출산휴가로 인해 나는 3개월간 임시 고용된 비정규직 파견직으로 일하고 있었기에 상사에게 잘 보이면, 정규직 전환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있었기에 침묵했었다.


- 신입사원으로 사내 야유회에 참석해서 폭탄주를 마시고, 알딸딸했는데 임원과 나란히 앉아서 놀이기구를 탔던 일. 내 사수는 야유회에 참석을 안했고, 인사부 과장님이 나를 챙겨준다며 회식자리에서 임원들 옆에 앉혀서 나는 도망가지도 못하고, 상황에 이끌리게 되었다. 남자친구와 타보려던 놀이기구를 중년의 임원분과 처음 탔던 것이 절대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허허허


- 회식자리에서 후배 남사원이 스커트를 입고 있던 나의 무릎을 손으로 만졌던 일. 내 무릎 순결을 앗아간 그녀석, 혹시 내게 호감이 있었나? 그도 싱글, 나도 싱글이었으면 그냥 썸 탄건가? 술마시면 손버릇이 나쁜가? 나중에라도 질문하고 싶었지만, 내게 딱히 호감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느끼한 놈이었던 걸로 나 혼자 판단했었다.


- 사내회식 2차로 호텔 나이트에서 직장 선배가 내 귀에 대고 "넌 남자 꼬실 줄 모르지?"속삭였던 일은 너무 기가 막히고 황당해서 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참나, 주변에 꼬실만한 남자가 없어서 가만히 있는 건데...그냥 사이코 직원인걸로 여기고 업무상 필요한 일이 아니면 인사도 안하고, 말조차 섞지 않았다.  


-회식자리에서 술이 들어가면 민망한 음담패설을 농담처럼 웃어가며 이야기했던 상사. 그 버릇을 익히 알고 있었던 여선배들은 회식이라면 질색해서 아예 참석을 안하거나, 정말 딱 밥만 먹고 사라졌다. 


- 신년회였던가, 전체 회식자리에서 앞에 앉은 임원께 둘째 임신으로 소주를 못마신다고 말씀드리니, 한잔 정도는 아이에게 조기교육이라고 말했던 그 분. 말이야 막걸리야. 모유수유에 막걸리가 좋다는 속설은 옛날에 먹을 거 없었을 때 이야기지. 소주가 좋다는 이야기는 듣보잡일쎄.


이런 회식문화에서 나는 혼자라도 맨 정신으로 어떻게든 버텨야 하겠다고 느끼고..절대로 정신줄 놓아가며 술에 취해본 적이 없었다.  이런 불쾌한 기억들을 10년이 지나도 떠올리는 나는 천재인가보다.


지난 12월초 아침에 첫째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는 투신자살을 목격했던 일이 있었다. 여자 비명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봤는데, 추락하는 모습을 보게 되어 너무 충격적이었다. 왜 비명을 질렀을까? 지르고 떨어진 건가, 떨어지려니 비명이 나온 것인가, 누가 밀었나, 자살인가...수많은 생각이 스치고, 몸이 부들부들 떨고 어쩔 줄 몰라서 나의 일상의 어떻게 될지 불안했다. 매일 오가는 자리에 그 장면이 떠오를까봐 무서웠다.  경찰차와 구급차가 오가고 노란 띠가 주변에 둘려지고...내게 든 생각은 그래도 그런 험한 장면을 아이가 보지 않아서 다행이다라는 것.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상황이 수습된 후에 근처에 남아 있다가, 경찰관에게 내가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그날 오후에 바로 사라졌던 노란 띠, 그리고 며칠 간 그 자리를 피해가거나 지나갈 때 가슴 한켠이 서늘해졌지만, 3개월이 지난 지금 그 기억은 희미해지고 있다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생명이고 아픔이었겠지만, 그 죽음이 내게 직접적으로 끼친 영향은 미비(?)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사람의 기억이란 그런 것이다.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지만, 내게 충격적인 것은 기억이 나고,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그 기억으로 괴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다. 어떤 아픔보다도 내 아픔이 가장 큰 것이다.


회식문화에서 느꼈던 불쾌함과 불편함은 내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고, 무시하려 해도 잊으려 해도 문득 어떤 계기로 생생하게 떠오르게 된다.  왜 일까? 그 당시 침묵을 택하면서 근본적으로 문제를 직시하지 못했고,  내게는 치유해야할 아픔이 남아 있기 때문에... 불편했던 기억은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힘겹게 용기내어 미투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천재인가보다'라고 비꼬는 일은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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