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은 지구다
이문재
식탁은 지구다
중국서 자란 고추
미국 농부가 키운 콩
이란 땅에서 영근 석류
포르투칼에서 선적한 토마토
적도를 넘어온 호주산 쇠고기
식탁은 지구다
어머니 아버지 아직 젊으셨을 때
고추며 콩, 석류와 토마토
모두 어디에서 나는 줄 알고 있었다
닭과 돼지도 앞마당서 잡았다
삼십여 년 전
우리집 둥근 밥상은
우리 마을이었다
이 음식 어디서 오셨는가
식탁 위에 문명의 전부가 올라오는 지금
나는 식구들과 기도 올리지 못한다
이 먹을거리들
누가 어디서 어떻게 키웠는지
누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누가 어디서 어떻게 보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탓이다
뭇 생명들 올라와 있는 아침이다
문명 전부가 개입해 있는 식탁이다
식탁이 미래다
식탁에서 안심할 수 있다면
식탁에서 감사할 수 있다면
그날이 새날이다
그날부터 새날이다
얼마 전, 한살림 마을모임에 갔는데 아기랑 요새 뭘 해먹어야 할지 모르겠다 하니 어르신 한 분이 말씀하셨다.
"아기 엄마, 애들 키우는 거나 밥상 차리는 거나 '기다림'이 중요해요. 애들도 때가 있어 언제나 기다려줄 줄 알아야 하듯이 밥상 차리는 거도 똑같아요. 요새는 때에 상관없이 야채며 과일이 하우스에서 막 나오는데, 밥상에도 계절이 있어야 하는 거야. 요즘은 먹고싶은 건 다 마트에서 사올 수 있으니 기다림이 없제. 여름에 나오는 건 기다렸다가 여름에 먹고, 겨울에 나오는 건 또 기다렸다가 겨울에 먹고 그래야 하는 긴데. 그라고 애들은 입으로만 밥을 먹는 게 아니고 눈으로도 밥을 먹는데이. 지금 당장은 안 먹어도 내내 밥상에 올라와 있던 반찬들, 때가 되면 다 먹는다. 그라이 계절을 밥상에 올린다는 생각으로 그 때에 나는 나물들 요리해가 밥상에 올리면 되는기라."
이 이야기를 듣자 눈이 번쩍 뜨였다. 밥상에 계절을 올리라는 이야기, 아이는 눈으로도 밥을 먹는다는 이야기. 아이와 온종일 같이 보내는 삼년 동안 다른 건 몰라도 소박한 집밥만큼은 신경써서 해 먹이고 싶었던 내게 딱 필요한, '때'에 맞는 조언이었다.
마을모임에 나가면 어른들 이야기 들을 생각에 설레기는 했지만, 첫 모임에서 이래 좋은, 그리고 딱 필요한 이야기를 들으니 어찌나 신이나던지. 돌아오는 길에 그동안 번번이 실패했던 요리의 주재료인 우엉도 사고(저는 우엉조림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요 ㅠㅠ), 시골어르신이 정성스레 말린 호박 말랭이도, 시금치도 사왔다. 숨 한 번 크게 쉬고 엄마가 주신 씨레기 말려 데친 걸로 씨레기 된장국을 끓이고, 시금치 무치고, 우엉도 졸인다. 김도 안 타게 살살 굽는다.
한 상을 딱 차리니 아... 우리집 밥상에도 계절이 어렴풋이 보인다. 새삼 밥상 앞에서 고마움을 느낀다. 이문재 시인 말대로 오늘이, 오늘부터가 새날이다.
더하기. 신순화님이 언젠가 밥 한 그릇에 대한 글을 올려주셨지요. 그후로 저도 단유 후 막 먹던 습관을 고치고 세 끼 밥 아이와 같이 부지런히 먹고 있어요. 반찬은 꼭 접시에 덜어 담아 먹구요. ^^;;
그랬더니 아이도 반찬 몇 개 없어도 밥을 더 잘 먹고, 얼마전엔 입에도 안 대던 시금치나물을 막 뜯어 먹더라구요. 뒤늦게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윤영희님, 저를 부엌육아의 길로 이끌어 주신 거 정말 고맙습니다~ 34년 동안 요리를 멀리하던 저를 새로운 길로 인도하셨느나니...... 덕분에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잘 먹고 잘 살고 있답니다. ㅋㅋ 용감하게 맛없는 요리로도 손님을 막 초대하고 있고, 어제는 동무들이랑 동무 아기들 불러 케이크도 만들어 먹었어요. 같이 잘 살고 잘 먹는 기쁨을 알려주셨어요. 고마워요, 정말!!
그리고 일일이 다 고마움의 마음을 전하고 싶지만, 아이가 일어나 밥을 찾아서...ㅋ 다른 어머님, 아버님들 정말로 저는 올 한 해 베이비트리로 새로 거듭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모두 고마워요. 내년에도 우리,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아요~ ^O^